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무솔리니 파시즘이 가능했던 이유 [의사소통의 심리학]
인간만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물론 새나 동물도 먹이를 찾아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존재는 인간이 유일합니다.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이유는 우선 직립보행에 유리한 해부학적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지요.
인간은 두뇌와 몸을 연결하는 해부학적 조건이 매우 특별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뇌와 척수가 하나의 중추신경계로 연속되기 위해 두개골에 남겨진 통로인 ‘대후두공(Foramen Magnum)’의 위치입니다. 침팬지의 경우, 사진처럼 구멍이 뒤통수 쪽에 치우쳐 있습니다. 네 발로 걸을 때 척추는 땅과 수평이 되고, 무거운 머리가 앞으로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목 뒤 근육이 강하게 발달했습니다.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기에는 부자연스럽지요. 그러나 인간의 경우, 대후두공이 두개골 아래의 정중앙으로 이동했습니다. 척추가 땅과 수직으로 설 수 있게 무거운 두뇌가 골프티 위의 공처럼 척추 위에 균형 있게 얹혀 있습니다. 적은 에너지로도 고개를 360도 돌릴 수 있지요. 하늘을 오래 쳐다봐도 목에 무리가 가지 않습니다.
직립보행이 가능해지면서 인간에겐 ‘감각의 권력이동’이 일어납니다. ‘코(후각)’에서 ‘눈(시각)’으로 감각의 중심이 이동한 겁니다. 네 발로 걷는 동물은 코가 가장 앞에 있어 냄새로 먼저 탐색합니다. 그러나 두 다리로 걷기 시작하면서 눈으로 세상을 파악합니다. 고개를 들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자 상대방과 ‘눈맞춤’을 하며 정서적 소통이 시작됩니다. 눈의 흰 공막이 커지면서 정서적 눈맞춤은 ‘시선의 공유’로 발전합니다.
이뿐 아닙니다.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가리키기(pointing)’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눈의 흰 공막과 손가락으로 자신의 의도와 관심을 상대방과 공유하는 ‘공동주의(joint-attention)’가 가능해진 겁니다. 다른 동물들에게는 불가능한 ‘상호주관적 세계’를 구성할 수 있게 됐습니다.
언젠가 아무 의미 없는 하늘을 먼저 올려다보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눈동자와 손짓을 따라 그 옆의 사람도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함께 올려다보며, 인간은 의미 없이 흩어져 있는 구름과 별들 사이에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 즉 ‘추상적 사고’와 ‘상상력’의 시작입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 인간 고유의 문명이 시작됐다고 주장합니다. ‘인지혁명(Cognitive Revolution)’이라는 것이지요. 약 7만년 전부터 나타난 ‘허구(fiction)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의 문명을 가능케 했다는 것입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별자리’ 이야기를 만들고, 그 별자리가 우리를 지켜준다는 ‘집단적 믿음’이 생겨납니다. 집단이 함께 믿는 상상의 질서는 시간이 흐르면서 신화, 종교, 법이 됩니다.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의미 없는 대상을 함께 보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이중실재(dual reality)’를 가능케 했다고 주장합니다. 하늘의 별과 구름, 강과 바다, 사자와 호랑이 같은 객관적 현실에 신, 국가, 화폐 같은 ‘가상의 질서’를 덧씌웠다는 것이지요. 이는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보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숭이에게 “지금 바나나를 포기하면, 죽어서 ‘원숭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설득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보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보는 ‘공동주의’와 ‘집단 의도성(collective intentionality)’이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인류 인지혁명의 심리적 토대입니다.


인지혁명과 관련해 유발 하라리는 로빈 던바(Robin Dunbar)의 ‘150명 한계론’을 끌어들입니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로빈 던바 교수는 인간관계의 조건이 ‘서로 누구인지 아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이 조건을 충족하려면 150명이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이른바 ‘던바의 수(Dunbar’s number)’입니다. 1992년 발표된 ‘영장류에서 신피질 크기와 사회집단 규모의 관계’라는 논문에서 던바는 뇌의 ‘신피질(neocortex) 크기’와 ‘안정적인 사회집단의 크기’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주장합니다.
던바는 언어, 이성, 사회적 판단 등을 담당하는 ‘생각하는 뇌’, 즉 신피질과 나머지 뇌의 부피를 계산했습니다. 그 결과 인간 신피질에 대응하는 집단의 크기는 147.8명이었습니다. 던바는 이 숫자가 신뢰할 만한 것인지 인류학적 자료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조사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신석기 시대 부족 마을의 평균 인구는 150명 정도였습니다. 로마 시대 군대의 기본 단위인 켄투리아(centuria)는 60~80명이지만, 실제 전장에서의 전술 단위는 두 개의 켄투리아를 합친 150명 내외의 ‘매니플(manipulus)’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오늘날 보병사단의 중대 크기도 대부분 150명 내외입니다. 로마 시대 이후로 그리 큰 변화가 없습니다. 서로를 동료로 인식하며 믿고 싸울 수 있는 숫자는 150명이 한계라는 것이지요. 던바는 자신의 ‘150명 한계론’을 뒷받침하는 가장 완벽한 사례로 종교 공동체인 ‘후터파(Hutterites)’를 꼽습니다.
후터파는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오늘날의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경계 지역인 티롤(Tyrol) 지방에서 형성된 급진적 종교 공동체입니다. 이들은 성경 사도행전 2장 44절의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라는 구절을 문자 그대로 실천합니다. 즉, ‘내 것’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농장도, 식당도, 수익도 모두 공동체의 것입니다. 던바는 이 공동체가 경찰이나 법률 시스템 없이 400년 넘게 질서를 유지해왔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그 비결이 공동체의 단위를 ‘150명’으로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던바는 주장합니다.

타인의 시선을 따라가며 ‘공동주의’를 하는 능력은 성인이 되면서 특이하게 변질됩니다. 시선과 사회적 규칙이 결합됩니다. 아기는 엄마의 시선을 쫓아가며 대상의 의미를 획득하지만, 성인이 되면 타인의 시선이 규범이 되고, 거역할 수 없는 압력이 되기도 합니다.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의 ‘올려다보기 실험(looking up experiment)’은 이러한 ‘시선의 제도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1969년 연구팀은 뉴욕의 혼잡한 거리에 바람잡이들을 세워놓고, 아무것도 없는 건물의 6층 창문을 뚫어지게 올려다보게 했습니다. 실험의 변수는 ‘바람잡이의 숫자’였습니다.
한 사람이 하늘을 볼 때는 지나가는 행인의 4%만이 걸음을 멈췄습니다. 그러나 3명이 바라보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행인의 절반 정도가 걸음을 멈추거나 고개를 들어 바람잡이들의 시선을 쫓아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5명이 올려다보는 상황에서는 80%가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5명의 시선만으로도 거리의 거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겁니다.
밀그램의 실험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집단’은 5명에서 시작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1~2명일 때는 그저 ‘개인적인 자극’일 뿐이지만 5명의 시선이 한곳을 향할 때는 상황이 많이 달라집니다. 더 이상 ‘개인적인 행동’이 아니라 ‘객관적 상황’이 됩니다. 밀그램은 집단의 행동을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정보 획득의 과정으로 해석했습니다. 집단의 시선에 맞추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는 효율적인 전략입니다.

밀그램의 실험과 앞서 설명한 덴버의 ‘150명 한계론’을 연결해보면, 아날로그적 ‘시선’이 작동하는 집단, 즉 공동주의가 가능한 집단의 한계는 150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룹(group)’과 ‘군중(crowd)’을 개념적으로 구분할 필요성이 생깁니다. 개인 간의 ‘상호시선(mutual gaze)’이 작동하지 않고, ‘허구’를 매개로 유지되는 150명 이상의 집단을 ‘군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1~4명은 단순한 ‘개인들의 관계’, 상호시선과 공동주의가 가능한 5~150명의 집단은 ‘그룹’, 허구, 상징 담론으로 매개되는 150명 이상은 ‘군중’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밀그램의 ‘하늘 올려다보기 실험’은 솔로몬 애쉬(Solomon Asch)의 ‘동조성(conformity) 실험’의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애쉬의 유명한 동조성 실험은 아주 간단합니다. 한 장의 기준선 카드(선 하나)와 비교선 카드(서로 길이가 다른 세 개의 선)를 참가자들에게 제시하고 기준선과 길이가 같은 선을 말하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정답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런데 앞쪽에 앉아 있는 실험의 공모자들이 전부 틀린 답을 이야기합니다. 이 상황에서 끝에 앉아 있는 실험 참가자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실험의 목표입니다.
실험 공모자가 1명이나 2명일 때 실험 참가자의 대답에는 큰 오류가 없습니다. 그런데 3명이 앞에서 틀린 답을 말하면 ‘내가 틀렸나?’ 하며 앞선 사람들의 오답에 동조하기 시작합니다. 동조율은 31.8%로 크게 뜁니다. 5명 이상이 되면 동조율은 조금 더 높아지고 더 이상의 변화가 없습니다. 애쉬의 실험과 밀그램 실험을 종합해보면, 3~5명 이상이 동일한 대상을 보면 개인은 자신의 눈보다 집단의 눈을 더 신뢰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집단의 시선은 ‘던바의 수’가 보여주듯, 150명까지는 어느 정도 합리성을 유지하며 각 개인들의 행동을 통제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 넘어가면 전혀 다른 현상이 나타납니다. ‘군중심리(crowd psychology)’입니다.
‘군중’ 개념의 가장 중요한 ‘연관 검색어’는 ‘군중심리’입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군중’ 개념은 출발부터 ‘심리’와 함께 나왔습니다. ‘군중심리’라는 개념을 학문적으로 정립하고 대중화시킨 학자는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입니다. 1895년에 그가 쓴 책 ‘군중심리’는 ‘왜 사람들은 모이면 이성을 잃고 행동하는가?’라는 질문의 대답입니다. ‘개인’이 모여서 ‘집단’이 되지만, 그 ‘집단’은 각 개인의 단순한 합이 아닙니다. ‘군중심리’라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했던 이유입니다. 군중심리의 메커니즘을 르 봉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익명성(anonymity), 전염성(contagion), 그리고 피암시성(suggestibility).
르 봉은 멀쩡한 엘리트나 지식인도 군중 속에 섞여 익명적 존재가 되는 순간, 자신의 독립적인 이성을 상실한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군중 속에서 감정과 행동은 급속하게 전염됩니다.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이 생각과 행동을 지배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고 집단의 흥분 상태를 따라 폭력적으로 변하기 쉽습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집단은 아주 쉽게 선동당한다는 사실입니다. 군중은 리더나 선동가의 말에 비판 없이 복종합니다. 20세기 초반,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가능했던 이유입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4호 (2026.01.21~01.27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c) 매경AX.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영업이익률 무려 80%?…삼성전자도 울고 갈 ‘쥬베룩’ 저력- 매경ECONOMY
- ‘달러 사재기’ 이제 안 할래...뚜렷한 달러 매도세- 매경ECONOMY
- 편의점 빅3 ‘무노조 경영’이 36년 만에 깨진 이유 [취재수첩]- 매경ECONOMY
- 국가대표 AI 실익이 없다고? [김소연 칼럼]- 매경ECONOMY
- 바이오 봄날 온다...알테오젠·에이비엘 ‘好好’ [스페셜리포트]- 매경ECONOMY
- 왜 하필 지금…SK, 배터리 출구 전략 고민하나 [재계톡톡]- 매경ECONOMY
- 1300가구 서래마을 명품 단지로 우뚝 설까 [감평사의 부동산 현장진단]- 매경ECONOMY
- 본선 진출자 20명 확정…시청률 ‘넘사벽’ [MBN]- 매경ECONOMY
- “사두면 오르던 시대 끝” 부동산 판 흔드는 ‘용도변경’- 매경ECONOMY
- “얼마나 더 오를까”...‘금값 랠리’에 월가 큰손도 비중 높인다- 매경ECONO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