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원전 여론조사, 깜짝 놀랄 안내문 [김봉신의 여론감각]
[김봉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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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025년 12월 30일 개최된 제228회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에서 '새울 원자력발전소 3호기 운영 허가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새울 3, 4호기 원전 건설 전경. |
| ⓒ 원자력안전위원회 |
https://omn.kr/2gq1g). 이재명 대통령도 신년 기자회견에서 원전 관련 국민 여론을 청취하고 여론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했다는데, 그 직후에 우세 여론이 나오니 뭔가 척척 들어맞아 순조로운 듯 보인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신규 원전 수용도 조사인 "미래 에너지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가 과연 이 대통령의 눈높이를 제대로 맞춘 여론 수렴 과정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응답 편향이 나타날 수 있는 설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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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후에너지환경부 여론조사 안내문 기후에너지환경부의 "미래 에너지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 안내문이다. 응답 편향을 유도하는 문구가 너무 많다. |
| ⓒ 기후에너지환경부 |
그렇지만, 읽다 보면 석탄 비중을 줄이고 원전과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목표를 설명하고 있고, 이에 따라 "계획에 포함된 신규 대형원전 2기 등의 건설" 관련 국민 의견을 청취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차분히 읽어보면, 사실상 여론조사 응답자에게 응답의 방향을 모두 설명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 설문지의 첫 페이지를 보면 응답자 선정 질문 앞에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의뢰"라고 해 어느 기관에서 조사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다.
응답자에게 주는 연상 효과는 ① 조사 의뢰는 이번 정부 기후에너지 환경부, ② 전력수급기본계획 관련 의견 파악 중, ③ 재생에너지 확대 필요, ④ 그렇지만 재생에너지는 불안정, ⑤ 인공지능·반도체·전기차에 전기 필요, ⑥ 원자력 발전 활용하는 에너지 믹스 추진, ⑦ 신규 대형원전 2기 건설 추진 포함된 기본계획 관련 의견을 수렴한다는 순서다.
이번 정부를 지지하거나, 원전을 지지하거나, 인공지능·반도체·전기차 산업의 발전을 원한다면, 신규 대형원전 건설에 찬성해 달라는 자극을 응답자에게 주고 있어서, 편향을 유도한다고 봐야 한다.
재생에너지 확대 필요 응답 '최다'
그런데 이와 같이 원전에 대한 관심을 강하게 환기하는 설문지로 조사한 결과, '확대 필요 발전원'으로 한국갤럽의 전화면접조사나 리얼미터의 ARS 조사나 1위는 재생에너지이고 2위는 원전이다. 두 발전원과 나머지의 응답 비율을 보면 큰 격차가 있다.
전화면접에서는 재생 48.9%, 원자력 38.0%, LNG 5.6%, 석탄 0.9%, 기타 0.2% 순이었고, 모른다고 응답했거나 응답 거절은 6.5%였다. ARS에서는 재생 43.1%, 원자력 41.9%, LNG 6.7%, 기타 3.5%, 석탄 0.8% 순이었고, 역시 모름/무응답은 4.0%였다.
'확대를 원하지만 불안정한' 재생에너지가 확대가 필요한 발전원으로 전화면접이나 ARS 모두에서 가장 많은 응답을 받았다는 것이 재미있다. 어쩌면 이번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조사 결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 사항은 바로 재생에너지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크다는 점이겠다.
그렇지만, 설문지는 확대 필요 발전원을 묻고 그 이유를 물은 후에 내리 3개 문항 모두 원전에 할애했다. 선거여론조사에서도 여야 현안을 반반 비율로 넣는다. 한쪽 현안만 묻게 되면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응답자가 중도 이탈할까 하는 우려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설문 문항 수는 그리 많지도 않은데, 재생에너지 발전 필요성은 묻지 않고 원자력 발전 필요성만 물었다. 발전 안전성과 신규 추진에 대한 문항도 재생에너지는 없고 원전만 있다. 그러면, 이번 여론조사의 제목은 "미래 에너지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보다는 "신규 대형원전 건설 수용도 조사" 정도가 더 좋지 않나 싶다.
같은 현안 여론조사 결과 15.6%p 차이가 있다
'원자력 발전 필요성'은 전화면접 89.5%, ARS 82.0%, '원자력 발전 안전성'은 전화면접 60.1%, ARS 60.5%, '신규 원전 계획 추진 동의'는 전화면접 69.6%, ARS 61.9%로 나타났다. 상당히 높은 비율이라서 언론 기사에서는 '원전 필요성이 10명 중 9명에 달한다'는 식의 제목이 달렸던 것 같다.
그런데, 한국갤럽의 정례조사에서도 비슷한 현안을 조사한 결과가 있다. 같은 회사가 조사했으니 기관효과(house effect)도 없을 테고, 올해 1월 3주에 조사했으니 조사 기간도 차이가 없어서 국민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고 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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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규 원전 건설 인식(한국갤럽 1월 3주) 한국갤럽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신규 원전 건설에 동의하는 비율이 54%였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의뢰해 한국갤럽이 조사한 결과와는 사뭇 다르다. |
| ⓒ 한국갤럽 |
한국갤럽 자체조사(전화면접) 문항은 "작년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신규 원전 2기 건설이 포함되었는데요. 현재 계획 추진 여부가 재논의되고 있습니다. 귀하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의뢰한 문항의 문구에는 "...계획에 포함된 신규원전"이라고 돼 있지만, 한국갤럽 자체조사 문항에서는 "추진 여부가 재논의되고"라고 해 뭔가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큰 틀에서 거의 같은 질문인 듯 느껴진다.
그렇다면, 문항도 차이가 크지 않다고 한다면, 위와 같이 한국갤럽이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가 15.6%포인트 더 적은 동의 응답이 나타난 이유는 역시 앞서 봤듯 안내문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원전에 대한 인식 전반을 다시 봐야 한다
여기까지 본다면, 가장 핵심적인 문항에서 15.6%포인트의 격차가 있으니 전체적으로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의뢰로 조사한 결과는 15%포인트 정도를 낮게 보면 되는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왜냐하면, 원전 안전성에 대해서는 한국갤럽 자체조사에서 63%, 기후에너지환경부 의뢰 조사에서는 60.1%로 나타나 비슷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의뢰 조사에서 유독 신규 원전 건설 현안을 다루는 문항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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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자력발전이용찬반_한국갤럽 한국갤럽이 2011년과 2017년에 조사한 원자력 발전 이용 찬반에서 꾸준히 60% 내외가 나타났었다. |
| ⓒ 한국갤럽 |
게다가 찬성률 64%를 기록한 조사 날짜가 2011년 3월 23일이다. 당시 3월 11일 지진해일을 동반한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었다. 하루가 지난 12일에 후쿠시마 제1원전 노심이 녹아내렸다. 수소폭발은 12일, 14일, 15일에 계속됐다.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된 그 사건 직후에 조사한 결과 원전 찬성이 64%였는데, 지금 신규 원전 건설에 찬성하는 비율이 54%라면 원전에 대한 국민 인식은 과연 좋아졌다고 볼 수 있을까 묻고 싶다.
한 가지만 더 살펴보자. 기후에너지환경부 의뢰 조사의 설문 문항 순서를 보자. '원전 필요성 - 원전 안전성 - 신규 원전 추진 인식' 순서다. 필요성에서 바로 신규 원전 추진 문항으로 가지 않고 중간에 하나 더 짚고 넘어가는 '안전성'. 10명 중 6명이 안전하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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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전원 안전성 비교 인식(한국리서치) 2023년 10월 한국리서치의 "여론 속의 여론"에는 발전원별로 안전성과 효율성을 비교했다. 원자력에 대한 안전성 인식은 최저였다. |
| ⓒ 한국리서치 |
물론 시간이 흘러 지금은 원자력에 대한 중요도 인식이 달라졌을 수 있고, 안전하다는 인식도 나름 바뀌었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발전원별 안전성 인식이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할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설마 설마 그렇진 않았겠으나, 필요하다고 했으니 안전하다고 해야 할 거고, 안전하다고 했으니 신규 원전을 건설하자는 데 찬성할 거라는 식의 연상효과가 발생하길 원했다면, 그건 무리다. 최소한 다른 발전원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질문했어야 했다.
높아진 관심에 어울리는 적절한 조사 필요
하지만, 이렇게 편향된 응답을 유도한다는 의심을 받는 조사를 하지 않아도, 원자력 자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어느 정도 높아지고 있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여기에는 안보 관점에서 보는 국민도 많은 것 같다. 핵무기가 없는 우크라이나가 핵보유국인 러시아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는 데다가 미국으로부터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 허락을 받아서 그런지, 원전은 핵무장을 위한 조건인 것처럼 인식 되고 있다. 어쩌면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데다가 북한의 핵무장이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다는 국민적 공포가 원자력에 대한 기대를 강화하는 게 아닌가도 생각해 본다.
더군다나, 아직 실용화되지 못한 SMR(소형 모듈식 원자로)이 기존 원전과는 달리 매우 안전하다는 인식도 퍼지고 있는 것 같다. 원자력산업도 지켜야 할 우리나라 자산이라는 인식도 강화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어쩌면 여기에는 기술 발전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줄 수 있기 때문에, 10만 년이 지나야 소멸된다는 고준위 핵폐기물도 후손들이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한몫하는 게 아닌가 한다.
그렇지만, '기후'에 '에너지'와 '환경'까지 책임진다는 주무부처에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불철저한 여론조사를 해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 여론 수렴'을 오히려 방해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여론조사로 신규 대형원전을 추진하는 정책 동력을 확보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아무리 대통령 국정 긍정률이 60%대로 높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고공행진하는 대통령 긍정률에 힘입어 어쩌면 골치 아픈 정책 현안을 급히 추진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절차는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렇게 해야 '숙의과정을 거친 국민 여론과 전문가 의견 수렴에 기반한' 정책을 추진했다고 역사에 기록될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클리프(www.climateinfact.org)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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