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유급 피하고 미국 가는 게 목표"…의대증원, 현실은 이미 한계

김효경 2026. 1. 2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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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의과대학 증원과 의학교육 문제’ 세미나
“의대 증원으로 교육 현장 혼란…더블링 현상 심각”
김택우 의협회장 “증원보다 의대 교육 정상화가 우선돼야”
27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열린 ‘의과대학 증원과 의학교육의 문제 II’ 세미나에서 토론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정부가 2027학년도 이후 의과대학 정원 증원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의과대학 교육 여건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의정갈등으로 인한 집단 휴학 여파로 24·25학번이 같이 수업을 듣는 ‘더블링’ 상황이 심각한 상황 속에서, 시설 확충은 제자리걸음이고 학생과 교수 모두 피로와 무력감을 호소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채희복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27일 대한의사협회(의협) 의료정책연구원이 개최한 ‘의과대학 증원과 의학교육의 문제 II’ 세미나에서 정부의 갑작스러운 증원 정책으로 교육 현장이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채 교수에 따르면 현재 충북대 의대 24·25학번 정원은 총 176명으로, 군입대 학생을 제외하면 24학번 38명과 25학번 112명 등 총 150명의 학생이 동일한 수업을 듣고 있다. 의대증원에 반대해 전원 휴학했던 24학번 학생들은 지난해 7월 복학했지만, 모두 F학점 처리가 됐다.

문제는 증원에 따른 교육 인프라 확충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말 국회를 통과한 2025학년도 예산에서 증원 대응 건축비 140억원이 확보됐지만, 정권 교체 이후 건축비와 기자재비 집행이 모두 보류된 상태다.

현재는 2024년 이전에 확보된 여건 개선 예산 10억원 가운데 잔여금 2억원과 본부 시설·예산 1억원 등 총 3억원으로 강의실 확장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27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열린 ‘의과대학 증원과 의학교육의 문제 II’ 세미나에서 채희복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채 교수는 ‘충북의대 의예 1년(더블링) 교육 상황’ 주제 발표에서 “실패한 정책을 인정하고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며 “정책 실패의 부담은 24·25학번 학생들이 떠안고, 전공의 부재로 인한 필수의료·지역의료 붕괴의 피해는 응급환자와 현장에 남은 대학교수들이 감당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4·25학번 재학생을 대상으로 대학 생활과 더블링 교육에 대한 인식, 건의사항 등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학생들의 불안과 불편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설문에 참여한 한 24학번 학생은 “실력 있는 의사가 돼 지역의료에 기여하고자 의대에 입학했지만, 이제는 불가능한 목표가 됐다”며 “유급만 피하고 졸업한 뒤 미국으로 가는 것이 인생 목표가 됐다”고 답했다.

또 다른 학생은 “예과 전공 수업부터 200명 가까운 학생들이 한 강의실에 몰려 수업을 듣는 풍경이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며 “지금은 본과에 비해 중요도가 낮은 수업이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25학번 학생들은 “24학번과의 관계에서 차별이 생길까 두렵다”며 “강의실과 해부실 등 시설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라고 호소했다. 이어 “졸업 이후에도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수련 기회를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27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열린 ‘의과대학 증원과 의학교육의 문제 II’ 세미나에서 김도환 고려대 의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효경 기자

의정 갈등 속에서 교육 시스템을 운영해야 했던 교수와 직원들이 겪은 혼란도 공유됐다.

김도환 고려대 의대 교수는 ‘의정사태가 의학교육에 미친 영향’ 주제 발표에서 의학교육 현장에서 교수와 연구강사, 행정 직원들이 체감한 변화를 전했다. 김 교수가 수집한 의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공통적으로 ▲현장의 붕괴와 혼란 ▲관계의 단절과 날 선 감정 ▲깊은 무력감과 체념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김택우 의협 회장도 참석해 의대 증원 과정 전반을 강하게 비판했다.

김 회장은 “의대 증원 논의 과정에서 의학교육의 당사자인 의대생과 교수는 철저히 배제됐다”며 “현재 24·25학번 재학생만 6000명에 이르고, 휴학이나 군입대를 앞둔 약 1500명은 2027학년도 증원 인원과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2000명 증원처럼 정해진 목표를 두고 달려가는 모습은 전 정부와 다르지 않다”며 “달라진 점이 있다면 회의 과정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의사 수 증원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의학교육의 문제”라며 “오늘 열리는 보정심 5차 회의에서도 교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의대 증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의과대학 증원과 의학교육의 문제 II’를 주제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는 의협 의료정책연구원과 한국의학교육협회 공동 주최로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열렸다. 세미나는 의과대학 증원 이후 의학교육 현장의 실태를 점검하고, 교육 여건과 교육과정, 임상실습 등 핵심 과제를 중심으로 의학교육 정상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정부는 현재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통해 2027학년도 이후 의사 인력 양성 규모를 논의하고 있다. 보정심은 2037년 기준 의사 부족 규모를 2500여 명에서 4800명 사이로 추산하며 증원 논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의사단체는 오히려 의사가 과잉 공급될 수 있다며 증원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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