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주는 것만 남는다
영혼 대추수를 위한
‘유산 선 기부운동’을 시작하며

지난 주일 세계 최빈국 말라위 릴롱궤에서 ‘말라위 사랑의병원’을 시작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였다.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는 말씀과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 25:45)는 말씀으로 성령 하나님이 마음을 찔러 갑작스러운 결단을 하게 됐다.
말라위 성도들은 오늘도 신음 속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 한 끼조차 보장되지 않는 굶주림, 학교에 가지 못한 채 방치된 아이들, 책임을 버리고 떠난 남편들로 인해 홀로 남겨진 아내들, 반복되는 성폭행과 폭력, 예고 없이 찾아오는 질병과 치료받을 수 없는 현실, 끝없이 오르는 물가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
이것은 단순 통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성도들의 일상이다. 이 모든 현실 앞에서 말라위 믿음의 어머니들은 눈물로 아이들을 품에 안고 찬송을 부르며 믿음 안에서 버티고 있다. 사람의 말이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을 때 성령께서는 친히 탄식하심으로 그들의 고통을 품고 계신다.(롬 8:26) 그리고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는다.”(고전 12:26) 이 신음은 우리와 한 몸인 말라위 형제들에게서 새어 나오는 통증이다.
성경은 선포한다.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고후 9:9) 여기서 ‘흩어’는 헬라어 스코르피조(skorpizo·흩뿌리다)인데,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씨앗을 흩뿌리듯 삶의 결을 따라 지속적으로 나누는 움직임이다. 기부는 사람 안에 심어진 복음이 만들어 내는 생활 리듬이다. 이어진 구절은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를 말한다. 바울은 여기서 놀라운 전환을 선포한다. 흩어 주는 행위는 사라지는 소비가 아니라 영원히 남는 의의 흔적이 된다는 것이다.
바울이 기부를 ‘의’로 끌어올리는 이유는 의가 추상적 도덕이 아니라, 하나님과 바르게 연결된 삶이 만들어내는 언약적 신실함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신실함이 돈의 흐름으로 증명될 때 비로소 삶으로 복음을 말하게 된다. 돈은 원래 휘발성이 강하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돈은 증발하지 않고 의로 전환된다. 결국 인생에서 끝까지 남는 것은 사랑 때문에 내어준 것뿐이라는 말씀이다.
고린도후서 9장 10절은 이렇게 말한다. “심는 자에게 씨(Seed)와 먹을 양식(Bread)을 주시는 이가….” 하나님은 돈을 오늘 살아갈 양식, 내일 열매를 낳을 씨앗의 두 범주로 나누어 우리 손에 쥐게 하신다. 씨(sporos)는 파종의 자원, 내일을 여는 씨앗이고 양식(brosis)은 생존의 자원, 오늘을 사는 빵이다. 이 순서가 중요하다. 하나님은 씨만 주고 굶기시는 분이 아니며 동시에 빵만 주고 내일을 닫으시는 분도 아니다.
성경적 개념은 단순히 얼마를 모으느냐가 아니라 씨와 빵을 구분할 줄 아는 영적 지혜이다. 빵은 먹되 씨는 남겨야 하고 씨는 결국 흩뿌려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바울이 사용한 “공급하사”라는 헬라어 단어는 당시 문화에서는 합창단 비용을 대는 뜻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 문장은 사실상 이렇게 들린다. “하나님이 삶의 파종을 후원하신다.” 엄청난 선언이다. 우리가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속 공급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흩어 나누는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뒤에서 감당하신다는 뜻이다. 바울은 그 결과를 부의 열매라 부르지 않고 “의의 열매”라고 말한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후원을 이렇게 말한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너희 계정에 더해지는) 열매를 구함이라.”(4:17) 바울은 후원을 하늘의 장부에 쌓이는 열매로 간주했다. 헌금과 기부는 사라지는 돈이 아니라 영원으로 옮겨 심어 ‘계정에 축적되는 열매’인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경제학이다. 돈은 쌓아두면 불안이 커지고 분쟁이 생기고 결국 남김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흩어 주면 감사가 넘치고 영혼이 구원받고 의의 열매가 남는다. 인생에서 주는 것만 남는다는 말은 감상적 문장이 아니라 성경적 절대 진리이다.

맘몬의 시대에 돈은 더 이상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의 말씀을 프랑스 사회학자 자크 엘륄은 “역사상 돈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의”라고 했다. 돈은 단순한 중립적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과 경쟁하는 영적 존재’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주식과 코인, 파생상품과 가상자산 등 끝없이 불어나는 숫자 게임 속에서 살아간다. 그 속에서 맘몬의 속삭임은 언제나 동일하다. “조금만 더 모아라” “아직은 기부할 때가 아니다” “먼저 네 가정, 네 자녀부터 지켜라.”
그러나 성경은 정반대의 길로 우리를 몰아붙인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1)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니라.”(레 25:23)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廳直·steward)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잠시 맡기신 시간 건강 재능 재정 인맥을 어디에, 어떻게 흘려보내느냐가 인생의 진짜 성적표가 된다.
자산을 나눌 때 자주 사용하는 구분이 있다. ①생계자산(기본적인 삶에 꼭 필요한 몫) ②여유자산(소박한 문화·휴식을 누릴 수 있는 몫) ③복지자산(사회적 약자와 공공선을 위한 자산) ④잉여자산(평생 써도 못 쓰고 죽을 돈) ⑤신용자산(숫자로만 존재하는, 끝없이 불려지는 자산).
성경은 생계·여유·복지자산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난한 자를 위한 복지(레 19장)와 안식, 축제(신 16장)를 명령하신다. 잉여자산과 신용자산에 대해서는 매우 강하게 제동을 거신다. 7년마다 부채를 탕감하는 안식년 제도, 50년마다 땅을 원주인 가문으로 되돌리는 희년(Jubilee)이 바로 하나님의 디자인이다. “땅은 내 것”이라 선언하시며 구조적 가난과 무한 축적을 동시에 끊어내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늘 보좌의 기초는 “공의(미쉬파트)와 정의(체다카)”이다.(시 89:14) 그래서 성경적 축복은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것이다.

과거 서울대 병원 인턴으로 근무할 때 일이다. 일본에서 자수성가한 재일교포 50대 남자가 종합검진을 받다가 말기 간경화가 발견됐다. 바로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나빠져 자신의 집에서 임종을 맞기를 원했다. 그는 나를 붙잡고 울며 신세타령을 했다. “잘 지내다가 검진을 받았는데 그 날로 바로 입원해 한 달 치료를 받았다. 충격적이다. 노후를 위해 일본에 쌓아놓은 돈을 한 번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이대로 가야 하니 정말 한심하고 억울하다.”
이때 불현듯 떠오른 말씀이 있었다.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 12:18~20)
모두가 노후 대책만 관심이 있었지 사후 대책에는 관심이 없었던 때의 비극이다. 갑자기 말기 암을 발견해 치료받던 환자들이 동일하게 고백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내 일생이 종말을 맞이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리는 순환적 사고에 익숙해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 중심의 성경적 직선 사고를 망각하곤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삶이 ‘길다’는 착각이 깨질 때가 있다. 갑작스러운 병이나 예고 없는 사고, 예상치 못한 이별이다.
그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내가 쥐고 있던 것들은 내 것이 아니었고, 나의 시간까지 결코 내 소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맘몬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더 많이 모으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주는 방향’으로 서는 것이다. 이제 ‘어디에, 누구를 위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물어야 할 때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산 기부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들리기 시작했다.
필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산 선(先) 기부(Holy Legacy Giving)’를 제안하고 싶다. 죽기 직전 급히 서명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맑고 기도할 수 있고 주님의 얼굴을 기쁘게 떠올릴 수 있을 때 미리 정하고, 미리 감사하고 미리 기뻐하며 유산의 흐름을 설계하는 것이다. 그 축복의 통로는 ‘영혼 대추수를 향한 거룩한 유산(Holy Legacy for Great Harvest)’이다. 여기엔 두 가지 축이 있다.
하나는 거룩한 유산설계(Holy Legacy Plan)인데 나의 자산 구조를 점검하고 생계·여유 자산을 넘어 잉여·신용 자산 일부를 거룩한 목적을 위해 ‘따로 떼어두는’ 인생 설계이다. 두 번째는 거룩한 유산기부(Holy Legacy Giving)로, 살아 있는 동안 소액이라도 꾸준히 심고 유언·신탁·기부 약정 등을 통해 내가 떠난 뒤에도 계속 복음과 긍휼을 향해 흘러가도록 구조를 만드는 실제 행동이다. 이는 단순한 재무 슬로건이 아니라 성경·역사·현대의 실제 모델들이 증명한, 맘몬 시대를 돌파하는 마지막 청지기 프레임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는(고후 9:7) 말씀처럼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 정하고 기쁨으로 미리 준비해 10억 영혼 구원과 가난한 성도들의 눈물에 유산을 흘려보내자.
우리가 나누는 모든 헌금과 기부, 유산은 ‘선물에 대한 응답’일 뿐이다. 인생에서는 결국 내가 붙잡은 것은 사라지고, 내가 사랑 때문에 내어준 것만 주님의 가슴 속에 남는다. 다음과 같은 결단이 곳곳에서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주님 오실 날을 바라보며 내 죽음 이후의 시간을 신앙으로 설계하며, 내 자녀 세대에게 모으는 인생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인생의 본을 남기기 위해 영혼 대추수를 위한 거룩한 유산 선 기부운동(Holy Legacy for Great Harvest)에 조용히 동참하고자 합니다.”
재정 구조를 끝까지 내가 쓰는 세상의 구조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나누고 죽은 뒤에도 계속 흘러가는 하늘의 시스템으로 설계하자.

황성주
미션펀드 회장·사랑의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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