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호 논설위원이 간다] “이번에 원전 유치 못하면 우린 이제 죽습니다”
신규 원전 후보지 영덕·울주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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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38년 신규 원전 2기 가동 계획
“원전 필요” 여론 흐름에 반색
영덕, 천지원전 취소에 산불도
“울주, 부지도 송전선도 다 갖춰”
」
산불 폐허 속 ‘천지원전’ 마을 석리
지난 12일 경북 영덕과 울산시 울주를 찾았다. 두 곳은 최근 유력한 신규 원전 부지로 거론되는 곳이다. 영덕은 박근혜 정부 당시 ‘천지’라는 이름의 신규 원전 부지로 확정됐다가, 탈원전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 때 지정이 해제된 곳. 울주는 이미 새울원전 1·2호기(옛 신고리 3·4)가 가동 중이고, 3·4호기가 순차적으로 들어올 곳이다. 그런데, 예상 밖이었다. 주민들은 현 정부의 ‘신규원전 불가피’ 소식을 오랜 가뭄 뒤 비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KTX 포항역에 내려 차를 타고 새로 난 동해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40㎞를 달렸다. 영덕IC를 나오니 ‘동해안의 척추’라는 7번 국도가 이어진다. 10여분을 다시 달리다 동쪽으로 빠져나오니 굽이굽이 도로 양쪽 산하가 끝도 없이 숯더미다. 황토 민둥산에 새까맣게 탄 성냥개비들을 꽂아놓은 듯했다. 지난해 3월 의성에서 시작해 안동·청송·영양·영덕에 이어 남쪽 울주까지 휩쓸었던 영남권 대형 산불의 흔적이다. 겨울산이라 더 그럴까. 10개월이 지났지만 참사의 현장은 세월이 멈춘 듯 그대로였다. 그 잿더미의 끝에 한때 ‘천지원전 부지’였던 영덕읍 석리마을이 있었다. 동해안 절벽에 마치 갯바위 조개처럼 붙어있어 ‘따개비 마을’이란 이름을 가진 곳이다. 마을회관에 걸린 사진 속 마을은 그림 같았다. 푸른 동해를 바라보는 가파른 절벽에 붉은색·푸른색 지붕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곳. 그러나 이젠 옛 얘기가 됐다. 화재를 운 좋게 피한 몇 집을 빼곤 집터와 불타다 남은 소나무 몇 그루만 남았다. 20가구 70여명 마을 주민은 언덕 위에 마련된 27㎡(약 8.2평) 규모의 임시 조립주택 단지에서 지난봄부터 대책 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마을 이장 이미상(65)씨는 “이번에 석리가 신규원전 부지로 되지 않으면 이젠 꼼짝없이 죽는 수밖에 없다”며 “먼저 원전부지로 정해졌다 해제되고 나서 마을 전체가 어둡고 침울하게 세월을 보냈는데, 작년에 산불까지 휩쓸고 가 이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 이장은 영덕 바로 위 울진을 부럽게 얘기했다. “원래 영덕보다 인구도 적고 못살던 동네였는데, 원전이 들어서고 나서 위험하다는 말도 없고 사람 소리 나는 부자 동네가 됐다니까요.” 울진군에는 현재 한울 1~6호기와 신한울 1·2호기 등 8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고, 신한울 3·4호기가 각각 2032년과 2033년 준공될 예정이다.
따개비마을에서 남쪽으로 10여㎞ 내려오니 영덕 읍내다. 동해선 철도가 지나가는 영덕역 인근 상가건물 4층에 자리한 ‘영덕 수소&원전 추진연합회’를 찾았다. 백지화됐던 천지원전 부지를 활용해 신규 원전을 유치하기 위해 2024년 만들어진 주민 중심의 민간단체다.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광성(66) 씨는 “지역소멸과 지역경제 침체의 바닥에 이른 영덕군을 살릴 유일한 대안이 백지화됐던 신규 원전 재유치”라며 “과거 천지원전 유치 당시 반대 의사를 보였던 군민 중 상당수도 이젠 원전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오락가락 정책 속 활력 잃은 마을
다른 목소리도 있다. 2019년 8월 당시 영덕핵발전소 찬반주민투표 추진위원회가 군민 1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신규 원전 유치 반대가 61.7%, 찬성 30.6%로 반대가 우세했다. 과거 천지원전 지정 당시 찬반주민투표 위원장을 지낸 백운해 영해침례교회 목사는 “주민 여론은 원전 반대가 월등히 높았는데, 군 의회에서 전원 찬성으로 천지원전 유치 신청을 했다”며 “원전 반대에 대한 생각은 지금도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광성 위원장은 “당시 여론조사는 원전 유치를 원하는 군민들은 아예 참여하지 않은 잘못된 조사”라며 “최근 여론조사는 아직 없지만, 원전을 유치해야 지역을 살릴 수 있다는 의견이 우세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천지원전 건설이 애초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진작에 건설을 마치고 올해가 상업운전을 시작하는 해였다”며 “군민들이 넘쳐나던 읍내도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세월 속에 이젠 활력을 잃어버렸다”고 덧붙였다.
영덕은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2년 신규원전 부지로 지정됐으나,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 원전 계획이 백지화된 이후 군 전체가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한수원이 전체 예정부지 324만㎡(약 98만평)의 18.9%(61만㎡)까지 사들였다가, 매입을 중단했다. 이후 환매가 시작돼 세 집이 땅을 찾아갔으나, 탈원전을 반대하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환매가 다시 중단됐다. 당시 군으로 내려온 380억원의 특별지원금은 쓸 틈새도 없이 이자까지 더해 국고로 회수됐다. 한때 12만명에 달했던 영덕군 인구는 현재 3만2000명. 군민의 73%가 사라져, 말 그대로 지역 소멸 수준이 됐다. 재정자립도는 7.72%로, 군 단위 기초지자체 중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원전은 주변 사람들이 제일 잘 알아”
영덕을 뒤로하고 동해고속도로와 국도를 타고 남쪽, 울주군으로 다시 달렸다. 읍내에서 떨어진 서생면 신암리. 새울원자력본부 바로 아래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KINGS)와 한수원 인력개발원이 자리 잡은 곳이다. 한수원에 따르면 20만㎡(약 6만5000평) 규모의 이 부지가 신규 원전 2기가 들어설 규모가 된다. 캠퍼스에 들어서니 푸른 동해바다 해변을 끼고 5층 높이의 최신식 대학원대학교 건물이 등장했다. 바로 옆 학생 기숙사 건물은 휴양지 콘도 건물을 연상케 했다. 북쪽 철책 담장 너머로 새울원자력본부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인근 카페에서 만난 손복락(63) 서생면 신규원전추진위원장은 “울주는 한수원이 가진 부지를 활용하면, 별도의 토지수용을 할 필요가 없고, 초고압 송전선로도 이미 있어, 신규 원전 건설 기간을 대폭 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원전은 원전 주변지역 사람들이 제일 잘 안다”며 “환경단체들이 원전의 방사성 물질 위험을 강조하는데, 60년 넘게 이곳에서 살아온 나는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가 없다는 걸 직접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길영 울주군 의회 의장은 “과거 신고리 5·6호기(현 새울 3·4호기) 건설 중단 때 주민들 서명을 모아 다시 살렸을 정도로 울주군은 일부 환경단체를 제외하고는 원전 유치에 찬성하고 있다”며 “원전 건설 비용과 기간, 주민 수용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영덕은 울주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신규 원전을 위한 부지선정위원회는 지난해 2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확정 이후 이미 구성됐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부지선정위원회는 제대로 가동도 하지 못하고 사실상 중단됐다. 계획에 따르면, 신규 대형원전 2기(2.8GW)가 2038년, 소형모듈원전(SMR) 1기(0.7GW)가 2036년에 가동될 예정이다. 11차 계획 확정 이후 정권이 교체되면서 1년이 또 그냥 지났다. 그 사이 안정적이면서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한 인공지능(AI) 시대가 불쑥 다가왔다. 미국·영국·중국은 물론, 일본까지 원전 되살리기 바람이 불고 있다. 원자력산업협회 관계자는 “AI 수요뿐 아니라 계획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만도 막대한 전기에너지가 필요하다”며“올해 계획할 12차 전기본에 추가로 또 신규 원전이 포함되어도 중장기 국가 에너지 수요를 따라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최준호 과학전문기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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