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아닌 20개월 뒤”… ‘꿈의 기술’ 현실화 성큼

양윤선 2026. 1. 22.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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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에너지 ‘고온 초전도체’ 혁명
수십년간 가능성으로만 거론되던 고온 초전도체 기술의 현실화가 다가오고 있다. 사진은 미국 핵융합 스타트업 ‘커먼웰스 퓨전 시스템즈’(CFS)가 최근 ‘CES 2026’에서 소개한 고온 초전도 자석 활용 핵융합 장치 ‘스파크’의 디지털 트윈 모델. 핵융합 기업이 CES에 등장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CFS 제공


물리학의 오랜 난제였던 꿈의 기술 ‘고온 초전도체’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인류는 ‘에너지 무손실 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가 유실 없이 가정에 전달되면서 전기 요금의 획기적인 인하도 가능해진다. 마찰 없는 자기부상열차가 초고속으로 도심을 잇고, 의료 현장에서는 MRI 촬영 정밀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전력 수요가 치솟는 상황에서 고온 초전도체는 에너지 효율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기술적 전환점으로 주목된다.

초전도란 특정 온도 이하에서 물질의 전기 저항이 완전히 사라지는 물리적 상태를 뜻한다. 일반적인 전도체는 전기를 보낼 때 열에너지를 발생시키며 전력을 소모하지만, 초전도체는 저항이 없기 때문에 에너지 손실 없이 무한히 전류를 흐르게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고온 초전도체’는 영하 269도 수준의 극저온에서만 작동하던 기존 초전도체의 한계를 깨고 영하 196도 이상에서도 성질을 유지하는 물질이다.


21일 학계에 따르면 전 세계 주요국들은 고온 초전도체 실용화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가장 연구가 활발한 분야는 ‘핵융합 발전’이다. 한 마디로 지구에 ‘인공 태양’을 만드는 기술이다. 태양의 에너지 생성 원리를 모방해 수소처럼 가벼운 원자핵을 결합시켜 에너지를 얻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초고온의 플라즈마를 가둬두기 위한 자기장이 필수적인데 강력한 자기장을 발생시키는 고온 초전도 자석을 이용하면 핵융합 장치 크기는 소형화하면서 에너지 효율은 극대화할 수 있다.

올해 CES에도 처음으로 핵융합 기업이 등장했다. 미국 핵융합 스타트업 ‘커먼웰스 퓨전 시스템즈(CFS)’는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에 참가해 “매사추세츠주에 건설 중인 핵융합 실증 장치인 ‘스파크’의 디지털트윈을 구축해 수년이 걸리던 실험 과정을 몇 주로 단축하겠다”는 구상을 공개했다. 핵심 기술인 고온 초전도 자석 18개 중 첫 번째 유닛 설치를 완료했으며 올 상반기 내로 모든 자석 설치를 완료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대 초전도응용연구센터 연구진이 핵융합 자석용 대전류 고온 초전도 케이블 시편을 운반하기에 앞서 액화질소 환경에서 성능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대 제공


CFS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오른 CES 기조연설 무대에서도 대표적인 혁신 사례로 지목됐다. 밥 뭄가드 CFS CEO는 “핵융합은 20년 뒤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 20개월 뒤면 눈 앞에 펼쳐질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도 핵융합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은 지난해 11월 핵융합·우주, AI, 로봇, 양자, 반도체·통신, 바이오·헬스케어 등 6개 분야를 국가 전략 기술로 꼽았다. 올해부터 5개년 계획에 따라 해당 분야에 대한 집중 지원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인 상업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일본 중부 지역의 주요 유통업체인 ‘아오키 슈퍼’는 자국 핵융합 스타트업 ‘헬리컬 퓨전’과 핵융합 전력 구매 계약(PPA)을 체결했다. 이는 일본 최초의 핵융합 에너지 PPA다. 헬리컬 퓨전은 2030년 이후 전력 공급을 시작할 계획이다. 헬리컬 퓨전은 “이번 계약은 핵융합 가치 사슬에 전력 수요자가 직접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중국중차고분유한공사(CRRC)가 공개한 최대 시속 600㎞의 초전도 자기부상열차. CRRC 제공


중국은 초전도 자기부상열차 연구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내는 중이다. 중국 국방과학기술대 연구진은 지난달 400m 길이 자기부상 시험 선로에서 1.1t급 차량을 2초 만에 시속 700㎞ 속도로 가속시킨 후 종착지에 안전하게 급정거하는 데 성공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전도 자기부상열차 속도”라고 전했다.

앞서 중국중차고분유한공사(CRRC)는 지난해 7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12회 세계 고속철도 박람회에서 최대 시속 600㎞의 초전도 자기부상열차를 공개하기도 했다. 중국 매체들은 해당 열차가 1200㎞에 달하는 베이징~상하이 구간을 2.5시간에 주파해 기존 고속철도(5.5시간) 대비 소요 시간을 절반 이상 줄였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이 같은 발전은 진공 밀폐 튜브 속에서 도시들을 단 몇 분 만에 연결하는 ‘하이퍼루프’ 시스템의 실현 가능성을 연 것이기도 하다.

서울대에서 개발 중인 핵융합용 고온 초전도 자석 시스템 구성도. 서울대 제공


한국 정부도 지난 15일 5대 융합원천기술 개발사업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5대 분야에 총 2342억원을 투자할 예정인데, 이중 고온 초전도 자석 실용화 기술 개발에 80억을 투입한다. 구체적으로는 해당 기술을 2029년까지 완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료(암 치료 가속기), 에너지(핵융합), 교통(항공기) 등 응용 분야 실용화 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다. 앞으로 5년 안에 응용 분야별 프로토타입(시제품)을 만들어 산업·기술 혁신을 이끌겠다는 구상이다.

영국 원자력청(UKAEA)이 개발하고 있는 STEP 핵융합 반응로 개념도. UKAEA 제공


세계 최고 성능의 고온 초전도 케이블 개발에도 성공했다. 최근 서울대·영국 원자력청 공동 연구팀이 개발한 3.6m 길이의 고온 초전도 케이블 시제품은 스위스 로잔공대 국제 공인 시험기관에서 91킬로암페어(kA)의 초고전류와 단위 미터당 100t에 달하는 전자기력을 견뎌냈다. 1300회 이상의 반복 실험에서도 성능 저하가 없었다. 서울대 관계자는 “서울대가 공식 참여하는 영국 원자력청의 핵융합 사업 ‘STEP’은 4인 가구 기준 20만 가구 이상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핵융합 발전 상용화 시기를 2040년대로 앞당기는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스틱스 MRC에 따르면 세계 초전도체 시장 규모는 2024년 69억7000만 달러(약 10조)에서 2030년까지 142억1000만 달러(약 21조)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양윤선 기자 s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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