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을 가로막는 것은 제도가 아닌 '비교문화'
[김은유 기자]
정부는 출산 장려 정책의 일환으로 첫만남이용권, 의료비 지원 등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에 이르는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그 덕분일까. 출산이 과거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라는 이미지는 어느 정도 옅어 보이기도 한다. 제도만 놓고 보면 출산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일 정도다. 그런데도 왜 합계 출산율은 여전히 0.7명대에 머물러 있을까.
출산 장려 정책을 국가 차원에서 처음 시도한 곳은 1930년대 프랑스였다.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젊은 남성 인구가 급감하자, 프랑스는 국가 존망의 위기를 느끼고 자녀 수에 따라 가족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후 북유럽 국가들은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정책을 모색했다. 단순한 현금 지원을 넘어 육아휴직, 보육 시스템, 성평등 정책을 통해 여성의 삶이 육아로만 소진되지 않도록 사회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출산 정책 역시 많은 부분에서 북유럽을 닮아 있다. 만약 서울에서 아이를 낳으면 200만 원의 첫만남이용권이 바우처로 지급되고, 자녀수당은 만 8세까지 매달 10만 원씩 나온다. 부모급여도 1년 차에는 월 100만 원, 2년 차에는 월 50만 원이 지급된다. 인구 감소 지역에서는 여기에 지자체 지원이 더해져 지원 규모가 훨씬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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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산모의 배 세상에 나올 아가를 기다리는 임산모 |
| ⓒ 픽사베이 |
반면 우리 사회에서 '출산'이라는 단어에는 여전히 수많은 부담이 내재되어 있다. 아무리 북유럽을 닮은 정책을 도입해도, 여성들은 먼저 경력 단절, 경제적 리스크, 개인 책임의 과중함을 떠올린다. 여기에 사회 전반에 깔린 불안감이 더해진다. 특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비교 문화는 출산과 양육의 부담을 더욱 증폭시킨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고 평가받는 환경에 노출되어 왔다. 그 결과, 실제로는 빈곤하지 않음에도 비교를 통해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을 쉽게 느끼는 사회가 되었다. 이러한 비교 문화 속에서 출산 지원 정책만을 쏟아내는 일은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된다. 북유럽에서는 비교 의식에서 비롯된 좌절과 두려움이 출산 포기의 주요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출산모들은 구조적으로 비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
산후조리원 문화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방에서는 2주에 200만~300만 원 선에서 이용할 수 있는 산후조리원이, 서울에서는 600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가격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출산과 육아 정보를 주로 네이버 카페나 SNS를 통해 접하는 산모들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비교는 자연스럽게 시작되고,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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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기발과 하트손 하트모양의 손으로 아기 발을 감싸고 있다. |
| ⓒ 픽사베이 |
우리 사회가 여전히 천민자본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치보다 가격을 먼저 보고, 행복보다 비교를 먼저 배우는 문화 속에서는 생명과 돌봄, 인권의 가치를 온전히 존중하기 어렵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지원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갖가지 정책을 총동원해서 출산률을 0.9명대까지 끌어올릴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새 생명을 낳아 키우는 일이 '행복한 선택'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출산과 양육의 시기에 양육자들이 비교 의식에 휘말리지 않도록 사회 전반에서 가격과 등급을 매기는 관행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출산과 육아가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개인의 행복이 사회의 건강으로 확장되는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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