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전 에픽하이 노래는 왜 다시 차트에 올랐나
[이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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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전히 불리고 있는 에픽하이의 노래. |
| ⓒ OURs |
이 역주행의 직접적인 계기는 샘플링이었다. 식케이와 릴 모쉬핏의 < K-FLIP+ > 수록곡 'Lov3' 트랙이 주목받으면서, 그 결과 샘플로 쓰인 원곡까지 관심이 확장됐다. 'Lov3'은 에픽하이의 노래를 재해석하며 원곡의 시그니처 후렴구를 전면에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경우 보통 신곡이 차트에 오르기 마련인데 원곡이 차트에 진입했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최근의 청취 환경을 떠올릴 수 있다. 요즘 인기를 끄는 곡들은 클라이맥스가 과하거나 폭발하지 않는다. 감정을 많이 투자해 집중해서 듣지 않아도 자연스레 귀에 남는 감각이 중요해진 환경에서, 'Love Love Love'는 여전히 유효했다.
쇼츠는 지금 귀에 맞는 음악을 빠르게 퍼뜨린 장치일 뿐이다. 이 곡은 반복되고 되돌아오는 짧은 호흡의 분절된 멜로디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반복 재생에 적합하다. 사랑 노래임에도 특별히 들뜨거나 가라앉지 않는 '플랫함'을 유지하며, 여러 번 소비되어도 피로감을 남기지 않는다.
짧은 구간만 들어도 곡 전체가 설명되는 구조 역시 한몫했다. 쇼츠로 재소환되는 곡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키치한 가사와 후렴구'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Love Love Love'는 이 조건을 정확히 충족한다. 발매 당시 한국형 발라드 열풍과는 결을 달리하며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음정 폭이 좁아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고, 미니멀하고 캐치한 리프를 반복적으로 쌓아 청자의 귀에 각인시킨다. 이를테면 지선의 목소리가 인트로에서 주제를 던진 뒤, '밤 12시 술 취해'라는 멜로디가 1절 벌스에서 전자음 형태의 배경으로 반복된다. 후렴을 제외한 곡 전반에 깔리며, 청자는 그 멜로디를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게 된다. 1절에서 2절로 넘어가는 간주 역시 두 마디 만에 정리된다.
이후 브리지에는 락킹한 샤우팅 파트가 배치된다. 다만 이 샤우팅은 록 장르의 문법에 따라 폭발하는 방식이라기보다, 스타일만을 차용해 키치한 제스처로 구현된 것에 가깝다. 곡의 화성 역시 극도로 단순하다. 브리지를 제외하면 베이스는 '라-시 / 솔#-도#'의 패턴을 시종일관 반복하며, 전체를 구성하는 코드는 F#m-B-G#m-C#m, 단 네 개뿐이다.
이러한 비움의 미학은 당대 유행하던 SG워너비류의 한국 발라드와는 다른 결을 만들며, 오히려 곡을 시대를 타지 않는 클래식의 위치에 놓는다. 멜로디 운용 역시 주제의 반복과 변주에 충실하다. 예컨대 '밤 열두 시 술 취해'의 '술 취해' 부분은 'Love Love Love'의 주제 멜로디를 음의 순서만 변형한 형태다. '술 취해'가 '파#-레#-미'라면, 'Love Love Love'는 '레#-파#-미'로 구성된다. 이러한 대칭적 구조는 하나의 주제를 곡 전체에 걸쳐 환기하며, 청자의 귀에 자연스럽게 각인되는 효과를 낳는다. 이처럼 단순한 구조에 서정성을 부여하는 장치는 스트링 사운드다. 랩과 비트, 미니멀한 리프를 잇는 신시사이저 스트링은 곡 전체의 정서를 감싸며 감상의 밀도를 높인다.
가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에픽하이의 가사는 대체로 그룹 이름처럼 서정시 혹은 서사시에 가깝다. 환경과 같은 거대 담론을 다룬 'Map the Soul'이나, 한 시대의 꿈을 노래한 '낙화', '연필깎이' 같은 곡들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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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픽하이(Epik High) 정규 4집 (2007) 앨범 자켓. |
| ⓒ CJ Music |
이번 'Love Love Love'의 역주행은, 바로 이러한 변화 속에서 현시대 리스너들의 감각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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