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의 관운, 김민석의 간언[장세정의 시시각각]

장세정 2026. 1. 26.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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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

귀에 거슬리는 쓴소리를 경청한 당 태종의 역할이 더 어렵고 위대할까, 아니면 목숨 걸고 직언한 신하 위징(魏徵)의 역할이 더 어렵고 대단할까. 진보와 보수 정권에 걸쳐 총리 자리에 두 번이나 발탁됐던 한덕수 전 총리가 징역 23년 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충격적 재판 장면을 보면서 든 궁금증이다.
서울대 상대 수석 졸업, 하버드대 석박사, 21세에 행정고시 합격 이력에서 보듯 머리 좋고 스펙도 좋으며 공직에서도 50여 년 출세 가도를 달렸다. 유능하고 노련한 공직자였지만,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막지 못했다. 목숨을 걸지는 못하더라도 그는 왜 적어도 총리직을 던지는 각오로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을까. 한 전 총리를 잘 아는 한 원로는 제왕적 대통령제 현실에서 "용기 있는 공직자라면 그런 자리까지 올라가지도 못한다"고 촌평했다.

2023년 9월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총리가 서울 용산 국무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대통령제에서 총리의 권한은 제한적이지만, "내란 중요 혐의 종사자"란 판결이 나왔다. [연합뉴스]

한 전 총리는 보수정권 시절에는 호남 출신임을 드러내지 않으며 능력을 인정받고 승승장구했다. 사상 첫 영호남 정권 교체가 이뤄져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호남 출신이라고 커밍아웃해 입방아에 올랐다. 이후엔 진보정권에서 통상교섭본부장·경제부총리·총리까지 탄탄대로였다.

「 대통령제에서 총리는 '가시방석'
예스맨만 사는 한국정치의 비극
김 총리, 대통령에 민심 직언하길

12·3 계엄 이후 "계엄을 사전에 몰랐다"고 항변했지만 '친위 쿠데타에 부역한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라는 무시무시한 혐의로 법정구속되는 바람에 끝이 안 보였던 그의 관운도 멈췄다. 지금처럼 험한 일을 당하지 않을 기회가 몇 번은 있었다. 윤석열 정권이 총리 자리를 제안했을 때 "아니오(No)" 했다면, 2024년 4·10 총선에서 당시 여당이던 국민의힘이 참패하자 사의 표명에 그치지 말고 결단력 있게 사표를 던졌다면 12·3 계엄의 소용돌이엔 휘말리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12·3 계엄이 발동된 그날 밤 국무회의를 전후해 "아니되옵니다"라고 반대했다면 지금 그의 처지는 달랐을 것이다.
'처세의 달인'으로 불리던 한 전 총리의 안타까운 비극을 보면서 한국 대통령제에서 가시방석 같은 총리 자리의 무거움을 새삼 생각해 본다. 동시에 지금과 앞으로 대한민국 총리는 얼마나 달라질까 하는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이재명 정부의 첫 총리이자 '새벽을 여는 총리'를 표방한 김민석 총리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여권 인사들은 칭찬 일색이다. "김 총리가 이 대통령 앞에서 처신을 참 잘한다"는 덕담이 들린다. 그만큼 국무회의 등 공식 석상에서 2인자로서 자세를 낮추고 이 대통령을 요령 있게 보필한다는 취지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총리가 지난해 9월 서울 용산에서 열린 국무회의 중에 대화하고 있다. 김 총리는 공개 장소에서 이 대통령을 칭송하는 발언을 자주해 눈길을 끌었다.[대통령실 뉴스1]

김 총리는 이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칭송하는 발언을 자주 해왔다. 지난해 12월 전남 무안에서 열린 국정 설명회에서 김 총리는 “대선 전에는 사람들이 ‘(윤석열 정부) 5년이 너무 길다’고 했는데 요즘은 ‘(이재명 정부) 5년이 너무 짧다. 더 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들린다”고 했다. "(이 대통령의 업무보고 생중계가) 넷플릭스보다 재미있다는 잼플릭스”라고 극찬했다.
물론 막후에서 김 총리가 이 대통령에게 부동산·환율 등 어려운 민생 실상을 얼마나 직언하는지 알 수 없다. 김병기·이혜훈·강선우·김경 등의 부적절한 행태에 분노한 민심을 제대로 대통령에게 전달하는지 궁금하다. 공개 장소에서 낯간지러울 정도로 달달한 언행을 태연하게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적어도 '위징 계열 재상'은 아닌 것 같다.
앞으로 김 총리가 용기 있게 '간언하는 총리'의 면모를 보여줄지, 대통령의 기분을 살피는 '기름장어 총리'로 차기 권력을 도모할지 지켜볼 일이다. 김 총리는 "안 나간다"고 손사래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대항마로 서울시장 출마설이 끊이지 않는다. 8월에 있을 민주당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해 호락호락하지 않은 '반명 정청래'를 잡을 카드로 쓰일 거란 관측도 나온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선택은 자유다. 하지만 국록을 먹는 총리 자리에 있는 동안이라도 권력자의 환심을 사는 처세술보다 가감 없는 민심 전달자 역할을 충실히 해주길 주권자 국민은 바랄 것이다.

김민석 총리가 지난해 10월 서울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8월 민주당 당 대표 선거에 김 총리 출마설이 나온다. [연합뉴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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