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욱의 시시각각] 윤도 싫고, 장·한·석도 싫다는 민심

최근 출장차 방문한 일본 도쿄는 다음 달 8일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 바람이 거셌다. 선거를 다시 치러 자민당의 허약한 집권 기반을 단단하게 만들겠다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의 중의원 해산 '결단'에 따른 선거다. 느닷없는 해산에 맞선 야권의 승부수는 선거용 신당이다.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과, 자민당과의 26년 연립을 청산한 공명당이 함께 '중도개혁연합'(약칭 '중도')을 결성했다. '중도'라는 노선을 신당의 간판이자 공약으로 내걸었단 점이 인상적이다. 신당은 자민당을 우익 또는 강경 보수로 밀어내겠다는 게 목표다. 다카이치의 롱런 도박에 '중도 보수' 성향의 두 야당이 신당 창당으로 맞선 형국이다. 강경 보수와 중도 보수가 중도의 공간에서 벌이는 싸움이 흥미롭다. '금수저 세습 정치인'이 득실득실한 일본 정치에서 '평민' 리더들의 충돌도 관심을 끈다. 회사원 부친과 경찰 모친을 둔 다카이치와, 자위대 자위관 출신 아버지를 둔 입헌민주당 당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는 '보통 수저'들을 위한 정치인 양성기관인 마쓰시타(松下)정경숙 선후배 사이다.
![2024년 12월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당 대표실에서 장동혁 의원이 나가는 사이 미소를 짓고 있다. [연합뉴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1/27/joongang/20260127003045059hroe.jpg)
꿈틀꿈틀 역동적인 일본 보수와 달리 한국의 보수 진영엔 칠흑 같은 어둠, 시한폭탄 같은 공포의 나날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망상적 계엄에 대한 법적인 심판이 속속 내려지고 있다. 보수 세력 전체를 천길 낭떠러지로 밀어낸 윤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보이는 무책임한 태도와 남 탓, 두꺼운 얼굴은 보수의 미래에 두고두고 큰 짐으로 작용할 게 틀림없다.
■
「 일본 총선, 보수와 중도 보수 대결
한국 보수는 자기 땅조차 못 지켜
회생 위한 '천막 당사 모멘트' 절실
」
반면에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은 중도보수 정당"이라고 했던 이재명 대통령의 '동진(東進)' 기세가 무섭다. 이 대통령은 ‘탈이념·탈진영·탈정쟁의 현실적 실용주의'로 역대 최약체인 야당의 공간을 집어삼킬 태세다. 과거 김대중 정권의 동진이 사람을 빼오는 방식이었다면 이재명의 동진은 실용을 앞세운 이념적·전략적 동진이다. 한국의 보수는 중원 싸움은커녕 중도 보수나 보수의 공간에서도 축출돼 '극우'의 공간에 갇힐 판이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 보수의 중심엔 ‘장·한·석’이 서 있다. 한국의 보수 세력은 6월 지방선거, 어쩌면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싫든 좋든 이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위탁해야 할지 모른다. 일본 정치가 인물 대결로 요동치듯 무기력·무능력한 보수의 현재와 미래 역시 이들의 어깨에 달렸다.
하지만 이들의 행보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욕심만 보일 뿐 전략이나 희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동훈 전 대표 제명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급발진했던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단식은 '보수 결집'이란 자화자찬이 무색하게 당 지지율에의 영향은 미미한 편이다. 윤석열과의 절연을 주저했던 그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단 요청 직후 단식을 끝낸 것도 매우 미묘하다. 탄핵당한 두 전직 대통령 사이에서 멈춰버린 그의 정치 지향은 한국 정치의 키를 쥔 '중도' 세력에 과연 흡인력이 있는가.
한동훈도 거기서 거기다. 어정쩡한 당원 게시판 사과는 진정성 논란만 부추겼다. 단 한 뼘의 손해도 볼 수 없다는 듯 백전백승을 지향하는 한동훈 정치의 약점을 노출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영원한 기대주'라는 달갑지 않은 마이너리티 낙인을 떨쳐낼 만한 역할 공간을 찾지 못하고 있다.
친구보다 적이 많고, 호(好)보다 불호(不好)가 많다는 점에서 세 사람은 비슷하다. 특정 지지층과 팬덤을 중시하는 나르시시즘적 성향도 보인다. '심정지 지지율'로 대표되는 보수 진영의 참담한 현실엔 "윤석열이 끔찍하게 싫지만 '장·한·석'도 싫다"는 민심이 투영돼 있다고 봐야 한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도토리 키재기식 경쟁이 아니라 보수 진영의 기사회생을 위한 자기 희생과 결단이다. 22년 전 차떼기 낭떠러지에서 보수를 기적적으로 구해냈던 '천막 당사 모멘트'가 절실하다. 세 사람 중 누가 이를 만들어내느냐에 승부가 걸려 있다.
서승욱 콘텐트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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