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진정한 숭고미

미국 정치가 또 한번 난장판으로 기울던 지난주, 오스카 후보가 발표됐다. 그 명단은 할리우드의 방향감각을 분명히 보여준다. 인종 문제를 정면으로 끌어안은 뱀파이어 영화 ‘씨너스(Sinners)’가 16개 후보에 오른 건 장르를 불문하고 동시대 쟁점을 다룬 영화가 유리하다는 신호다. 한국은 박찬욱의 ‘어쩔수가없다’는 못 올라갔지만, 넷플릭스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애니메이션과 주제가 부문에 이름을 올리며 ‘K컬처 수출품’의 진화를 보여준다. 반면에 국제영화상 최종 5편에는 아시아 영화가 한 편도 없었다. 전통과 장인주의, 문화유산의 권위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이 오스카의 ‘정석’이었다고 믿어온 사람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바로 전날, 나는 재일교포 출신 이상일 감독의 ‘국보(Kokuho·사진)’를 봤다. 대서사시의 호흡, 눈부신 아름다움, 깊은 감정의 몰입, 그리고 예술·전통·정체성에 대한 묵직한 인문적 질문까지 ‘국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사로잡는 영화였다. 이 정도면 최소한 국제영화상 후보에 들어갈 법도 하지 않았나 싶지만, 결과는 분장상 후보 하나였다. 올해의 기류는 권위보다 장르의 돌파력, 플랫폼의 대중성, 메시지의 선명함 쪽으로 더 기울어 있었던 것이다.
더 흥미로운 건 ‘국보’가 특이함을 팔지 않는 방식이다. 온나가타(가부키에서 여성 역할을 전문으로 맡는 남성 배우)의 성적 모호함을 소재로 과장하지도, 설명하지도 않는다. 서구 영화가 흔히 꺼내 드는 ‘정체성’을 이 영화는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예술이 요구하는 감각 안으로 끌려들어가 사회적 틀을 잊은 채 순수한 기예의 밀도 속에 몰입하게 된다. 진정한 예술은 해석이 동반되지 않는다. 그날 나는 칸트가 말한 ‘숭고의 미’를 맛보지 않았나 싶다.
※‘ 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연재를 종료합니다. 그동안 눈여겨봐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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