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잃어도 웃는 트럼프…그린란드에도 '패밀리 비즈니스' 의혹 [정강현의 워싱턴 클라스]

정강현 2026. 1. 26.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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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현 워싱턴 특파원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브리핑룸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두꺼운 종이 뭉치를 들고 들어섰다. 트럼프는 ‘업적’이란 굵은 글씨가 적힌 표지를 기자들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일주일 내내 읽어도 다 못 읽을 겁니다. 우리는 그 어느 행정부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뤄냈어요.” 트럼프는 불법 이민을 차단했고, 범죄를 줄였으며, 물가를 낮췄다는 등 익숙한 자화자찬을 80분 넘게 반복했다. 집권 2기 취임 1주년을 맞은 일종의 ‘셀프 성과 보고’였다.

그러나 취임 1주년을 바라보는 여론은 싸늘했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취임 초기인 지난해 1월 47%에서 같은 해 12월 36%로 11%포인트 급락했다. 대통령의 확신과 달리,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국 뉴욕 지하철역에 30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멜라니아' 포스터가 걸려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민심이 떠난 자리, 두둑해진 ‘가족 금고’


국정 평가가 추락하는 사이, 트럼프 일가의 사적 수익은 반대로 수직 상승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재무 자료와 탐사 보도 등을 종합해, 트럼프가 2기 취임 후 대통령직을 활용해 최소 14억 850만 달러(약 1조 9700억 원)를 벌어들였다고 지난 20일 보도했다. 특히 “이 수치는 확인 가능한 최소치일 뿐, 실제 수익은 훨씬 더 클 것”이라는 게 NYT의 설명이다.

트럼프가 언론에 과장되게 내비친 ‘업적’은 적어도 ‘패밀리 비즈니스’의 틀에서는 사실이었던 셈이다. 특히 최근 국제적 논란이 되고 있는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추진 이면에도 트럼프 일가의 ‘사업적 계산’이 깔려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근영 디자이너


하워드 포먼 예일대 교수(경영·공중보건)는 중앙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사유화해 자신과 가족의 수익을 창출한 사례는 이미 수없이 많다"고 진단했다. 포먼 교수는 특히 “대통령은 국민의 대리인이면서 가족 기업의 주인이기도 하다”며 “이 두 역할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가족 이익이 최우선시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퍼스트레이디 일상까지 ‘돈벌이’로


다큐멘터리 영화 ‘멜라니아’ 예고편의 한 장면. 사진 유튜브 캡처
실제 트럼프 일가는 2기 취임 이후 노골적인 방식으로 사적 이익을 극대화했다. ‘은둔의 영부인’으로 불려온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멜라니아는 취임 전 20일간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멜라니아' 개봉을 앞두고, 지난 24일 백악관에서 비공개 시사회를 열었다. 개봉 캠페인의 하나로 오는 30일에는 뉴욕증권거래소를 찾아 개장 벨을 울릴 예정이다. 백악관과 금융시장이 상업 콘텐트 홍보 무대로 활용되는 장면이다.

논란은 판권 계약에서 더 커졌다. 아마존은 이 다큐멘터리 판권료로 약 4000만 달러(약 580억 원)를 냈다. 이 가운데 70%, 약 400억원이 멜라니아에게 귀속된 것으로 전해졌다. NYT 등 미국 언론은 아마존 제프 베이조스 회장이 반독점 규제와 정부 계약 등에서 행정부 결정을 의식해 이 같은 과도한 베팅에 나섰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지난해 8월 홍콩에서 열린 '비트코인' 행사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의 차남 에릭 트럼프. 로이터=연합뉴스

정책과 사적 이익의 연결 고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트럼프 미디어 그룹(TMTG)은 핵융합 기업과의 합병을 발표하며 에너지 산업 진출을 선언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에너지·AI 전력 확대를 강조한 직후 주가는 40% 이상 급등했다. 이 같은 정책 신호는 암호 화폐 시장에도 즉각 반영됐다. 트럼프 일가는 트럼프 브랜드를 활용한 토큰 프로젝트와 디지털 자산 사업을 통해 상당한 이익을 거둔 것으로 분석된다. NYT는 암호 화폐 사업만으로도 트럼프 일가가 최소 8억 6700만 달러, 1조원 넘게 벌어들였다고 추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언론·플랫폼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도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트럼프는 불리한 보도와 콘텐트 조치를 이유로 X(옛 트위터), ABC 뉴스, 메타, 유튜브, 파라마운트 등을 상대로 잇따라 소송을 제기했고, 거액의 합의금을 받아냈다. 이를 두고 규제와 인허가 권한을 쥔 행정부를 의식한 기업들이 사전 방어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식 합의를 했단 지적이 나온다.


그린란드에도 드리운 ‘거래’의 시선


트럼프 일가의 비즈니스는 외교 영역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올해 들어 베네수엘라, 그린란드 등을 상대로 본격화 한 초강경 대외 정책의 배경으로 ‘패밀리 비즈니스’를 꼽는 시각도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시절 그린란드 매입을 검토하며 “본질적으로 거대한 부동산 거래”라고 말한 바 있다. 최근 안보 요충지라는 명분을 앞세워 그린란드 확보를 밀어붙이는 이면에, 그린란드를 개발 가능한 거대 자산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미국 영토로 표기한 가상 이미지를 자신의 SNS에 올렸다. 트루스 소셜 캡처

실제로 트럼프 일가는 외교적 접근을 발판 삼아 호텔·리조트·브랜드 사업을 확장해 온 전례가 있다.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사우디 국부펀드 투자 유치 이후 발칸반도에서 대규모 호텔 개발에 나선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린란드가 보유한 일부 희토류는 전 세계 수요의 4분의 1을 충족할 만한 규모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그린란드 확보 구상 역시 향후 트럼프 일가가 관여하는 광물이나 부동산 개발 사업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트럼프 일가가 2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사적 수익을 거두고 있지만, 이를 제어할 제도적 장치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이다.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은 연방 이해충돌 방지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며, 백지신탁 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외국 정부로부터 금품을 받지 못하도록 규정한 헌법상 ‘외국 보수’ 금지 조항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반복된다.

포먼 예일대 교수는 중앙일보에 “헌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대통령 사면권을 재검토 하고, 외국 보수 조항을 실제로 집행 가능하도록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대통령이 사적 이익을 노리고 외교 정책을 이용하거나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 행위를 사면권으로 덮어버릴 수 있는 연결 고리 자체를 끊어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워싱턴=정강현 특파원 fon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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