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달달 외던 조○○, 참회는 없었다” ‘그럼에도’를 묻는 목사

김용현 2026. 1. 28.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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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째 ‘담장 안’ 지키는 아가페선교회 김기동 목사
“되돌아봄 없는 지식은 자기방어의 껍데기일 뿐... 변화는 성령의 영역”
김기동 목사가 최근 서울남부교도소 내 소년수용시설인 ‘만델라소년학교’에서 소년수에게 세례를 집례하고 있다. 김 목사 제공


“목사님, 제가 나가면 사람들이 저를 가만두겠습니까. 맞아 죽을지도 모릅니다.”

2020년 12월, 서울남부교도소 상담실. 출소를 불과 며칠 앞둔 아동 성범죄자 조○○이 김기동(65) 목사 앞에서 몸을 떨고 있었다. 그는 12년의 수감 생활 동안 성경을 70여번 읽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레위기의 복잡한 제사법과 성경 속 단위인 ‘에바’의 수치까지 막힘없이 읊조렸다. 하지만 김 목사의 눈에 비친 그 지식은 타인을 향한 참회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회의 보복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두른 껍데기에 불과했다.

김기동 목사가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한국교회 교정 사역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7년 동안 교정사역에 전념한 김 목사는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에서 만난 자리에서 당시의 기억을 꺼냈다. 그는 “조○○은 피해자의 고통을 묻는 말 대신 ‘나가서 입을 옷과 신발은 있느냐’고 물었다”며 “보복을 피하려고 관용차를 지원해달라는 요청도 거듭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출소하면 심방을 해달라고 한 그를 위해 기도했지만, 다시 문제를 일으킨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내가 돕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부도의 절망 끝에서 마주한 죄수복

김 목사가 이토록 척박한 교정 사역에 투신한 데는 본인의 처절했던 과거가 자리 잡고 있다. 대학을 나와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고, 30대 시절 출판 기획과 인쇄 사업을 운영하던 김 목사는 한때 자산을 모으며 승승장구하기도 했다. 그는 “세상으로 나가서 돈 좀 벌어보겠다고 하다가 하나님과 멀어졌다”며 “돈맛을 알게 되니 사람이 교만해졌다”고 말했다.

무리한 투자로 부도를 맞으며 김 목사의 삶은 일순간에 무너졌다. 빚쟁이를 피해 도망 다니던 절망의 끝에서 찾은 오산리기도원에서 그는 20일간 금식했다. 김 목사는 “비참했다. 빚진 사람이 살길이 없었다”며 “거기서 하나님 은혜가 아니었으면 저 죄수복을 입고 있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였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40살에 총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한 늦깎이 신학생은 그렇게 17년째 전국 교도소를 도는 목회자가 됐다.

김기동 목사가 경기도 여주 소망교도소에서 열린 부흥회 강단에서 수용자들에게 설교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경북 영양 오지에서 보리쌀 한 포대로 열 식구를 먹이며 목회하던 가난한 평신도 목회자였다. 김 목사는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항상 찬송가를 부르셨다. ‘너는 하나님께 바친 사람이니 곁길로 가면 안 된다’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셨다”면서도 “하나님이 계신다면 우리가 가난한 게 믿기지 않아 반항했다”고 회고했다. 어린 시절 산 밭에서 들었던 그 찬송 소리는 그가 방황하던 시절 가장 늦게 떠올랐지만, 결국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신앙의 뿌리가 됐다.

“사람은 모른다”는 인정과 학문적 분투

김 목사의 사역 철학은 “나는 사람을 모른다”는 고백에서 시작된다. 그는 “사역 초창기에는 뜨거운 설교 한 번이면 사람이 변할 줄 믿었다. 하지만 10년 넘게 돌본 재소자가 출소 후 다시 죄를 짓고 들어오는 걸 보면서 제 무력함을 확인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사람은 지식이나 공부로 변하는 게 아니다. 변화는 오직 성령의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김기동 목사가 2024년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취득한 목회상담학 박사 학위 논문 표지.

재소자들의 뒤틀린 내면을 학문적으로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그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 미국 풀러 신학교로 향했다. 고된 학업 끝에 2024년 목회상담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의 논문 ‘총체적 교정선교의 목회돌봄 방안 연구’는 지난 17년 현장 임상의 기록을 모은 결과물이다.

담장 안에 사역자를 심는 ‘이삭 줍기’

2012년 김 목사가 설립한 아가페선교회는 전국 10개 교정 시설을 정기적으로 순회한다. 이를 주도하는 김 목사는 예배를 드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재소자 중 신앙이 깊은 모범수를 선발해 내부 사역자인 ‘구역장’으로 임명하는 제자 훈련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교도소 안에 구역장들을 세우는 방식이다. 현재 36명 정도가 사동과 공장에서 동료들의 마음을 돌보는 전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례비 없이 사비로 영치금과 간식비를 충당하는 자비량 사역이지만, 그는 이를 ‘이삭 줍기’라 부르며 멈추지 않는다.
김기동 목사와 아가페선교기도회 동역자들.

현장에서 느낀 한계는 정책적 제언으로 이어졌다. 김 목사는 “지금 한국 교회의 교정 사역은 각자도생”이라며 “신학교 내에 전문적인 교정선교학과를 신설해 사역자를 체계적으로 길러내고, 교단 차원의 연합 사역과 후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단순히 담장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넘어, 출소 후 사회 정착까지 돕는 총체적인 연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신앙을 지킬 수 있게 한 97세 부친은 김 목사가 찾을 때마다 용돈을 모아 사역비 봉투를 매번 내어놓는다고 했다. 김 목사는 “아버지는 기도로 돕는 ‘보내는 선교사’이고, 나는 몸으로 뛰는 ‘들어가는 선교사’”라며 “비록 열매가 금방 보이지 않는 경험을 한다고 해도, 단 한 사람이라도 구원받는다면 그것이 제 사명”이라고 말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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