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부담?’ 안산에서부터 해법 찾는다

회의실 문이 열릴 때마다 겨울 공기가 밀려들었다. 사람들이 잠시 어깨를 움츠렸다가 자리에 앉았다. 23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한 오래된 상가 3층. 이주민시민연대 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최혁수) 사무실 테이블 위에는 안산시 조례와 통계표, 최근 언론 기사 스크랩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최혁수 이사장은 종이 출력물의 들뜬 모서리를 손끝으로 눌렀다. 간담회 시작을 앞두고도 그의 손길은 분주했다. 숫자와 문장으로 정리된 현장의 요청이 이 자리에서 가볍게 흩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몸짓처럼 보였다.
‘글로벌 상호문화교육도시 안산’을 주제로 더불어민주당 박해철 의원실과 이주민시민연대가 공동 주최한 이날 간담회에는 국회의원과 도·시의원, 안산시 공무원, 교육지원청 관계자, 재외동포청 실무자, 시민사회 인사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안산의 이주 교육 문제를 두고 이만한 면면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이례적이었다.
박해철 의원(더불어민주당 안산시병)은 안산 인구 약 62만명 가운데 다문화가족이 10만명을 넘고,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다문화 학생 비율이 90%를 웃돈다는 수치를 제시했다. 박 의원은 “안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마주할 현실”이라며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연결하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전국으로 확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기종 이주민시민연대 고문(전 안산YMCA 이사장)은 제조업에 비유해 설명했다. 설계 단계에서 문제를 잡으면 적은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생산과 유통 이후에 드러난 문제는 훨씬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들 문제를 지금 내버려 두면 사회적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경고했다.
이날 간담회를 준비한 최혁수 이사장은 구세군 사관(목사)으로 2013년 안산에 왔다. 구세군 다문화센터장으로 이주노동자의 체불임금과 비자 문제를 도왔다. 그는 2017년 더 폭넓은 이주민 지원을 위해 사관 직을 내려놓고 시민사회로 나왔다. 2018년 이주민시민연대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한 뒤, 이주민 아동의 교육과 돌봄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왔다. 그는 “신뢰가 쌓이면 이주민 부모들이 가장 먼저 꺼내는 이야기가 아이들 문제였다”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행정의 아이러니를 짚었다. 코로나19 시기 시청과 학교는 이 단체를 찾아와 이주민 통역과 안내를 요청했지만 정작 아이들을 위한 지원을 요청하면 “제도권 기관이 아니라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주민시민연대가 고용노동부 인가 사회적협동조합이자 지정기부금단체, 공익법인임을 강조하며 “현장에서는 필요하지만 제도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날 논의는 ‘다문화’라는 넓은 개념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고려인 동포 청소년’에 초점을 맞췄다. 2019년부터 고려인 일자리 문제 해결을 목표로 사회적기업 KCS(Korea Clean Service)를 운영해 온 김종천 대표는 고려인들을 “가장 열악해서가 아니라, 설명되지 않은 집단”이라고 표현했다. 1937년 강제이주 과정에서 언어와 교육 체계를 상실한 고려인 사회의 역사적 맥락이 오늘날 교실에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채, 단순한 ‘한국어 미숙 학생’으로만 다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광주 고려인 마을에서 이주민종합지원센터를 운영하는 전득안 갓플리징교회 목사는 한국어를 거의 이해하지 못한 채 일반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의 현실을 전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수업을 견디게 하는 것은 교육이라기보다 방치에 가깝다”고 말했다.
전 목사는 교사 인력 문제도 함께 거론했다. 다문화 밀집 학교에 대한 교사 전입 기피 현상과, 새로 발령받은 교사들이 현장에서 겪는 부담을 언급하며 “교사의 헌신에만 기대는 구조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최 이사장 역시 해당 지역 근무 교사에게 인사·연수·전보 등에서 명확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수진 안산교육지원청 교육장은 “모든 아이는 안산의 아이”라며 공교육의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현장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세영 안산시청 교육청소년과 과장은 공교육 진입 전 언어 문화 적응을 위한 완충 장치, 이른바 ‘랭귀지 스쿨’ 모델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최 이사장은 “경제계는 이미 변화를 읽고 있다”고 말했다. 선부동 일대 카센터와 병원, 은행에는 러시아어 통역이 배치돼 있고, 상권 구조도 이주민 고객을 고려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수익이 걸린 영역은 언어를 자산으로 인식하지만 아이들 교육은 여전히 비용으로만 취급된다”고 꼬집었다.
이주민시민연대는 ‘이중언어 인력의 정식 교육 인력화’ ‘다문화 밀집 학교 교사 인센티브 제공’ ‘공교육에서 이탈한 학교 밖 이주배경 청소년 실태조사와 지원’ ‘대안교육 기관에 대해 정부가 운영 예산 일부를 책임지는 방식의 지원 체계 도입’ 등을 제안했다. 재외동포청 김동욱 과장은 “안산의 시도가 전국으로 확산되길 바란다”며 지자체의 사업 제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간담회가 끝난 뒤, 서류를 정리하며 최 이사장 서류를 챙기며 나직이 말했다. “고려인 아이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인가요, 아니면 준비되지 않은 어른들이 문제인가요.’ 우리가 이 질문을 외면하는 사이에 아이들의 시간은 지금도 흘러가고 있습니다.”
안산=글·사진 손동준 기자 sd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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