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원 김치찌개 맛집, 다른 집은 흉내 못내는 '비결'

최호림 2026. 1. 2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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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원부터 1만 원까지 '자율 식비'... 전주 '청년식탁 사잇길'이 지키려는 것

[최호림 기자]

 아침 식사는 2천 원, 점심과 저녁 메뉴인 김치찌개는 3천 원. 이마저 부담이 된다면 0원으로도 식사가 가능
ⓒ 최호림
요즘 "밥 한 끼 하자"는 말이 무섭다. 외식은커녕 편의점 도시락조차 가격표를 먼저 훑어야 하는 고물가 시대다. 특히 청년들에게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생존의 문제를 넘어, 누군가와 함께 어울릴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자존감'의 문제로 이어진다.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 인근, 건물 2층에 자리한 '청년식탁 사잇길'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싸서'가 아니다. 이곳은 '공짜'보다 더 어려운 선택지를 손님에게 건넨다.

"누구든 오면 됩니다, 밥 먹고 가면 되는 거죠."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1일 아침, 식당 문을 열자 훈훈한 온기와 함께 밥 짓는 냄새가 번졌다.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은 익숙하게 식탁에 앉아 자율 배식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청년'이라는 이름과 달리 식탁엔 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세대가 섞여 있었다.

"무료라고 하면 오히려 청년들이 위축됩니다"
 김희인 바오로 신부(청년식당 사잇길 대표)
ⓒ 최호림
문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던 김회인 바오로 신부에게 "청년만 와야 하느냐"고 묻자, 그가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누구든 오면 됩니다. 밥 먹고 가면 되는 거죠. 기사 식당에 기사만 가란 법 있나요?"

썰렁한 '아재 개그' 뒤엔 이곳만의 독특한 철학이 숨어 있다. 입구엔 가격이 정해지지 않은 키오스크가 서 있다. 0원부터 1만 원까지 손님이 직접 금액을 선택하는 '자율 식비제'다. 돈이 없는 날엔 0원을 눌러도 되고, 여유가 있는 날엔 조금 더 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얼마를 냈느냐가 아니라, 나눔을 선택할 권리가 손님에게 있다는 점이다.

이곳의 아침 식사는 2000원, 점심과 저녁 김치찌개는 3000원이다. 하루 세 끼를 다 먹어도 만 원이 채 안 된다. 이 가격은 운영진이 임의로 정한 게 아니다. 청년 약 900명을 대상으로 "얼마면 부담 없이 한 끼를 먹을 수 있을까"를 물어 도출한 결과다. 김회인 신부는 처음부터 '무료급식소'라는 낙인을 경계했다.
 값이 저렴하다고 내용물까지 가벼운 건 아니다. 직접 우린 육수에 김치, 콩나물, 돼지고기, 두부가 푸짐하게 들어간다.
ⓒ 최호림
"무료라고 하면 오히려 청년들이 위축됩니다. '도움받는 사람'으로 규정되는 순간, 자존감이 무너질 수 있거든요. 밥을 먹었는데 주머니에 천 원뿐이면 천 원을 내고, 지갑을 안 가져왔으면 그냥 먹어도 됩니다. 중요한 건 편하게 집밥 먹듯 식사하는 '당당한 경험'입니다."
그가 말하는 이 공간의 핵심은 시혜(施惠)가 아닌 '존엄'이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주방이 분주해졌다. 대표 메뉴인 3000원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값이 저렴하다고 내용물까지 가벼운 건 아니다. 직접 우린 육수에 김치, 콩나물, 돼지고기, 두부가 푸짐하게 들어간다.
 민수영(사회적협동조합 나무의 꿈 센터장)
ⓒ 최호림
김치찌개를 맛보던 한 시민은 "너무 맛있어서 행복하다. 역시 돼지고기가 최고"라며 연신 엄지를 치켜세웠다.

전주의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 제공 기관인 사회적협동조합 '나무의 꿈'의 민수영 센터장은 "'사잇길'에 식사하러 간다고 하면 다들 들떠 있다"며 "지난번에는 우리 친구들이 밥이 모두 소진될 정도로 많이 먹고 가서 오히려 미안할 정도였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사잇길'의 운영비 대부분은 개인과 기업, 단체의 후원으로 충당된다. 김치와 배추를 직접 나르는 후원자들의 손길도 이어진다. 때로는 운영진이 직접 논과 밭을 찾아가 기부받은 식자재를 수거해 자가용에 실어 오기도 한다.
 박우성(청년식탁 사잇길 사무국장)
ⓒ 최호림
하지만 현실적인 고충도 적지 않다. 박우성 사무국장은 "단무지나 신김치를 국물째 봉투에 담아 주시는 경우도 많은데, 차에서 터지기라도 하면 냄새 빼기가 정말 힘들다"며 "다마스 같은 작은 밴 하나만 있어도 훨씬 수월할 텐데"라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그는 "도움이 없으면 운영을 못 한다고 생각지는 말아달라"며 "아무리 어려워도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과 함께 일을 해온 김 신부 역시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인터뷰 내내 사명감과 '청년들이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신념을 내비쳤지만, 이런 공간이 개인의 헌신에만 의존해서는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김 신부는 "아직 식당 운영에 대한 직접적인 정책적 지원이 없다"며 "결국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하게 됐고, 청년기본법에 따른 정책적 지원이 가능해지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식탁 사잇길'은 이제 식사를 넘어 청년들이 직접 참여하고 성장하는 공간으로 확장 중이다. 청년 인권 영화제와 '3000원 아카데미'가 열리고, 청년 서포터즈들이 홍보를 맡는다. 이곳에서 첫 사회 경험을 쌓고 있다는 청년 매니저 서원태씨는 "공부만 하느라 사회 경험이 부족했는데, 누군가를 돕는 일이 내 삶에도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제1회 사잇길 청년인권영화제
ⓒ 최호림
식당을 나서는 길, 김회인 신부가 남긴 마지막 말이 귓가에 남았다.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닙니다. 물리적인 밥이자, 문화의 밥이고, 마음의 밥이며, 인권의 밥입니다. 사잇길은 그 밥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사잇길은 단순히 배고픈 청년들에게 값싼 끼니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었다. '가난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선물하는 곳이자,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틈새에서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보루였다.

소문을 듣고 찾은 3000원 김치찌개 맛집, '사잇길'. 이곳은 키오스크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0원을 누르는 손길에도, 주머니를 털어 1만 원을 누르는 손길에도 차별 없는 온기가 전해지는 공간이다.

'사잇길'에서 피어오르는 김치찌개 냄새야말로 말로만 청년 문제를 운운하고 행동하지 않는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위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또한 청년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국가와 공동체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말해준다. 식탁에서 마음 편히 식사하며 담소를 나누는 청년들. 그들을 진정한 식구로 맞이하듯, 따뜻한 가족의 품처럼 품어주는 청년식탁 '사잇길'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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