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본 세 번 판각...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

김슬옹 2026. 1. 2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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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 기념, 충청북도 무형유산 제28호 보은 각자장 박영덕 선생

[김슬옹 기자]

 직접 판각한 조선시대 원이 엄마 한글 편지 판목으로 한지에 인쇄하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는 박영덕 각자장
ⓒ 김상석
2026년은 훈민정음 해례본(1446)을 펴낸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여 우리 문화유산의 원형을 복원하는 데 평생을 바친 장인을 만났다. 7일 아침, 충주 우리한글박물관 김상석 관장과 함께 충북 보은군 속리산 자락의 '운봉서각원'을 찾았다.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속리산로에 자리한 작은 집이었지만, 내부 작업실은 참으로 장대했다.

작업실에 들어서니 각자(刻字)에 대한 안내 자료가 눈에 들어왔다. 각자란 목재, 석재, 뼈 등의 재료에 글씨나 그림을 새기는 것으로, 현판·목판·화판 등을 통틀어 일컫는다. 오늘날에는 '서각'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리며, 전통 각자와 현대 서각으로 나뉘어 기법, 재료, 도구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각자장(刻字匠)은 대량 인출이 필요한 서적을 만들기 위해 목판의 글자나 세밀한 그림을 새기고, 동시에 책판의 관리와 수보(修補), 복원을 담당하는 전문 장인을 가리킨다.

각자장 안에서도 도각수와 제각수로 나뉘는데, 제각수는 보조 역할을 하고, 각수는 글자를 본격적으로 새기는 장인을 말한다. '각자장'이라는 명칭은 무형유산 제도가 생기면서 '장인 장(匠)' 자를 붙여 만들어졌다.

세 번의 훈민정음 판각

- 선생님께서 훈민정음 해례본 판각을 세 번이나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각각 어떤 작업이었는지요?

"첫 번째는 2014년 제39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출품작이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33판과 능화판(옛 책의 표지에 무늬를 장식하기 위해 만든 목판)을 산벚나무에 새겨 국가유산청장상을 수상했지요. 두 번째는 2016~2017년에 작업한 안동본이고요. 해례본 원본인 간송본이 최초로 발견된 곳이 경상북도 안동이라 이를 기념하기 위해 판목 새로 새겨 펴낸 것이지요. 세 번째는 2018년에 완성했는데, 2017년에 문화재청에서 만든 복원 정본을 기준으로 작업한 것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유일 원본인 간송본은 모두 66쪽 가운데 앞 네 쪽이 정본이 아니라서 문화재청이 복원 정본 제작을 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판목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 간송본 원본과 실제 판각하신 복각본의 차이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오옥진 선생님이 새기신 판본의 복사본을 참고하여 원본 간송본 복간본을 저본으로 새겼는데, 새겨놓고 보니 원본에 가장 가깝게 된 것이 세 번째 작품이었습니다."

운봉서각원에는 세 번째로 완성한 훈민정음 해례본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운봉서각원은 개인 작업실 수준을 넘어 서각 작품 전시장과 다름 없어 다양한 작품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 한글 관련 작품 외에도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느티나무에 새긴 작품(140×44cm) 등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 해례본에는 일부 한자의 네 귀퉁이에 사성을 나타내는 동그란 작은 점인 권점(권발, 돌림)과 구두점이 있는데, 이것도 직접 새기시는 건가요? 중국에서는 책을 1차 찍은 뒤 대나무로 만든 작은 도장을 찍기도 한다고 해서요.

"가장 힘든 작업이었지만 직접 새겼지요. 우리나라 판각 기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망치로 두들겨 새기는 '타각법'과 손으로 밀어서 새기는 '인각법'이지요. 해례본 원본은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저는 일반 글씨는 인각법으로 하고 구두점 같은 섬세한 원은 타각법으로 새겼습니다."

- 첫 번째 판각에 얼마나 걸리셨습니까?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약 1년 반 정도 걸렸습니다. 생계 문제 때문에 틈틈이 해야 했거든요. 안동본은 책 인출과 교정까지 4개월밖에 시간이 없어서 하루에 2~3시간밖에 못 자면서 작업했습니다. 그때 몸에 무리가 와서 갑상선 항진증까지 왔었어요."

실제 해례본 원본은 훈민정음 창제(1443년 음력 12월)와 반포(1446년 음력 9월 상순) 사이에 제작된 것은 분명하지만 연구와 집필 기간도 필요하므로 실제 판목 작업은 1445~1446년 전반기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박영덕 각자장과 해례본만의 순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필자, 김상석 충주 우리한글박물관장의 공통된 견해였다.

- 병까지 걸리실 정도였는데, 가장 힘드셨던 점은 무엇입니까?

"사실 작업할 때는 힘든 걸 몰라요. 집중이 되니까요.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가장 즐겁고 에너지가 넘치잖아요. 새기다 보면 훈민정음에 대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아, 이렇게 해서 우리 한글이 탄생했구나' 하면서 공부도 하고요."

목판인쇄술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싶어

- 이 분야에 입문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1988년 군대 제대 후 농사를 지으면서 송인선 선생님께 각자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취미 삼아 나무에 조각을 새기곤 했는데, 제 재능을 본 지인이 당대 이 분야에서 명성을 떨치던 동천서각의 송인선 선생을 소개해 주었지요. 3년 넘게 서각과 논밭을 오가며 기능을 익혔습니다. 1996년에는 운봉서각원을 설립했고요. 지금도 농사를 짓고 있는데, 주업과 부업이 완전히 바뀌었지요."

- 금속활자장 이수자가 되신 계기도 궁금합니다.

"2002년에 국가무형유산 제101호 금속활자장 오국진 선생님의 이수자가 되었습니다. 오국진 선생님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최초로 판각하신 오옥진 선생님의 동문이시지요. 그런 인연이 있어서인지 훈민정음 작업에 더 각별한 마음이 듭니다."

- 금속활자장 이수자이신데 목판 쪽으로 작업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금속활자도 결국 각자를 기본 바탕으로 깔아야 합니다. 활자 쪽과 목판 쪽은 같은 뿌리예요.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책판 복원 및 인출 사업을 주관하면서 엄청난 공부가 됐습니다. 책판 10종 40여 판을 복원하고, 14종 76책을 인출 및 장정했어요. 보물 제882호인 곤여전도 결판도 복원하고 인출했습니다.

전통예술도 열심히만 하면 남부럽지 않은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내가 짊어진 사명은 훗날 많은 사람이 따라 할 수 있도록 목판인쇄술을 체계적으로 기록해 나만의 기술서를 만드는 것입니다."

농사를 지으며 장인의 길을 걸어온 그에게서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묵묵한 헌신이 느껴진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가장 즐겁다"라는 그의 말처럼, 신명 나는 마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을 맞아, 우리 글자의 원형을 지키는 장인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
▲ 박영덕 각자장이 세번째로 직접 판각한 훈민정음 해례본 판목 
ⓒ 박영덕, 김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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