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이미 알았던 결말

조민영 2026. 1. 26.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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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더 이상 위대한 국가가 아닙니다."

토론회 패널로 나선 유명 뉴스 앵커는 '미국이 위대한 나라인 이유가 무엇이냐'는 대학생의 질문에 적당한 말로 가볍게 넘기려다 거듭 진정성 있는 답변을 요구받는다.

미국이 더는 위대한 국가가 아니라는 주인공 앵커 윌 매커보이의 일갈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외치며 재등장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1주년의 풍경과 절묘하게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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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영 디지털뉴스센터 영상뉴미디어부장


“미국은 더 이상 위대한 국가가 아닙니다.”

토론회 패널로 나선 유명 뉴스 앵커는 ‘미국이 위대한 나라인 이유가 무엇이냐’는 대학생의 질문에 적당한 말로 가볍게 넘기려다 거듭 진정성 있는 답변을 요구받는다. 시청률이 중요한 뉴스쇼 진행자로서 누구의 적도 되지 않을 답을 해 오던 그는 그 순간 못 참겠다는 듯 신랄한 직언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미국이 위대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2012년 방영된 미국 HBO 시리즈 ‘뉴스룸’ 시즌 1, 미국은 물론 국내 시청자들에게까지 울림을 주며 널리 알려진 첫 장면이다.

최근 우연한 계기로 이 시리즈를 다시 정주행하며, 새삼 놀라고 여러 번 비관했다. 다 봐서 알고 있는 내용이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온 건, 10여 년 전 방영된 드라마 속 장면과 주인공들의 대사가 직격하는 2026년의 현실 때문이었다. 미국이 더는 위대한 국가가 아니라는 주인공 앵커 윌 매커보이의 일갈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외치며 재등장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1주년의 풍경과 절묘하게 겹쳤다.

뉴스룸 속 주인공들은 비전이나 옳고 그름이 무시되고, ‘진짜 정보’에 대한 관심조차 사라지면 어떤 결과가 오게 되는지 누차 경고한다. 언론이 사실을 지적하면 적으로 간주하고, 선동에만 반응하는 정치적 토양만 계속 비옥해지다간 분노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독단적 지도자’가 등장해 정상적 시스템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이 경고는 14년 뒤 현재, 누구보다 선동을 즐기고 적을 상정해 압박하고 싸우는 전략을 택해 온 트럼프의 출현을 예언한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라마의 적확한 예견이 감탄스러운 만큼 나는 비관했다. 오래전 ‘최악의 시나리오’로 상정됐던 미래가 끝내 현실이 됐단 얘기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인기를 끈 만큼, 그 경고에 많은 이가 공감했고 반지성주의의 미래를 우려했지만, 다 알고 있던 결말은 결국 찾아왔다.

미국만의 일이겠나. 팬덤의 결집에 명운을 거는 진보, 적대적 감정을 동력 삼는 보수, 복잡한 세상의 문제를 각자의 편에서 선악으로 단순화해 상대를 말살하는 데 집중하는 건 한국의 정치 현실이기도 하다. 대안 없는 정치도, 싸움을 부추기는 언론도, 스스로 생각하길 포기하고 확증편향 늪에 빠진 유권자도, 다 아는 결말을 향해 갈 뿐이다. 헌법 수호자인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던 게 이미 1년여 전이니, 이미 그 결말을 경험하고도 같은 일을 반복하는 중이다.

다만 ‘미국은 더 이상 위대하지 않다’던 드라마 주인공의 대사는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우리가 위대한 적이 있었다(We used to be great)”라며 이어진 말엔 그래도 여전히 많은 이가 지향하는 세상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다. 어쩌면 마지막 희망 같기도 한 그 대사를 공유해 본다. 이번엔 아는 결말을 그저 맞이하지 않길 바라며.

“(그땐) 옳은 것을 위해 일어섰고, 도덕적인 이유로 법을 만들거나 폐지하기도 했고, 가난한 사람과 싸우는 게 아니라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싸웠고, 신념을 위해 돈을 모금하되 그런 거로 자랑 따위는 하지 않았고, 인간답게 행동했고 지성을 열망했으며 지난 선거에 누구에게 투표했느냐만을 가지고 정의하지 않고 쉽게 겁먹지도 않았어. 그럴 수 있었던 건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야. 문제를 해결하는 첫 번째는,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하는 거야.”

조민영 디지털뉴스센터 영상뉴미디어부장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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