정치인 현수막을 여기 걸다니... 어느 국회의원의 반가운 '반란'

심규상 2026. 1. 3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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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 대전 유성구 거리에 나타난 낯선 풍경... 여의도, 전국으로 널리 퍼지길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심규상 대전충청 기자]

거리를 걷다 보면 숨이 턱 막힐 때가 있습니다. 찬 공기나 미세먼지 때문이 아닙니다. 횡단보도 신호등을 가리고, 가로수 허리를 칭칭 감은 채 펄럭이는 '현수막 공해' 때문입니다.

그 현수막의 주인공은 대개 정치인입니다. 상대를 향한 날 선 비방, 확인되지 않은 가짜뉴스, 자극적인 문구들...

'정당 활동의 자유'라는 명분 아래 2022년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된 이후, 대한민국 거리는 정치인들의 '무법지대'가 되어버렸다는 시민들의 한탄이 들려온 지 오래입니다. 정치가 시민의 삶을 위로하기는커녕, 유모차의 통행을 방해하고 운전자의 시야를 가린다는 겁니다.

그런데 대전 유성구에서 작지만 신선한 '반란'이 시작됐습니다.
 대전 유성구의 한 지정 게시대에 걸린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현수막
ⓒ 심규상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대전 유성구갑)이 새해 던진 화두는 간단하지만 묵직했습니다.

"앞으로 정당 현수막을 지정 게시대에만 걸겠습니다."

설명도 뒤따랐습니다.

"건전한 정치 문화 발전과 도시 미관 보호를 위해 올바른 정당 현수막 게시 문화 정착이 시급합니다. 2026년 새해부터는 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1일·22일 기자가 직접 현장을 둘러봤습니다.

법사위 문턱 못 넘고 있는 정당 현수막 규제 법안... 국회가 응답해야

유성구의 한 교차로.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지정 게시대를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위 칸에는 유성구에서 일자리지원정책을 알리는 광고가, 그 아래 칸에는 눈썰매장 개장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다른 교차로에는 'OO 헬스장 파격 할인' 광고가, 그 아래엔 '학원 원생 모집'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 조승래 의원의 새해 인사 현수막이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목 좋은 사거리 횡단보도 앞, 가장 눈에 잘 띄는 가로수 사이는 으레 국회의원의 '전용석' 이었습니다. 현행법상 정당 현수막은 장소 제한 없이 어디든 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현역 의원이 누리는 달콤한 특권이자,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무기였습니다. 하지만 조 의원은 그 무기를 스스로 내려놓고 시민의 질서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조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다른 정당들도 함께 동참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사실 국회 상황은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을 규제하자는 법안이 지난 해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여전히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계류 중입니다.

정치인들은 늘 '새로운 정치'를 말합니다. 새 정치는 거창한 담론이나 화려한 공약보다, 내가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을 때, 내 집 앞 횡단보도를 가로막던 현수막 하나를 걷어내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조승래 의원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대전 유성을 넘어 여의도 전체로, 대한민국 모든 골목으로 퍼져나가길 기대해 봅니다. 정치가 더 이상 '소음'이나 '공해'가 아닌, 시민의 삶에 스며드는 '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국회가 하루속히 응답해야 합니다. 그들만의 특권을 벗어던지고, 전국 어디에서나 정당의 현수막이 동네 치킨집, 학원, 병원 현수막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시민의 선택을 기다리는 풍경.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상식의 정치'이기 때문입니다.
 지정 게시대에 걸린 조승래 의원 현수막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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