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책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나라, 일본
[장세희 기자]
일본은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 공교육과 정부 차원에서 꾸준한 지원을 이어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초·중학교 국공립 학교에서 시행되는 '아침 독서 시간'이다. 이것은 1988년부터 시작된 활동으로, 치바현의 한 고등학교 선생님의 제안으로 시작돼 전국의 학교로 뻗어나가게 되었다.
아침 수업이 시작되기 전, 학생들은 약 20분 정도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 만화나 잡지류를 제외하면 소설, 에세이, 학습서 등 어떤 종류의 책이든 허용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읽느냐'보다 '매일 읽는 시간'을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하는 데 있다.
'아침 독서 시간'에는 4가지 원칙이 있다고 한다.
1.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함께한다.
2. 매일 한다
3. 좋아하는 책으로 한다
4. 읽기에만 집중한다 (기록이나 감상문 불필요)
학교 밖 환경 역시 촘촘하다. 일본의 동네마다 국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도서관과 아동관(児童館)이 존재한다. 특히 아동관은 일본의 아동 정책을 상징하는 공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동관은 해당 지역의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놀이 공간이자 생활 공간으로, 방과 후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아동관 내부는 연령대에 따라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영유아를 위한 놀이방과 초·중학생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아이들은 각자의 발달 단계에 맞는 환경에서 안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집이 좁은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의 주거 현실 때문에 가정 내에 장난감이 많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서는 대형 장난감, 블록, 레고 등을 무료로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책을 사주지 않아도, 이 공간에서 충분히 책을 읽어주고 접하게 할 수 있다.
초·중학생 공간에는 다양한 장르의 책이 다량으로 비치되어 있고, 아이들은 강요 없이 자유롭게 책을 집어 든다. 규모에 따라 3명에서 10명가량의 지도 교사가 상시 근무하며 아이들의 안전을 살피고, 숙제를 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도와주기도 한다. 때로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나 역시 세 아이를 키우며 이 공간의 힘을 실감했다. 아이들이 집에 보이지 않으면 "아동관에 있겠지" 하고 찾으러 가면, 어김없이 그곳에 있었다. 부모가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다가 쉬는 틈에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림이 곁들여진 책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 독서로 이어지는 통로가 되었다.
특히 큰아이는 초등학교 시절 아동관을 꾸준히 다니며 그곳에 비치된 책을 거의 모두 읽었고, 결국 '독서왕' 상을 받기도 했다. 특별한 교육 비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책이 늘 곁에 있었고, 읽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 있었을 뿐이다.
아동관에는 체육관도 마련되어 있어 아이들은 책만 읽는 데 그치지 않는다. 탁구를 치고, 농구를 하며 몸을 움직인다. 특히 비 오는 날이면 갈 곳이 줄어든 아이들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책과 놀이, 학습과 휴식이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구조다. 친구들이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보다 보면, 처음엔 관심이 없던 아이들도 어느새 책에 손을 뻗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종종 "학생들의 독해력이 떨어지고있다", "핸드폰 중독"이라는 말이 쉽게 나온다. 그러나 문제를 지적하기에 앞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책과 함께 놀 수 있는 환경을 얼마나 마련해주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위의 사례처럼, 국가와 지자체가 아이들의 일상 속에 독서를 녹여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꾸준히 지원한다면, 책을 멀리하는 아이는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책이 '의무'가 아니라 '곁에 있는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장세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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