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자산은 건물보다 제자”… 순종이 만든 ‘소울웨어’ 목회

이현성 2026. 1. 28. 03:0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정호 새로남교회 목사
오정호 새로남교회 목사가 지난 23일 대전 새로남기독학교에서 교회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오 목사, 할 말이 있네. 대전에 양 떼들이 방황하는 교회가 있는데 자네가 가면 좋겠어.”

1994년 5월, 이제 막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그는 스승 옥한흠(1938~2010) 목사를 만난 자리에서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내심 장학금 소식을 기대했지만, 유학생에게 떨어진 요청은 대전으로의 청빙. 그 이면엔 대전과 충청권에 제자훈련 정신이 깃든 교회를 세우려는 스승의 비전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담임목사가 갑작스레 서울로 떠난 대전의 교회는 구심점을 잃고 두 파로 갈라져 있었다. 더군다나 대전은 사돈의 팔촌도 없는 타향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 29:25)는 말씀을 붙들고 짐을 쌌다.

그렇게 시작된 대전 목회 여정이 어느덧 32년. 최근 대전 새로남교회에서 만난 오정호(69) 목사는 “그때의 순종이 지금의 은총무한(恩寵無限)을 만들었다”고 회고하며 빛바랜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였다. 95년 새로남교회 위임식에서 옥한흠 목사와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 스승의 나이를 훌쩍 넘겨 칠순을 바라보는 동안 대전 변동의 상가교회는 이전에 이전을 거쳐 어느덧 지역을 대표하는 영적 요람으로 성장했다.

건물과 프로그램보다 중요한 것

올해로 설립 40주년을 맞은 새로남교회는 대전의 행정 중심지인 정부청사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오 목사의 관심은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나 화려한 프로그램 같은 소프트웨어에 있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 내내 ‘소울웨어(Soul-ware)’를 강조했다.

“예수님의 인격은 건물이나 프로그램에 담기지 않습니다. 영혼이 변화된 사람을 길러내는 소울웨어가 튼튼해야 합니다. 스승 옥한흠 목사님께 배운 목회자의 핵심 역할도 결국 건물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남기는 데 있었습니다.”

오 목사는 94년 부임 직후부터 제자훈련을 시작해 2026년인 올해 31기 훈련생을 배출한다. 그는 “제자훈련의 열매는 교회의 외적 성장이 아닌, 교회를 든든히 떠받치고 있는 평신도 리더”라며 지난달 31일 새해를 앞두고 받은 편지를 한 장을 꺼냈다. 새로남교회 첫 제자훈련 훈련생인 김용태 장로가 오 목사와의 인연을 곱씹으며 장례까지 동역을 다짐한 편지였다. 오 목사는 “30년간 배출된 리더들이야말로 우리 교회의 진짜 자산”이라고 말했다.

신앙생활에서 생활신앙으로

오 목사가 제자훈련을 통해 다지려는 소울웨어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성도들의 성공 가치관을 재정의하는 데 있다. 세상은 연봉이나 명예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지만, 그는 이를 거부했다.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나서 부자가 되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는 것을 성공이라고 착각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세상 스펙 경쟁은 이른바 ‘도토리 키 재기’에 불과합니다.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화된 그 자체가 기적이고 이미 완성된 성공입니다.”

그는 탄탄한 소울웨어를 갖춘 성도라면 신앙생활을 넘어 생활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일이나 교회 안에서만 거룩한 척하며 살아가는 게 아니라 가정과 일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는 일상의 예배자가 돼야 한다는 주문이다.

생활신앙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오 목사는 올 초 전 성도에게 감사 노트를 나눴다. 디지털 시대지만 작성법은 굳이 손으로 쓰는 아날로그 방식을 택했다. 그는 “은혜를 기록하지 않으면 금세 잊어버리고 불평하게 된다”며 “감사 노트는 내 안에 이미 와 찾아온 기적과 구원의 기쁨을 확인하는 영적 훈련”이라고 전했다.

끝까지 지킬 목양 5원칙

오 목사의 소울웨어 철학은 성도 개인을 넘어 교회와 리더십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성도에게 스펙보다 본질을 주문했듯, 교회 역시 교인 수나 건물의 크기가 아닌 내면의 가치로 증명해야 한다는 논리다. 오 목사는 달러 얘기로 이해를 도왔다.

“한국 지폐는 액수마다 종이 크기가 다르지만, 미국 달러는 1달러나 100달러나 크기가 같습니다. 가치는 종이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이 인쇄됐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건물의 웅장함보다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얼마나 선명하게 새겨져 있느냐가 진짜 가치를 결정합니다.”

본질 중심의 철학은 은퇴를 2년 앞둔 그의 마무리 계획으로도 이어진다. 57년생인 그는 “‘능력보다 화목’ ‘혼자보다 함께’ ‘문화보다 복음’ ‘현재보다 미래’ ‘나보다 주님’ 등 목양 5원칙을 끝까지 견지하겠다”며 다음과 같이 다짐했다.

“차 외관이 아무리 번쩍여도 엔진이 식어버리면 그건 고철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해도 영혼을 구원하는 십자가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은퇴하는 그날까지 제 가슴 속 영적 엔진을 뜨겁게 달구며 목자의 길을 배반하지 않고 완주하겠습니다.”

새로남기독학교
교육청 인가는 결승선 아닌 새로운 출발선
새로남기독학교 이사장인 오정호 새로남교회 목사와 새로남기독학교 학생들이 대전의 학교 로비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내년이면 칠순. 교단 헌법이 정한 정년 은퇴까지 오정호 새로남교회 목사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2년 남짓이다. 한데 32년의 목회 여정을 잘 마무리하기에도 시간이 많지 않지만, 그의 비전은 여전히 10년 뒤, 20년 뒤를 내다보고 있다. 다음세대 교육이다. 새로남기독학교가 최근 제도권 교육의 문턱을 넘어 정식 인가를 획득한 건 그 집념의 결과물이다.

교회가 2013년 초등과정을 설립해 2016년과 2021년 중·고등과정을 차례로 개교한 새로남기독학교는 지난달 15일 관할 교육청으로부터 중·고등 과정 정식 인가를 취득했다. 학생들은 검정고시를 치르지 않고도 정규 학력을 인정받게 됐고, 고교학점제 운영과 대학 입시에서도 일반 공립학교 학생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됐다.

학교의 성장은 아이들의 구체적인 변화로도 증명되고 있다. 지역 사회에서 새로남기독학교는 욕설 없는 청정 학교로 통한다. 졸업생들이 진학한 일반 고교에서는 “새로남 출신은 대화에 욕설을 섞지 않고 교사를 존중한다”는 호평이 이어진다. 학업 역량도 탁월하다. 오 목사는 “매일 아침 진행하는 큐티(말씀 묵상)와 글쓰기 훈련이 아이들에게 강력한 자기주도학습 능력을 길러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졸업생들은 대학 진학 후 평균 4.0 이상의 높은 학점을 받거나 이공계 수석을 차지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오 목사에게 이번 인가는 헌신의 결승선이 아닌 지속가능한 학교를 향한 새로운 출발선이다. 그는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는 지론 아래 교사들이 긍지와 사명감으로 강단에 설 수 있도록 공립학교 수준 이상의 처우와 복지를 약속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은퇴 전까지 학교 재정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공언이다. 오 목사는 학교 운영과 장학을 위한 대규모 펀드를 조성해 후원금이나 등록금에 의존하다 재정난에 처하지 않겠단 배수진을 쳤다. 교육은 무한 투자라는 철학 아래 시스템이 흔들리지 않는 교육의 항상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오 목사는 “새로남기독학교는 단순히 아이들을 세상으로부터 격리해 보호하는 곳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잠재력을 폭발시켜 세상으로 파송하는 곳”이라며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 신앙의 유산을 잇지 못한 교회엔 내일이 없다. 믿음의 바통을 다음세대 손에 반드시 넘기겠다”고 다짐했다.

대전=글·사진 이현성 기자 sag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