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별세에 '운동권 대부'라고 칭한 언론들... 정당한 호칭인가

박성우 2026. 1. 26. 17:5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세상을 떠났다.

해당 기사는 고인을 두고 "1972년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한 1세대 운동권이다. '운동권 대부'로서 진보 진영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며 짤막한 설명만 말미에 있을 뿐, 7선의 국회의원이자 여당 대표와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고인을 향해 '운동권 대부'라는 명칭을 붙인 까닭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고인이 정당 정치를 시스템화하고 데이터에 기반한 선거 전략을 구축했던 현대적 정치인이었던 사실을 대부라는 구시대적인 단어 뒤로 숨긴 셈이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장] 책임 총리 일선 나섰고 줄곧 민주당의 설계자였던 고인 향한 운동권 낙인찍기 아닌가

[박성우 기자]

 그런데 고인의 죽음을 두고 일부 언론의 헤드라인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구석에서 끓어오르는 답답함을 참기 어렵다. 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뽑아낸 단어는 다름 아닌 '운동권 대부'였다.
ⓒ <조선일보> 보도 갈무리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세상을 떠났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치적 거목의 퇴장 앞에서 우리 사회는 각자의 방식으로 고인을 추억하고 있다. 누군가는 고인이 생전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행한 대서사시를 읊으며 눈물을 흘리겠으나 다른 누군가는 그가 남긴 독설의 기억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과오를 지닐 수밖에 없는 정치인이란 그런 숙명의 대상이다.

그런데 고인의 죽음을 두고 일부 언론의 헤드라인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구석에서 끓어오르는 답답함을 참기 어렵다. 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뽑아낸 단어는 다름 아닌 '운동권 대부'였다.

7선 의원·국무총리 역임한 고인에 붙이는 별칭이 '운동권 대부'?
 26일 <문화일보> 또한 "'운동권 대부' 이해찬 사회장 검토… 진보진영 애도 물결"이라는 제목의 지면 6면 보도에서 고인을 운동권 대부라고 칭했다. 허나 정작 기사 본문에는 운동권 대부는커녕 운동권과 관련한 내용은 일절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킹메이커', '민주당의 상왕'과 같은 다른 별칭만이 있었다.
ⓒ <문화일보>
24일 <조선일보>는 이 전 총리가 위독하다는 내용의 온라인 기사 제목을 "'운동권 대부' 이해찬 위독…청와대 특보·與(여) 의원들 대거 베트남行(행)"이라고 뽑았다.

해당 기사는 고인을 두고 "1972년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한 1세대 운동권이다. '운동권 대부'로서 진보 진영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며 짤막한 설명만 말미에 있을 뿐, 7선의 국회의원이자 여당 대표와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고인을 향해 '운동권 대부'라는 명칭을 붙인 까닭은 찾아볼 수 없었다.

26일 <문화일보> 또한 "'운동권 대부' 이해찬 사회장 검토… 진보진영 애도 물결"이라는 제목의 지면 6면 보도에서 고인을 운동권 대부라고 칭했다. 허나 정작 기사 본문에는 운동권 대부는커녕 운동권과 관련한 내용은 일절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킹메이커', '민주당의 상왕'과 같은 다른 별칭만이 있었다.

민주화 운동 투신했으나 운동권이 곧 이해찬의 정체성이 될 수는 없는 노릇

물론 이 전 총리가 운동권의 대부 역할을 했던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고인인 70년대 박정희 독재 정권 시절부터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고, 이후 그 길을 함께 걸었던 동료들과 후배들이 정계에 진출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고인이 걸어온 70년의 세월, 특히 그가 공직자로서 남긴 족적을 생각하면 이 표현은 지나치게 단편적이다.

'대부'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를 생각해보면 대개 공식적인 직함보다는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사적인 인연으로 묶인 집단의 수장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정계 입문 이후 7선 의원·국무총리·여당 대표와 같은 묵직한 공적 지위에서 벗어나지 않은 고인의 일생을 표현하기에는 부적절하다.

만약 고인을 '책임 총리의 전형'이나 '킹메이커'로 부른다면 대중은 자연스럽게 과거 그가 보여주었던 실력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복잡한 정책 수치를 빼곡히 적어놓은 수첩으로 담당 관료들을 휘어잡은 행정가이자, 민주 진영의 독보적인 선거 전략가로 활약한 참모였던 고인의 다재다능함 말이다.

하지만 보수 언론은 그 대신 운동권 후배들을 챙겨주는 큰 형님으로서의 이미지를 택했다. 고인이 정당 정치를 시스템화하고 데이터에 기반한 선거 전략을 구축했던 현대적 정치인이었던 사실을 대부라는 구시대적인 단어 뒤로 숨긴 셈이다. 결국 이 '운동권 대부'라는 표현은 고인이 평생을 바쳐 일궈온 시스템 정치를 운동권이라는 사적 관계의 연장선이자 특정 계파의 수장으로 격하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전 총리는 분명 공과 과가 엇갈리는 정치인이다. 고인에 대한 과오를 평가하는 건 언론으로서 당연한 책무다. 허나 단순히 '운동권의 우두머리였으니 그의 정치는 곧 운동권 정치다'라는 식의 낙인찍기는 언론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정치인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결론에 맞춰 사실을 재단하는 행위일 뿐이다.

고인이 남긴 굵직한 궤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언론이 보여줘야 할 최소한의 품격이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