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머리였지만 결국 ‘외국인’…맞물리지 못한 ‘국적’의 벽[실패한 도킹①]
1년 8개월 만에 인력 유출 논란
NASA 출신 모두 떠난 이유 살펴야
지속 가능한 인재 발굴 가능

지난 2024년 5월 우주항공청(KASA)이 출범할 당시 많은 이들이 열광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NASA(미국 항공우주국) 출신 인재들이 합류했다는 소식에 대한민국도 곧 우주 강국으로 도약할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NASA의 기술력이라는 ‘우주선’이 한국의 행정 시스템이라는 ‘정거장’에 결합하는 역사적인 ‘도킹’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화려했던 ‘도킹’은 실패한 듯 보입니다. 대통령, 차관급 연봉에도 불구하고 NASA 출신 전문가들은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않고 떠났습니다.
그들이 떠났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그들을 떠나게 만든 이유입니다. 대한민국이 우주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어떤 이유로 조직을 떠나게 됐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데일리안>은 네 차례에 걸친 기획 보도를 통해 우주청 출범 이후 발생한 핵심 인력 이탈의 실태와 조직 문화의 괴리, 정주 여건의 한계 등을 짚어볼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진정한 ‘KASA 2.0’으로 나아가기 위한 해법을 모색합니다. <편집자 주>
“우주항공청 설립이 민간 주도의 우주산업 생태계 조성을 통해 우리나라를 본격적인 우주경제 강국으로 이끄는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2024년 5월 27일 우주청이 문을 열 당시 윤영빈 초대 청장은 첫 출근길에서 이와 같은 포부를 밝혔다.
그는 “개개인의 능력과 역량이 최대한 잘 발휘될 수 있도록 적시, 적소에 역할을 부여하고, 각자의 전문성이 확실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잘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1년 8개월가량 지난 지금 우주청은 각자의 전문성이 확실한 성과로 이어지고 있을까? 적어도 개개인의 능력과 역량이 최대한 잘 발휘되느냐는 질문에는 즉답하기 어렵다. 우주청을 대표했다고 볼 수 있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출신들이 임기 절반을 채우지 못하고 떠난 것만 보더라도 인재 활용 문제에서만큼은 좋은 평가를 주기 힘들다.
존 리 전(前) 우주항공임무본부장은 우주청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NASA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한 이력을 바탕으로 윤영빈 청장과 함께 우주청을 대표하는 전문가로서 많은 기대가 쏠렸다.
그가 가진 국제적 고위급 네트워크로 임무 지향적인 프로젝트 중심인 임무본부를 이끌어 갈 최고 적임자로 평가했다. 더불어 NASA와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1년 5개월. 그가 취임에서 사직까지 걸린 기간이다. 최소 3년 임기를 보장하고 2억5000만원에 달하는 대통령급 연봉으로 대우했지만, 그는 자신의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않고 떠났다.
지난해 12월 31일 또 다른 NASA 출신 김현대 전 항공혁신부문장도 우주청을 떠났다. 2024년 8월 입사한 그 역시 30년 넘게 NASA에서 일했다. NASA 존 글렌 리서치센터, 닐 암스트롱 비행 연구센터에서 항공 기술 개발을 담당했다. NASA 은퇴 후에는 국내 항공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며 우주청에 합류했다. 공교롭게도 존 리 본부장처럼 1년 5개월간 근무하고 우주청을 떠났다.
존 리 전 본부장과 김현대 전 부문장은 NASA 출신이라는 공통점 외 미국 시민권자라는 닮은 점이 있다. 이런 공통점으로 이들이 우주청을 떠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외국인 신분’에서 오는 한계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외부 인재 발탁이냐 내부 인재 양성이냐
미국 출신인 이들은 ‘외국 대리인 등록법(FARA)’ 적용을 받는다. FARA는 외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미국 시민에게 부여한 의무 중 하나다. 외국 정부나 조직, 개인을 위해 활동하는 미국인 또는 미국 단체는 미국 법무부에 등록하고 관계·활동·금전적 보상 내용을 주기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FARA 때문에 존 리 전 본부장과 김현대 전 부문장이 미국에 자신들의 활동을 보고해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당연히 국내 우주항공 관련 기술 유출 우려가 뒤따랐다.
물론 우주청은 “FARA에 등록하는 정보는 미국 법제도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활동을 위해 미국의 정부, 언론 관계자를 언제 어떤 목적으로 만났는지 알리는 것이 핵심”이라며 “기밀이 아니며 실제 등록되는 내용은 홈페이지(fara.gov)를 통해 누구나 볼 수 있다”고 반박했다. 기밀 유출 우려가 없다는 뜻이다.
우주청 해명에도 불구하고 두 NASA 출신 연구자들에게 FARA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됐을 거라는 추측이 이어졌다. 우주청이 뒤늦게 ‘비밀취급 인가증’ 제도를 도입해 외국인 직원의 정보 접근을 제한한 것도 이런 의심의 눈초리를 의식한 것이다.
FARA 논란에 일부 언론에서는 “국가 기밀이 걸린 자리에 외국 국적자를 앉히면서도 보안 문제를 사전에 정교하게 대비하지 못한 것은 치명적 실책”이라며 “대통령급 고연봉을 지급하면서도 인사 검증과 내부 적응에 실패한 결과, 오히려 향후 외국 전문가 영입에 대한 불신만 키우게 됐다”고 꼬집기도 했다.
연봉 등 처우 문제도 시작 배경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존 리 전 본부장은 연봉 2억5000만원을 받았다. 우리나라 대통령 연봉과 맞먹는다. 김현대 부문장 역시 직급은 2급 고위공무원단인데, 연봉은 차관급(약 1억5000만원)을 받았다. 두 사람 모두 국내 공무원 직제로는 파격적인 대우다.
다만, NASA와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연방 공무원 급여를 관장하는 미국 인사관리처(OPM)에 따르면 30년 NASA 근무 이력이면 연봉이 16~22만 달러(2억3000~3억2000만원) 정도다. 임금만으로 ‘파격적’ 대우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내부 직원들과의 조화에도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존 리 전 본부장은 우주청 조직원들과 어울리지 못해 ‘왕따’ 논란이 있었다. 물론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두 사람 모두 오랜 시간 미국에서 생활한 만큼 국내 조직 문화와 업무방식 등에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은 설득력을 얻는다.
우주항공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김 부문장이 일을 하는 데 있어 아래 직원들과의 호흡이 그렇게 매끄럽진 못했을 수도 있다”며 “아무래도 국내 출신 직원들과 미국 출신 부문장이다 보니 보이지 않는 인식 차이나 업무 스타일에서 삐걱거린 측면이 있지 않겠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14일 우주청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인력 유출 문제를 지적했다. 배 부총리는 “최근에 우주청이 인력 이탈로 떠들썩했다. NASA 출신 인력들이 해외로 다시 돌아가고 인력 이탈로 뉴스 기사도 나왔다”며 “인재들이 우주청에서, 한국에서 잘 연구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하는 환경 마련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배 부총리는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좋은 인재를 영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에 영입한 인재들이 우주청에서 잘 연구를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이에 윤 청장은 “(NASA 출신들이) 개인 사정상 사직을 하게 됐는데, 저희 구성원을 보면 외국에서 학위를 하고 거기서 경험을 많이 갖고 계신 분들이 상당수”라며 “이런 분들에게 역할을 기대하고, 앞으로 빈자리는 외국에서 많은 경험을 갖고 계신 분들을 많이 영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임기제 전문직 가운데 4급 이상은 (채용 후) 3년, 5급 이하는 5년 이후 재신임을 받게 돼 있다”고 설명하며 “많은 분이 자기가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고 계시고, 그래서 재신임을 받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텍사스식 자율 vs 사천식 관료…문화 충돌에 튕겨 나간 인재들[실패한 도킹②]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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