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퇴직 후 5일 만에 재취업 성공... 그의 남다른 준비 비결

이민선 2026. 1. 2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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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보다 화려한 2막] 여행하고 술값내며 즐겁게 사는 중... <나는 죽을 때까지 현역이고 싶다> 작가 김홍기

[이민선 기자]

 김홍기 작가, 36년 6개월 공무원 인생을 마치고 정년 퇴직하면서 부인과 함께 환하게 웃는 모습
ⓒ 김홍기
"내 일(my job)이 있어야 내일(tomorrow)이 있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자그마치 36년 6개월 일하다가 정년퇴직한 뒤 딱 5일 쉬고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인생 2막을 연 일흔 살 청년(?) 김홍기 소장 지론이다. 만 9년째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살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인생 2막을 맞이해야 할 이들에게 길라잡이가 될 책 <나는 죽을 때까지 현역이고 싶다>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책 들머리에서 "살아온 인생, 살아갈 인생을 글로 남기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죽기 전 한 권의 책 쓰기는 내 버킷리스트의 하나다"라고 책을 펴낸 이유를 밝혔다.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누군가에게 길라잡이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누가 물었다. 정년 퇴직할 때의 기분이 어땠냐고요 군대 제대하는 것처럼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로 설렜다고 대답했다. 마치 대학 졸업 전 취업이 확정된 것처럼 인생 2막의 새로운 직장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내 시선이 멈췄다. 사실일까, 정말일까, 진심일까, 과장된 표현은 아닐까? 만약 사실이고 진심이라면 분명 일 중독자일 것이리라. 이런 궁금증을 안고 지난 12일 그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그의 일터인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향했다.
"1막에는 아침에 일어나기 싫었는데, 지금은 가벼운 마음"
 김홍기 작가 <나는 죽을 때까지 현역이고 싶다> 출간 기념 가족 모임
ⓒ 김홍기
 김홍기 작가 책 <나는 죽을 때까지 현역이고 싶다>
ⓒ 미다스북스
"아이고 정말 오셨네요.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가 반갑게 나를 맞았다. 일주일 전 전화로 한 약속인데도 정말로 내가 방문할 것인지 긴가민가했던 눈치였다. 살짝 마른 체형이었지만 강단 있어 보이는 몸. 일흔 이지만 노인이나 초로의 노인이라는 표현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중년' 정도가 적당해 보였다.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혹시 일 중독자 아니신지?' 하고 물을 수는 없는 법. '36년이나 쉬지 않고 일했는데 몇 개월이라도 쉬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지?' 묻자 '그런 마음이 전혀 없지는 않았어요'라고 운을 뗀 뒤 말을 이었다.

그가 재취업을 서두른 까닭은 그래야 취업이 수월해서였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일을 하지 않으면 당장 밥을 굶어야 하는 그런 절박한 사유는 아니었다. 공무원 연금으로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지만 경조사 챙기고 취미 생활인 여행과 등산을 하기에는 부족했다. 또 친구들과 어울려 소주라도 한잔하려면 역시 돈이 필요했다. 그가 재취업을 서두른 이유다.

"재취업에도 때가 있어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기회가 왔을 때 하지 않으면 어려워요. 몇 년 쉬고 일해야지 하다가 계속 쉬는 사람을 주변에서 많이 봤습니다. 일을 해서 돈을 버니까 참 좋아요. 연금 받고 월급도 받고. 내 삶에서 지금이 가장 여유로운 시기입니다. 이번 달에도 벌써 술값 여러 번 냈어요."

그는 공무원으로 살아온 자신의 1막을 근검 절약으로 버텨온 생존(生存)의 시기라 표현했다. 관리소장으로 살고 있는 2막을 삶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한 생활(生活)의 시기라 말했다. 1막과 2막 중 어느 쪽이 더 보람 있고 행복한지 묻자 "당연히 2막이 더 보람 있고 행복하고, 한마디로 편안하다"라고 답했다. 이렇듯 편안한 이유는 1막에서 갈고 닦은 경험과 지혜, 연륜 이라는 게 그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어서다.

"1막에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정말 싫었어요. 회의하고 보고서 만들고 민원인 상대하고... 일이 끝이 없었어요. 하지만 2막은 다릅니다. 아침에 침대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일어나서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합니다. 관리소장 일 하면서도 가끔 힘든 일이 발생하지만 1막 때보다는 훨씬 수월합니다. 1막에서 갈고닦은 기량이 밑거름이 된 덕분이죠."

공무원으로 산 1막보다 2막이 더 행복하다니, 정년 퇴직하는 순간이 군대 제대하는 순간만큼 설렜다는 그의 말이 그리 과장은 아닌듯하다. 그는 책에서도 '인생 1막 시기 퇴직을 앞두고 누린 공로 연수 6개월이 자기 인생의 화양연화'라고 밝혔다.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가 그를 한없이 들뜨게 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2막에 어려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바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경쟁 때문이다.

"근무하는 곳이 LH 국민임대 아파트인데, 2년마다 평가를 합니다. 평가결과 하위 10% 단지는 아예 계약을 해지해 버리니까 원치 않는 퇴출을 당하는 관리소장이 나오게 되는 거죠. 평가를 의식하기에 소장들 간 서로 정보 교환도 안 하고,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어요. 절대평가를 통해 서비스 제공 수준을 끌어올리면 되는데 굳이 상대평가를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건의해도 반영이 안 되네요."

"건강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 일하니까 건강한 것"
 <나는 죽을 때까지 현역이고 싶다>를 쓴 김홍기 작가
ⓒ 이민선
  2018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여행
ⓒ 김홍기
"'닭'이 먼저 '달걀'이 먼저 이런 건데, 저는 건강하니까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일을 하기에 건강한 것이라 생각해요."

그의 건강 비결이다. 그는 2막 성공 필수 조건 첫 번째로 건강을 꼽았다. 그다음이 사람들과의 활발한 교류다. 세 번째 필수 덕목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고다.

"성공적인 2막이 되려면 가장 중요한 게 건강인데, 저는 건강하기 위해서라도 일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똑같이 술을 마셔도 일을 하는 친구들은 아침에 벌떡 일어납니다. 체력과 정신력이 그만큼 뒷받침되는 거죠."

그의 말대로라면 건강하기 위해서라도 일을 해야 하는 것. 그렇다면 정년 퇴직 뒤에는 도대체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무조건 뛰어들어야 하는 것일까. 그는 이 문제에 대한 시원한 답을 가지고 있었다.

"저는 사실 뚜렷한 목표가 있어서 공무원이 되지는 않았어요. 먹고 살려고 하다 보니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갖게 된 거죠. 하지만 2막은 최소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적성에도 맞고 소질도 있는 그런 일을 찾아야겠지요. 또 가능하면 1막 과는 다른 일을 권합니다. 예를 들면, 1막에서 머리 쓰는 일만 했다면 2막에는 몸 쓰는 일을 하는 게 좋겠지요."

그는 퇴직 후 재취업이 어려운 이유도 '하던 일을 계속하려는 것'에서 찾았다. 그러면서 폼나는(멋져 보이는) 일만을 하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왕년에 내가 누구였는데' 라는 자존심을 앞세우면 일할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대기업 임원, 고위직 공무원이나 군인, 은행 지점장... 이런 명함들은 자서전 쓸 때나 한 줄 넣는 것이지, 재취업을 할 때는 쓸모가 없습니다.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이죠. 과거에 집착할 필요는 없어요."

"인디언 기우제처럼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하면 분명 됩니다"
 정년 퇴직을 앞둔 공로 연수 시절, 서울 북부기술교육원 에너지기능사 교육과정에서 용접하고 나사 만들며 배관 작업 실습 장면
ⓒ 김홍기
즐겁게 일하는 인생 2막을 위해 그는 특히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거듭해서 강조했다. 그 역시 주택관리사, 주거복지사, 사회복지사(1급), 행정사, 컴퓨터 활용능력 2급, 에너지관리기능사, 온수온돌기능사, 소방안전관리자 등 여러 가지 자격증을 취득했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필요한 자격증을 딴다는 게 은퇴를 앞둔 50~60대에게 쉽지 만은 않은 일. 특히 자격증을 따면 무조건 취업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인디언 기우제를 상기해 보라"고 답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말입니다. 즉 성공률 100%라는 거죠. 지치지 않고 끝까지 시도하다 보면 분명 취업이 됩니다. 소질과 취미에 맞는 일을 찾아 준비하고 노력하면 건강한 2막이 분명 열립니다."

그가 비법으로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남다른 그의 학구열 또한 그의 재취업에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언급했듯 그의 인생 화양연화는 퇴직을 앞둔 6개월의 공로 연수 기간이다. 그는 이 시기에 자격증을 따기 위해 기술 교육원 야간 과정을 이수했고, 주말에는 집 근처 대학 도서관에서 필기 시험 준비를 했다. 그 당시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는 그의 책 속에 잘 기록돼 있다.

"평생을 책상머리에 앉아 살아온 별수 없는 기계치라서 더 열심히, 더 성실히 집중하려 애썼다. 생전 처음 해보는 아세틸렌용접을 비롯해 쇠톱으로 파이프 자르고 나사를 만드는 일은 노동의 신성함을 맛보게 했고, 최종 결과물은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공들여 깎고 자르고 붙여 만든 배관 모형이 정말 내가 만든 작품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죽음까지도 준비가 필요하다고 책에 기록했다.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는 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라고 톨스토이(Leo Tolstory)가 말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는 결혼 준비에 최소 1년을 투자하지만, 장례는 언급조차 금기시한다. 죽음 준비를 활성화하고 죽음을 자유롭게 거론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 되고 있다."

그의 준비 예찬론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책에서 인생 2막 너머에 있는 인생 3막을 준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겨울을 준비하듯 인생 3막을 준비하라고. 그는 또한 인생 3막에 생장(生長)의 시기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는 공부, 공부 그 자체를 즐기는 순수한 공부를 하는 게 그가 바라는 인생 3막이다.

"공부만을 위한 궁극의 공부를 하면서 지식의 영토를 넓혀가다 보면 한 단계 생장하지 않을까 합니다. 더 치밀하게 미래를 설계하면서 다음 막을 맞이할 준비를 할 계획입니다."

36년 6개월 일한 직장을 정년 퇴직하고 겨우 5일 쉰 다음 다시 일하는 김홍기 작가. 하지만 일 중독자는 아니었다. 학구열이 높고 그 학구열 만큼이나 일을 좋아할 뿐이었다. 성실하게 일해서 번 돈으로 아내와 여행을 즐기고 친구들과 술 한잔 나눌 줄도 아는 멋진 중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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