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에서 만난 그 얼굴,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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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환 기자]
60년을 넘게 살고도 선뜻 대답하지 못한 질문이 하나 있다. "넌 누구니?"라는, 짧지만 묵직한 물음이다. 우리는 대개 이 질문을 너무 쉽게 통과한다. 직업으로, 역할로, 관계로 자신을 설명하며 살아간다.
나 역시 누군가의 남편이었고, 누군가의 아버지였으며,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자기 몫의 자리를 지켜온 사람으로 불려 왔다. 명함 속에는 언제나 분명한 이름과 직함이 있었고, 그 명함은 수만 번이나 건네졌다. 하지만 하루의 끝에서 거울 앞에 홀로 서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거울 속의 사내와 단둘이 마주 앉는 순간마다 나는 늘 낯선 이방인이 되곤 했다. 그가 누구인지 설명할 언어가 없었다. 나를 정의하는 말들은 언제나 내 삶의 바깥을 맴돌 뿐, 정작 나 자신에게는 닿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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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울 속에서 만난 사람. |
| ⓒ by_syeoni on Unsplash |
'우리는 그렇게 다르지 않았구나.'
문득 거울 속 어깨에 시선이 머물렀다. 어릴 적 내 눈에 아버지의 어깨는 늘 태산처럼 넓고 단단해 보이기만 했다. 세상의 모든 비바람을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던 어깨였다. 그런데 오늘 보니, 그 어깨가 유난히 작고 고단해 보였다. 그제야 비로소 보였다. 아버지는 그 어깨로 얼마나 많은 삶의 무게를 홀로 견디며 나라는 존재를 키워냈던 것일까.
우리 아버지 세대는 좀처럼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힘들다는 말도, 외롭다는 고백도 삼킨 채 '아버지'라는 역할 하나로 평생을 버텨냈다. 가족을 위해, 자식을 위해 견뎌야 하는 삶이었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시대였다. 그 무게를 감히 짐이라 부르지도 못한 채, 묵묵히 견디는 것이 책임이라 여겼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삶의 무게가 버거워 휘청거릴 때마다, 나는 늘 혼자라고 생각했다. 나만 이토록 힘든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았고, 누구도 대신 들어줄 수 없는 짐을 홀로 지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거울 속에서 만난 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 흔적을 내 얼굴 속에, 내 표정 속에 하나의 지도로 남겨두고 가셨다. 마치 이렇게 말하듯이.
"이 길은 나도 먼저 걸어봤단다. 그러니 너무 겁내지 마라."
그제야 알았다. 삶은 단절된 개인의 시간이 아니라, 세대를 건너 흐르는 거대한 강물이라는 사실을. 아버지는 당신의 시간과 선택, 좌절과 성실을 내 몸이라는 그릇에 담아두고 떠나셨고, 나는 이제 그 그릇을 들고 다음 세대라는 바다로 향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누군가의 과거이며, 동시에 누군가의 미래다. 그렇기에 오늘을 성실히 살아야 할 이유는 분명해진다. 내가 무너지지 않고 지켜낸 오늘 하루의 태도가, 훗날 내 자식이 거울 앞에 섰을 때 만날 얼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얼굴이 부끄럽지 않기를, 적어도 "잘 버텨왔구나"라는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이 듦은 약해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안에 아버지를 품게 되는 일이고, 내 자식의 미래를 조금 앞서 살아보는 경험이며, 더 많은 삶의 굴곡을 이해하고 껴안을 수 있게 되는 '확장'의 과정이다. 예순 해가 지나서야 나는 비로소 "넌 누구니?"라는 질문에 작은 대답 하나를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내 아버지로부터 흘러와, 내 자식에게로 이어지는 성실한 생의 통로다. 내 아버지가 그러하셨듯, 나 또한 누군가의 정직한 과거가 되기 위해 오늘이라는 시간을 성실히 채워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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