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성분명 처방'이 의약품 수급 불안 해법?…의료계 "더 악화될 것"
김충기 의협 이사 “성분명 처방, 제약사 시장 이탈 우려 키울 것”
복지부 “성분명 처방 뿐만 아닌 다양한 요소 고려 중”

정부가 의약품 수급 불안의 해법으로 ‘성분명 처방’을 제시한 가운데, 의료계는 ‘문제의 본질을 비켜간 접근’이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의약품 부족은 처방 방식의 선택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 낮은 약가 정책과 취약한 생산·공급 구조가 장기간 누적된 결과인 만큼, 근본 원인에 대한 구조적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충기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이대서울병원 순환기내과 임상 부교수)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의약품 부족 사태는 일시적인 수요 증가가 아닌 글로벌 공급망 의존, 낮은 약가와 입찰 구조, 취약한 품질·생산 인센티브 등이 맞물린 구조적 현상”이라며 내재된 근본 원인을 짚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분명 처방은 ‘대체 가능한 약이 존재한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원료 부족과 제한된 생산·공급 체계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낮은 약가로 이미 수익성이 악화된 상태에서 성분명 처방이 도입되면 최저가 경쟁이 심화돼 제약사의 시장 이탈을 오히려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유럽과 미국의 사례도 소개했다. 로이터와 파이낸셜타임즈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2023~2024년 필수의약품 부족 현상이 정점에 달했으며 2022년 1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EU 국가에서만 136개의 의약품이 심각한 공급 부족을 겪었다.

외신들은 “정부가 필수·제네릭 의약품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유럽 내 생산 공장은 계속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현재 구조가 유지되면 중국 의존도가 80%를 넘어 100%에 가까워질 수 있고, 이 제품들이 사라질 경우 다음 보건 위기는 코로나19보다 더 클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약전위원회(USP)가 2023년 발표한 ‘미국 내 의약품 부족 현황’에 따르면, 의약품의 평균 부족 기간은 2020년 730일(2년)에서 2023년 1202일(3.3년)로 늘어났다. 특히 125개 부족 품목 가운데 25% 이상은 5년 넘게 공급이 불안정한 상태였다.
김 정책이사는 미국은 필수의약품 수급 불안정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생산 기반 회복 ▲연구개발(R&D) 및 혁신 기술 촉진 ▲품질관리 성숙도 강화 ▲데이터 활용과 국제 협력 등을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공급망 프레임워크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정책이사는 “미국과 EU가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제조 기반 강화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국내 정책은 시장 기능 실패를 보완하는 행정적 관리와 단기적 수급 방어에 머물러 있다”며 “자국 내 생산 기반 확충을 위한 전략적 모멘텀 확보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자료를 인용해 “국가필수의약품 448개 중 약 절반에 해당하는 225개 품목이 허가가 없거나 국내에 유통되지 않는 ‘유령 의약품’ 상태”라며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한 약이 필수의약품으로 지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저가 중심 정책은 공급 이탈을 가속화하고, 공급 부족은 곧 임상 현장의 위기이자 환자의 위험으로 이어진다”며 “해법의 핵심은 사후적 ‘관리’가 아니라 예측 기반의 조기 경보 체계, 적정 보상, 공급망 다변화 등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의료계의 지적에 대해 정부는 성분명 처방을 의약품 수급 불안정의 유일한 해법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강준혁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 약무정책과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성분명 처방은 재정 절감보다 치료의 연속성 확보 차원에서 검토하고 있다”며 “필수의약품에 한해 성분명 처방이 정답이 될 수 있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어 “성분명 처방 하나만을 놓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접근하고 있다”며 “그런 맥락에서 정부의 정책 방향을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한편 ‘수급 불안정 의약품 대책, 성분명 처방이 해법인가?’를 주제로 한 이번 토론회는 서울특별시의사회 주관으로 열렸으며, 지속가능한 의약품 공급 체계 구축을 위한 현실적인 대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앞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수급 불안정 의약품으로 지정된 경우 의사가 상품명이 아닌 성분명을 기재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약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이에 의료계는 “의약품 수급 문제는 공급망의 구조적 문제로, 성분명 처방만으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반대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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