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센과 치히로~’, 지브리 애니 중 몇 번째 무대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끄는 스튜디오 지브리는 일본을 넘어 세계적으로 명성을 자랑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사다. 한국에서도 애니메이션 팬들은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부터 ‘이웃집 토토로’ ‘천공의 성 라퓨타’ ‘붉은 돼지’ ‘모노노케 히메’ 등을 불법 비디오로 보곤 했었다. 그리고 2002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부터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한국에도 바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지난 2020년 지브리가 넷플릭스와 계약을 맺고 주요 작품을 스트리밍하면서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한층 가깝게 다가왔다. 2026년 현재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22편이다.
최근 한국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무대로 옮긴 동명 연극의 인기가 높다(~3월 22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지브리 애니메이션 가운데 무대화된 것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이웃집 토토로’ 등 2편이라는 기사가 나왔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두 작품을 포함해 그동안 무대화된 지브리 작품은 모두 8편이다. 다만 애니메이션 원작이 따로 있는 작품이나, 같은 애니메이션이라도 각각 다르게 무대화된 작품 등을 고려하면 수치가 달라진다.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는 1985년 스튜디오 지브리 설립 이후 네 번째 나온 작품으로, 미야자키 감독이 원안을 쓰지 않은 첫 작품이다. 1989년 개봉한 애니메이션은 작가 가도노 에이코가 1985년 출판한 동명 동화가 원작이다. 앞서 나온 ‘천공의 성 라퓨타’와 ‘이웃집 토토로’ ‘반딧불이의 묘’가 일본에서 70~80만명 관객 동원에 그친 데 비해 이 작품은 264만명을 기록해 지브리의 이름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반대로 애니메이션의 인기 덕분에 원작 동화는 시리즈로 나오게 됐다. 1993년 2권을 시작으로 2009년까지 6권이 출판됐다. 또한, 2014년에는 1~2권을 가지고 실사 영화가 만들어졌다.
‘마녀 배달부 키키’는 여러 차례 무대화됐는데, 동명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1권만 다루고 있다. 일본에서는 요코우치 겐스케 대본을 가지고 거장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가 1993년 초연 이후 1995‧1996년 재연을 올렸으며, 극단 시키 출신 극작가 겸 연출가 기시모토 고키가 2017년 새로운 버전의 뮤지컬을 선보인 뒤 2018‧2021‧2024‧2025년 꾸준히 공연하고 있다. 또 영국에서도 제시카 시엔 각색, 케이티 휴잇 연출로 2016년과 2017년 한 달씩 두 차례 공연된 바 있다.

미야자키 감독은 도에이 애니메이션에서 함께 일한 동료 다카하타 이사오(1935~2018) 감독과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를 세웠다. 다카하타 감독의 ‘반딧불이의 묘’는 1988년 미야자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와 함께 동시 상영됐다. ‘이웃집 토토로’의 경우 미야자키 감독이 대본부터 썼지만, ‘반딧불이의 묘’는 작가 노사카 아키유키가 1967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1945년 고베 공습 이후 굶주림 속에서 살아가다 비극적 결말을 맞는 남매의 이야기는 노사카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애니메이션에 대해 한국에선 전범국가인 일본의 잘못을 희생자의 역사로 전환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애니메이션은 일본 개봉 당시 흥행 성적은 평범했지만, 비평 면에선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TV에서 자주 방영된 덕분에 일본인에게 매우 친숙한 작품이 됐다. 덕분에 2005년 실사 드라마, 2008년 실사 영화로도 제작됐다. 공연으로는 아동청소년극단인 극단 포플라가 2008년 처음 뮤지컬로 선보였다. 이 뮤지컬은 2009‧2011‧2012년 일본 중고생 대상 순회공연이 이뤄졌다.

다카하타 감독이 1988년 출판된 오카모토 아키라-도네 유코의 만화 ‘추억은 방울방울’을 1991년 동명 애니메이션으로 내놓았다. 직장인이 된 여주인공이 초등학생 시절의 추억을 되돌아보는 구성은 원작엔 없는 애니메이션만의 특징이다. 만화보다 애니메이션으로 워낙 친숙하다 보니 2011년 뮤지컬과 2021년 드라마 모두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했다. 그래서 극단 와라비좌의 동명 뮤지컬이 나올 때 원작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브리 애니메이션 가운데 처음 무대화된다는 기사가 나왔다.
일본 아키타현에 본거지를 둔 와라비좌는 동북 지방의 전통예술과 현대적인 뮤지컬 및 퍼포먼스를 결합한 작품을 선보이는 극단이다. 창단 60주년 기념작으로 거장 연출가 구리야마 다미야를 초청하고 다카라즈카 가극단 출신 스타 배우 아사미 히카루를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한 뮤지컬 ‘추억은 방울방울’은 2011년 4월 도쿄 초연 당시 3.11 동일본 대지진과 맞물려 더욱 주목을 받았다. 극단이 위치한 아키타현이나 작품 속 배경인 야마가타현이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가 컸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동일본 대지진 부흥 지원’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와라비좌의 전용극장에서 장기공연되는 한편 2년 가까이 전국 투어를 돌았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메시지를 담은 ‘모노노케 히메’는 미야자키 감독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1997년 개봉 당시 일본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이후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 최초로 서구권 배급 및 개봉이 이뤄졌다. 덕분에 미야자키도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2013년 당시 영국의 신생 극단 홀 호그 시어터(Whole Hog Theater)가 동명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알렉산드라 루터가 각색 및 연출한 연극 ‘모노노케 히메’를 선보였다. 스튜디오 지브리가 원안부터 직접 만든 애니메이션 가운데 처음 무대화된 작품으로, 대형 제작사 대신 젊은 극단에 무대화를 허락해 화제였다. 애니메이션 ‘월레스와 그로밋’의 닉 파크 감독이 지브리 측에 버려진 나무와 플라스틱병을 활용한 홀 호그 시어터의 공연 영상을 보내며 도움을 요청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젊은 연극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80석 규모의 런던 뉴 디오라마 극장 무대에 오른 ‘모노노케 히메’는 2013년 4월 초연(5일)과 6월 재연(12일)이 티켓 오픈 이후 몇 시간 만에 매진된 것은 물론 평단의 호평도 끌어냈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5월 830석 규모의 도쿄 아이아 시어터에서 8일간 모두 팔렸다. 참고로 홀 호그 시어터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무대화를 이어가고 있는데, 일본 제작사 네르케 플래닝과 손잡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언어의 정원>을 연극으로 만들어 2023년 런던과 도쿄에서 공연했다.
한편 ‘모노노케 히메’는 오는 7~8월 도쿄에서 일본 공연 제작사 쇼치쿠가 슈퍼 가부키로도 선보일 예정이다. 슈퍼 가부키는 일본 전통 연극 가부기의 노래와 춤을 강화하는 등 스펙터클을 강화한 현대적인 가부키다.

미야자키 감독의 1992년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의 원안은 본인이 집필한 단편만화 ‘비행정 시대’다. 이 단편만화는 미야자키 감독이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잡지 ‘모델 그래픽스’에 부정기적으로 연재했던 글과 그림을 수록한 책 ‘잡상노트’에 수록돼 있다. ‘잡상노트’는 주로 전쟁과 군대, 무기 등 군수품 등에 대한 것을 담았다.
잡상노트’에 실린 또 다른 단편만화 ‘최빈전선’은 태평양 전쟁 말기 미군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특설감시선에 탑승한 일본 어부와 해군 병사들의 운명을 그렸다. 2019년 이노우에 가쓰라 대본, 죠 하루히코 연출 연극으로 만들어진 뒤 8개 도시 투어 공연을 가졌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아니지만, 미야자키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는 점에서 관련성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엔 오디오 드라마로 선보이기도 했다.

엄밀히 말해 애니메이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는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다. 미야자키는 프리랜서가 된 후 1982년부터 만화 잡지에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연재하고 있었는데, 출판사의 투자를 받아 1984년 동명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할 수 있었다. 만화는 1994년 7권으로 완결되며, 애니메이션은 2.5권 정도를 다룬다. 당시 제작을 맡았던 회사 ‘톱 크래프트’가 해체하고 1985년 스튜디오 지브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는 현재 스튜디오 지브리가 저작권을 관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포함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는 2019년 지브리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 가부키로 만들어졌다. 가부키는 화려한 의상과 분장 및 양식화된 연기가 특징인 일본 전통 연극으로 남자 배우들만 출연한다. 가부키 제작사인 쇼치쿠는 원작 만화 7권을 이와 게이코 대본, G2 연출로 전‧후편 6시간에 담았다. 초연 당시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없었던 원작의 세부적인 세계관과 캐릭터를 장대하게 담아냈다는 호평을 받으며, 전국 영화관에서 영상 상영이 이뤄졌다. 2022년엔 전편만을 압축해 재연하기도 했다.

미야자키 감독의 2001년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모노노케 히메’와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를 대표하는 양대 작품으로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일본 작품으로는 처음 아카데미상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았다.
도호 창립 90주년인 2022년 2월 뮤지컬 ‘레미제라블’ 등으로 유명한 거장 연출가 존 케어드의 번안 및 연출 연극으로 초연됐다. 그의 일본인 아내 이마이 마오코가 공동 번안으로 참여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손으로 일일이 수만 장의 원화를 그려내는 아날로그로 유명하지만 동명 연극은 더욱 아날로그적인 무대예술로 새롭게 태어났다. 사람이 조종하는 퍼펫(인형)을 비롯해 장면 전환조차 사람의 몸과 소품으로 해결하는 등 아날로그 감성이 돋보인다. 연극은 초연 당시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고, 2024년 영국 런던과 2025년 중국 상하이에서 공연됐다. 그리고 올해 한국 서울에서 CJ ENM 주최로 투어공연이 선보이고 있다.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는 도시에서 시골로 온 자매가 신비로운 생명체 토토로를 만나 고양이 버스에 타는 등 동심 가득한 이야기로 1988년 개봉 이후 전 세대의 사랑을 받아왔다. 1984년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부터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히사이시 조가 무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 영국 명문극단인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SC)와 손잡고 톰 모턴-스미스 각색, 히사이시 조 음악, 펠림 맥더모트 연출로 2022년 10월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초연했다.
인형과 음악의 활용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초연 당시 3개월 공연이 바로 매진된 데 이어 이듬해 영국의 권위 있는 로렌스 올리비에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6개 부문을 싹쓸이했다. 2024년 말부터 4개월의 공연을 거쳐 2025년부터 웨스트엔드에서 오픈런(폐막을 정하지 않고 무기한 공연) 중이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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