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 나타났던 그 새, 이번엔 겨울 두루미 천국 한가운데에 서다

이경호 2026. 1. 2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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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남저수지에서 캐나다두루미 3개체 확인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국내에서는 매우 희귀한 겨울철새로, 통상 몇 개체만 관찰되는 캐나다두루미가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만났다. 지난 23일 진행된 대전환경운동연합 주남 탐조에서 캐나다두루미 3개체가 재두루미 무리 속에서 확인됐다.

캐나다두루미는 국내에서 겨울에도 쉽게 볼 수 없는 희귀 조류다. 1995년 철원에서 처음 확인된 이후 지금까지 알려진 주요 관찰지는 철원, 천수만, 순천만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2022년 여름, 경남 창원 진해의 농경지에서 단독 개체로 확인되며 이례적인 사례로 주목받은 적도 있다. 당시 관찰된 개체는 한여름 동안 농경지에 머물며 먹이활동을 이어갔고, 국내에서 여름철 캐나다두루미가 확인된 첫 사례로 기록되기도 했다. 캐나다두루미는 서식과 관찰 자체가 뉴스가 되는 매우 특이한 종이다.
 6월 경남에서 확인됬던 캐나다두루미
ⓒ 성소영
캐나다두루미는 북아메리카 북부와 시베리아 북동부에서 번식하고, 북아메리카 중·남부에서 월동하는 종이다.검은목두루미와 같이 초식을 주로 하는 잡식성이다. 양서 파충류와 곤충, 열매와 씨앗을 먹는다. 몸길이 약 86cm 이상인 대형 조류지만 다른 두루미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한때 서식지 감소로 개체수가 급감했으나, 보호 정책과 환경 회복으로 현재는 멸종위기 지위에서는 벗어난 것으로 알려진 종이다.
이번에 확인된 캐나다두루미 3개체는 주남저수지에 월동 중인 재두루미 무리와 함께 행동하고 있었다. 현재 주남에는 재두루미 약 1000마리, 흑두루미 약 50여 개체가 월동 중이다. 여기에 캐나다두루미까지 더해지면서, 주남저수지는 말 그대로 '두루미의 공간'이 되고 있다. 조금만 걷다 보면 '두룩 두룩'하는 고유의 두루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겨울 아침, 저수지 일대에는 두루미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재두루미 무리 사이의 캐나다두루미
ⓒ 이경호
하늘을 가르며 이동하는 두루미 무리 아래로, '백조'로 알려진 큰고니가 같은 수면에서 함께 먹이를 찾는 장면도 쉽게 목격된다. 큰고니는 겨울 짝을 찾기위한 다양한 구애행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서로 다른 이동 경로와 생태적 배경을 가진 종들이 한 공간에서 겨울을 보내는 주남 저수지의 모습을 보며 대단한 생태적 포용력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주남에서 만난 큰고니떼
ⓒ 이경호
두루미들은 수확 후 남은 볏짚과 곡식을 먹고, 농경지는 철새의 존재로 다시 생태적 의미를 획득한다. 기러기와 백로 등의 새들이 찾아오는 농경지의 농사가 더 생산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결국 주남저수지 주변의 농경지와 두루미 등의 겨울철새는 배제가 아니라, 공존과 조율을 통해 유지돼 왔다.
 농경지에 휴식중인 주남재두루미
ⓒ 이경호
캐나다두루미의 월동은 주남의 생태적 건강성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월동지에서 안전하게 머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먹이와 휴식 공간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다. 동시에 이는 인간의 공존을 선택한 것일 수 있다. 습지를 남겨두고, 농경지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으며, 철새를 '관리 대상'이 아닌 '함께 머무는 존재'로 받아들인 지역 사회의 시간이 쌓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주남저수지는 97년 주민들이 철새를 쫓아내기 위해 방화를 저질렀던 아픈 기억을 가진 곳이기도 하다. 불길 속에서 습지와 갈대밭이 사라졌고, 철새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주남의 역사는 자연과 인간의 갈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던 현장이었다.

방화 등 이런 저런 사건을 계기로 마산창원환경운동연합 등의 환경단체와 시민들을 중심으로 철새를 배제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함께 살아갈 존재로 인식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탐조 활동, 모니터링, 서식지 보전 요구와 같은 꾸준한 시민 참여는 주남저수지를 겨울철새 도래지로 유지하는 데 힘이 됐다. 현장을 지켜본 시민들의 시선이 주남의 방향을 바꾼 셈이다.

두루미의 천국처럼 월동지로서 유지하는 것은 오랜 시간 축적된 보호와 관용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때 불로 쫓아냈던 새들이 이제는 같은 땅에서 겨울을 난다. 주남저수지는 여전히 두루미가 날아드는 장소일 뿐 아니라, 인간 사회가 스스로의 선택을 되돌아보고 수정해 온 기록이라고 평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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