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차세대 에이스' 배준호에게 직접 물었다 "터치 한 번으로 탈압박 가능한 이유는…" [인터뷰.1st]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배준호의 진가는 골과 어시스트 모음 영상으로 알기 힘들다.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스토크시티에서 세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배준호는 공격 포인트가 많지 않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늘 사랑 받는다. 첫 시즌 컵대회 포함 2골 5도움에 그쳤지만 구단 '올해의 선수'로 선정됐다. 이번 시즌은 리그 1골 3도움으로 역시 하이라이트에는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28라운드까지 두 경기 빼고 다 출장하면서 팀내 출장시간 4위에 올라 있다.
헌신적이고 전술적으로 기여도가 높은 선수라는 걸 팀내에서도, 현지 팬들도 알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가를 인정받으려면 결국 팀 성적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서 배준호와 통화했을 때 목소리는 그리 밝지 않았다. 하루 전 2위 미들즈브러와 상위권 맞대결에서 패배해 따라잡을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승격을 꿈꿀 수 있다는 건 최근 성적이 배준호 입단 후 가장 좋기 때문이기도 하다. 챔피언십 6위까지 주어지는 프리미어리그(PL)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노리고 있는데, 현재 8위로 가시권이다.
▲ 퍼스트 터치 한 번으로 거센 몸싸움을 이겨내는 방법
배준호는 이번 시즌 4-2-3-1 포메이션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아예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는다. 지난 시즌까지 왼쪽 측면에서 안으로 파고들며 공을 배급했던 것과 달리 전형적인 '10번' 위치로 이동했다. 스토크 공격은 배준호의 발에서 시작된다. 가장 최근 승리한 노리치시티전 두 골 모두 그랬다. 선제골은 배준호가 뒤꿈치로 기습적인 퍼스트 터치를 하면서 압박에서 벗어난 뒤 측면으로 내준 패스가 시작이었다. 추가골은 동료가 헤딩으로 떨어뜨린 패스를 배준호가 측면으로 스루패스하면서 골까지 이어졌다.
"마크 로빈스 감독님이 늘 요구하시는 게 공 운반과 플레이메이킹이예요. 제 장점은 공을 받자마자 빨리 돌아서서 밀고 올라가는 건데, 그 점을 좋게 봐 주셨어요. 수비형 미드필더가 저부터 찾아서 공을 배급해 주면, 제가 돌아섰을 때 동료들이 연계를 받을 수 있어야 된다는 지시를 하세요. 제가 압박을 한 번 벗겨냈을 때 옵션이 많아야 한다면서요."
배준호는 가장 좁은 공간에서 뛰어야 한다. 퍼스트 터치로 수비형 미드필더를 따돌렸다 해도, 여전히 눈앞에는 수비수가 있고 등 뒤에서 미드필더가 따라온다. 훈련이나 실전이나 부딪쳐 오는 강도가 K리그와 차원이 달랐다. 처음에는 "부딪치기 전에 미리 쫄아 있던" 시기를 겪었지만 지금은 몸싸움을 피해 쓱 빠져나가는 테크닉이 늘고 있다.
"이번 시즌 10번으로 뛰면서 그걸 더 많이 하게 됐는데요. 좁은 공간에서 몸싸움 없이 터치 한 번으로 빠져나올 때의 쾌감. 제가 그 쾌감을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그 순간들이 자꾸 생각나고요. 예를 들어 노리치전 첫 골을 만든 볼 터치는 상대가 절 뒤에서 누르고 있는데 뒷발 원터치로 돌아서서 탈압박했거든요. 그런 장면을 실전에서 해내면 점점 제가 할 수 있는 플레이가 늘어나는 느낌이에요. 감독님이 갈수록 더 주문하시기도 하고."
▲ 다들 걱정하던데, 너무 심심하지 않냐고
연고지 스토크온토렌트는 영국의 유명한 도자기 산업을 이끌던 도시다. 단 그 시기는 빅토리아 시대, 즉 19세기였다. 지난 수십년 동안 경기 침체를 겪었다. 그래서 스토크 선수들 대다수는 약 1시간 거리 맨체스터에 살며 출퇴근한다. 하지만 배준호는 스토크 지역에 그냥 산다. 훈련장 근처에서 편하게 다니며 운전을 줄이는 만큼 푹 자고 싶었다.
"동료 선수부터 구단 사람들까지 다들 걱정하긴 해요. '우리 팀에서 여기 사는 사람이 준호 너 포함해서 몇 명 안 돼. 너무 심심하지 않아?' 근데 전 괜찮아요. 외로움을 잘 안 타거든요. 가족이 있는 선수들은 교육 때문에라도 대도시에 살아야겠지만 전 딸린 식구도 없고요. 집 근처에 사우나 하나 뚫었어요. 냉탕이 한국 냉탕 수준을 넘어서 훈련장에서 제공하는 저온치료탕 정도로 엄청 차갑더라고요. 거기서 몸을 쫙 풀면 챔피언십의 너무 많은 경기일정(정규리그 46라운드)을 소화하는데 도움이 많이 돼요. 인터뷰 끝난 뒤에도 사우나 갈 거예요."
스토크온토렌트는 울버햄턴과 버밍엄도 각각 1시간 이내에 닿는 거리다. 각각 황희찬과 백승호가 있는 곳이다. 사실 나이차가 좀 있기 때문에 빠르게 친해지진 못했는데, 며칠 전 울버햄턴에 방문해 황희찬과 같이 밥 먹고 '앞으로 자주 보자'는 다짐을 했다. "형이 오시진 않냐고요? 에이, 당연히 제가 가야죠."


▲ 월드컵에 가기 위해서라도, 승격 도전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
배준호는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국가대표가 됐다. 2차 예선에서 데뷔한 뒤, 3차 예선에서 홍명보 감독의 신임을 받으며 점차 팀내 비중을 늘려갔다. 3차 예선 10경기 중 선발은 2경기(교체출장 4경기)에 불과했음에도 1골 4도움으로 공격포인트 5개를 기록했다. 최다 공격포인트였던 이재성, 손흥민과 단 1개 차이다. 스토크보다 훨씬 많은 공격 포인트를 보면 의문이 생긴다. 배준호는 더 주도적인 축구를 하는 팀이 어울리는 선수 아닐까?
"공격수로서 공을 많이 잡을수록 경기하기 편한 건 사실이죠. 특히 전 공을 많이 잡아야 좋은 플레이가 나오는 선수라고 생각해요. 공을 자주 잡으면 경기를 더 즐기게 되고,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공격 포인트가 따라오거든요. 하지만 대표팀과 소속팀 어느 쪽이든 주도적인 경기를 안 해도 전 자연스럽게 장점을 발휘할 수 있어요. 역습 위주 경기라고 해도 제가 공을 갖고 빠르게 올라가는 식으로 많이 관여하면서 팀에 도움을 줄 수 있죠."
아직 월드컵 본선 엔트리에 들 거라고 자신할 수 있을 정도의 입지는 아니다. 배준호는 대표팀에서 2선으로 분류된다. 많으면 7명, 적으면 5명 정도가 선발될 수 있는 위치다. 부상이 없다면 손흥민, 이재성, 이강인이 확실하고 황희찬, 배준호, 이동경이 비교적 앞서 있었다. 여기에 양현준, 양민혁, 엄지성 등이 도전해오는 구도인 데다 잠시 멀어진 전진우 등 추가 도전자도 있다. 배준호는 대표팀을 그리 의식하지 않는 게 오히려 도움될 시점이라고 이야기했다.
"대표팀 동료들과 자주 소통하죠. 하지만 제가 홍명보 감독님께 보여드릴 수 있는 건 스토크 경기밖에 없잖아요. 스토크에서 승격 플레이오프를 목표로 열심히 나아가고 있어요. 제가 입단한 뒤 어느 때보다 분명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팀이 더욱 뭉쳐 있고, 다들 개인보다 팀을 생각하는 분위기예요. 지금 부상자가 많은데도 상위권에서 밀려나지 않은 만큼 시즌 막판에 충분히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 꿈인 프리미어리그로 갈 가능성이 보이는 한 계속 노력해야죠."
▲ 짧은 질문들
어렸을 때 롤모델: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드림 클럽: 없다, 프리미어리그가 목표일 뿐
최근 가장 즐거웠던 일: 중학교 때 친구가 지금 집에 와 있다. 축구 동료가 아닌 친구는 몇 안 되는데 그 중 한 명이다. 함께 밥 먹으러 다닌다.
어머니가 가장 자주 해 주시는 메뉴: 칼국수를 아주 잘 하신다. 경기 전날 탄수화물 보충에도 좋다.
직접 요리할 때 필살 메뉴: 스테이크. 미디엄 레어로 굽고, 소금 후추로만 시즈닝한다.
인터뷰 끝나고 할 일: 사우나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배준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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