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을 구한 개, 마을을 지키는 호랑이
2025년 12월 26일부터 2026년 1월 20일까지 전북 지역을 여행한 기록입니다. <기자말>
[이병록 기자]
전라선을 타고 수없이 지나다녔던 임실군 임실역과 오수면 오수역. 역 이름은 익숙했지만, 오수역에 직접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역을 나자마자 '오수의견(義犬)비'가 방문객을 맞는다. 오수를 대표하는 상징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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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계석문과 쌍계석문 왼쪽 사진은 오수에 있는 삼계석문으로 최치원 글씨를 모방했다고 한다. 가운데와 오른쪽 사진은 쌍계사 입구에 최치원이 썼다는 쌍계석문이다. |
| ⓒ 이병록 |
개와 범, 두 짐승의 기억
열두 띠 가운데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을 꼽자면 단연 개다. '애완견'보다 '반려견' 표현이 더 자연스러워진 것도 그 때문이다. 반대로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동물은 범, 곧 호랑이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호랑이로 인한 인명 피해, 이른바 '호환(虎患)' 기록이 곳곳에 등장한다. 후대 연구자들이 이를 종합한 결과, 조선시대 호환으로 숨진 이가 약 600명에 이르렀다는 분석도 있다.
강원도 산간에서는 범에게 죽은 영혼이 창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신을 화장한 뒤 호식터에 안치하고 돌무덤을 쌓아 시루를 엎어 구멍에 물레용 쇠가락을 꽂아두는 방식의 무덤을 쓰기도 했다고 전한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는 속담처럼, 개와 범은 오래도록 우리의 삶과 공포, 그리고 믿음 속에 함께 존재해 왔다. 임실에는 과거 주인을 구하고 죽은 개를 기리는 오수의견비가 있고, 지금도 마을을 지킨다고 전해지는 범바위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범바위 그 자체가 아니라, 범의 형상을 본뜬 돌상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수의견비와 호암 범석상
오수의견비가 있는 곳은 원공원이다. 오수 의견 공원과 이름이 비슷해 잠시 헷갈리는 바람에 시간을 허비했고,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라는 오수 망루는 끝내 보지 못했다.
오수 의견 설화는 잘 알려져 있다. 김개인의 개는 들불이 번지는 가운데 술에 취해 잠든 주인을 깨우지 못하자, 개울에서 몸을 적신 뒤 불길 속을 굴러다니며 불을 껐다. 주인은 살았고, 개는 죽었다. 김개인은 자신의 목숨을 대신한 개를 묻고, 지팡이를 무덤 앞에 꽂았다. 그 지팡이가 나무로 자라났고, 훗날 '개 오(獒)'와 '나무 수(樹)' 자를 써 이곳을 오수(獒樹)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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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수의견 왼쪽 사진은 오수역에 있는 상이고, 오른쪽 사진은 오수의견비에 있는 개 형상을 찍은 것이다. |
| ⓒ 이병록 |
호암마을에서 길을 헤매다 주민 두 분을 만났고, 그중 한 분이 이 마을의 산증인이자 터줏대감 같은 존재인 허영식(85) 어르신이었다. 어르신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동네 뒷산을 넘어 다른 마을로 가는 외길 오솔길이 있었고, 범바위 아래를, 허리를 굽혀 지나야 했다. 불편함 때문에 바위를 없앴더니 마을에 변고가 잇따랐고, 이후 범 모양의 돌상을 만들어 원래 자리에 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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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암마을 범바위 범 모양의 돌로 된 상은 본래 범바위가 있던 곳에 세웠다. 오른쪽 보이는 분이 산증인 85살의 허영식씨다. |
| ⓒ 이병록 |
오수의 개와 호암마을의 범은 그렇게 지금도 사람들 곁에서 조용히 마을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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