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현수막을 여기 걸다니... 어느 국회의원의 반가운 '반란'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심규상 대전충청 기자]
거리를 걷다 보면 숨이 턱 막힐 때가 있습니다. 찬 공기나 미세먼지 때문이 아닙니다. 횡단보도 신호등을 가리고, 가로수 허리를 칭칭 감은 채 펄럭이는 '현수막 공해' 때문입니다.
그 현수막의 주인공은 대개 정치인입니다. 상대를 향한 날 선 비방, 확인되지 않은 가짜뉴스, 자극적인 문구들...
'정당 활동의 자유'라는 명분 아래 2022년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된 이후, 대한민국 거리는 정치인들의 '무법지대'가 되어버렸다는 시민들의 한탄이 들려온 지 오래입니다. 정치가 시민의 삶을 위로하기는커녕, 유모차의 통행을 방해하고 운전자의 시야를 가린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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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 유성구의 한 지정 게시대에 걸린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현수막 |
| ⓒ 심규상 |
"앞으로 정당 현수막을 지정 게시대에만 걸겠습니다."
설명도 뒤따랐습니다.
"건전한 정치 문화 발전과 도시 미관 보호를 위해 올바른 정당 현수막 게시 문화 정착이 시급합니다. 2026년 새해부터는 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1일·22일 기자가 직접 현장을 둘러봤습니다.
법사위 문턱 못 넘고 있는 정당 현수막 규제 법안... 국회가 응답해야
유성구의 한 교차로.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지정 게시대를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위 칸에는 유성구에서 일자리지원정책을 알리는 광고가, 그 아래 칸에는 눈썰매장 개장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다른 교차로에는 'OO 헬스장 파격 할인' 광고가, 그 아래엔 '학원 원생 모집'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 조승래 의원의 새해 인사 현수막이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목 좋은 사거리 횡단보도 앞, 가장 눈에 잘 띄는 가로수 사이는 으레 국회의원의 '전용석' 이었습니다. 현행법상 정당 현수막은 장소 제한 없이 어디든 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현역 의원이 누리는 달콤한 특권이자,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무기였습니다. 하지만 조 의원은 그 무기를 스스로 내려놓고 시민의 질서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조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다른 정당들도 함께 동참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사실 국회 상황은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을 규제하자는 법안이 지난 해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여전히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계류 중입니다.
정치인들은 늘 '새로운 정치'를 말합니다. 새 정치는 거창한 담론이나 화려한 공약보다, 내가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을 때, 내 집 앞 횡단보도를 가로막던 현수막 하나를 걷어내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조승래 의원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대전 유성을 넘어 여의도 전체로, 대한민국 모든 골목으로 퍼져나가길 기대해 봅니다. 정치가 더 이상 '소음'이나 '공해'가 아닌, 시민의 삶에 스며드는 '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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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정 게시대에 걸린 조승래 의원 현수막 |
| ⓒ 심규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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