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 없는 커피 주세요

지난해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구입 고객 10명 중 1명은 디카페인 원두를 선택했다. 커피 원두 자체를 쓰지 않는 ‘대체 커피’도 사랑받고 있다. 고된 노동에 앞서 ‘샷 추가’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시는 문화가 여전한 가운데 벌어지는 일이다.
업계에서는 커피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카페인의 각성 효과를 포기하고 커피의 맛과 풍미만 즐기는 고객 비중도 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수면의 질과 건강을 염려하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트렌드 확산에도 힘입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고령화도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카페인 민감자 등 일부만 즐기던 디카페인이 대중화되면서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디카페인 함량 표시 기준 정비를 앞두고 있고, 소비자들은 “풍미 깊은 디카페인을 찾는다”고 말한다.
25일 유통업계에 지난해 1~10월에 스타벅스에서 판매된 디카페인 제품은 2024년 같은 기간보다 35% 늘어난 3650만 잔에 달했다. 전체 아메리카노 판매량 중 디카페인 아메리카노의 판매량 비중도 13%였다.

디카페인 커피 소비는 직장과 집에서도 늘고 있다. AC 닐슨에 따르면 동서식품이 판매하는 맥심 디카페인 커피(커피믹스, 솔루블)와 카누 디카페인(아메리카노, 라떼) 매출액은 2021년 278억원에서 2025년 402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특히 카누의 경우 전체 제품에서 디카페인 제품의 판매 비중이 2022년 6.7%에서 2025년 8.1%까지 늘었다.

업계는 하루에 커피를 여러 잔 마시는 ‘카페인 헤비 유저’들도 주목하고 있다. 첫 한 두 잔은 카페인을 마시더라도, 오후 늦은 시간부터는 디카페인을 마시는 경향을 겨냥한 것이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국내 소비자들의 일일 커피 소비량이 증가하면서, 카페인 민감도에 따라 디카페인을 선택하는 비중도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디카페인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스타벅스도 리워드 회원이 브루드 커피, 카페 아메리카노, 카페 라떼, 바닐라 라떼, 콜드 브루를 구매하면 30분 후 톨 사이즈 디카페인 카페 아메리카노를 60% 할인한 2000원에 구매할 수 있는 ‘원 모어 커피 쿠폰’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헤비유저들이 디카페인을 소비하는 건 건강과 수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헬시플레저 트렌드가 확산과도 연관이 있다.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우리나라 10세 이상 국민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8시간 1분으로 조사 이래 처음으로 감소했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응답자 비율도 2019년 7.3%에서 11.9%로 상승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수면장애로 건강보험 급여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130만명을 넘어섰다.
디카페인의 성장세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그랜드 뷰 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디카페인 커피 시장 규모는 2024년 23억9000만 달러에서 2030년에는 32억8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국내의 디카페인 커피 기준은 글로벌 스탠다드에는 아직 못 미친다. 식품의약안전처는 지난해 11월 ‘식의약 안심 50대 과제 대국민 보고회’ 대표 과제 중 하나로 디카페인 커피 기준 마련을 선정했다.
디카페인도 커피마다 함량 차이가 있고, 함량이 생각보다 높다는 현장 목소리에 따른 것이었다. 실제로 현재 각 커피 프랜차이즈가 표기한 카페인 함량을 보면 많게는 7%대에 가까웠다. 이에 따라 식약처는 디카페인 기준을 현행 함량 10%이하에서 0.1% 이하로 대폭 낮출 계획이다.
실제로 한 이커머스 업체가 운영하는 디카페인 판매 카테고리에서 가장 빈번하게 접수되는 문의 사항이 ‘카페인 함량이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라고 한다. 디카페인의 카페인 함량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고 소비하려는 소비자들이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다.
국내 주요 커피 프랜차이즈가 이 기준을 맞추는 건 어렵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카페 프랜차이즈들은 보통 디카페인 생두를 수입해 사용하는데 카페인을 99.9% 제거한 국제기준 생두를 사용하면 이 조건을 어렵지 않게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카페인 함량 저감이 아니라 맛의 차별화다. 국내 디카페인 커피는 대부분 ‘탈카페인 공정’을 거친 디카페인 생두를 수입해서 쓰고 있다. 탈카페인 공정은 워터 프로세스(물 속에 생두를 담가 카페인을 제거하는 방법)와 염화메틸렌 등을 용매삼아 제거하는 방법 등이 있다.
스타벅스는 “이산화탄소와 스팀만으로 생두에서 카페인을 제거하는 초임계 이산화탄소 공정을 거친 원두를 활용해서 커피 본연의 맛과 향은 그대로 유지되는 게 특징이다”고 설명했다.
다만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탈카페인 공정에 따라 커피 본연의 풍미가 다소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는 인식이 있다. 디카페인의 맛 경쟁에서 우위에 서려면 이러한 인식을 바꿔놓는 게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원두 없이 원두의 풍미를 내는 기술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테크기업 아머드프레시가 서울 강서구에서 운영하는 ‘맨해튼로스트앤코’에서는 보리를 활용한 ‘보리원두화’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 ‘하프카페인(보리와 커피 비율 5대 5)’과 100% 보리 커피가 있는데, 100% 보리 커피의 판매 비중은 전체의 30%에 달한다.
현정운 아머드프레시 이사는 “디카페인 시장이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카페인 잔류량에 대한 의문과 속 불편함 등 부작용 우려가 존재한다”며 “이 점에서 카페인이 완전히 없는 보리커피는 큰 기회라고 본다”고 말했다. 아머드프레시는 올해 2분기 중에 직장가를 중심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확장할 계획이다.
지난 12일 초기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더벤처스와 신세계그룹 CVC(기업형벤처캐피털)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원두 없는 대체 커피 브랜드 ‘산스(SANS)’를 운영하는 푸드테크 스타트업 웨이크에 프리A 라운드 투자를 집행했다.
산스는 대추씨와 치커리 뿌리 등 12가지 지속가능한 천연 원료를 활용해 원두 없는 커피를 개발했다. 커피 향미를 분자 단위로 분석해 동일하게 재현하는 분자 해킹 기술에 한국 전통 발효 공법을 결합하고, 기존 디카페인 커피가 해결하지 못한 풍미 저하와 잔여 카페인 문제를 동시에 해결했다.
이탈리아 대체커피 브랜드 ‘보리커피 오르조’도 온라인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분말 커피라 맛과 풍미는 다소 이질적일 수 있지만, 카페인 우려에서 자유로워 이른바 ‘임산부 커피’라는 별칭도 붙는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선 한국어로 주문요!” 레딧 달군 한국 카페 공지
- ‘따뜻한 한 끼를 위해’ 최강 한파에도 무료급식소에 늘어선 줄
- 與 “이해찬 계속 의식 없어…국내 이송 논의 중”
- 李대통령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양도세중과 유예 연장 없다”
- 노모 때려 숨지게 한 60대 딸과 방조한 남편 구속영장
- 꽈추형 “박나래가 ‘주사이모’ 소개”…주사이모 측 “진짜는 따로”
- “5초 동안 최소 10발” 美 미니애폴리스에서 순찰 요원이 또 시민에 발포
- “미국 이익이 우선”…美 새 국방전략 “대북 억제 책임은 한국”
- 국제 은값 사상 최초 온스당 100달러 돌파
- 양도세 3억 다주택자, 5월엔 7억 내야… 부동산세 올려 집값 잡기 ‘신호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