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거인’ 삼성, 화려한 부활...영업익 年 100조, 더 이상 꿈 아니다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6. 1. 2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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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모리 반도체 ‘갑’과 ‘을’이 바뀌었습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 얘기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빅테크 구매 담당 임원은 ‘슈퍼 갑’이었다. 지금은 180도 달라졌다. 전형적인 공급자 우위 시장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고객사와 장기 공급 계약을 하지 않으려 해 애간장을 태운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하루가 다르게 D램 값이 뛰어서다. 이 때문에 빅테크 측에서 “D램 확정 물량(commitment)이 필요하다”며 삼성전자를 찾아 통사정하는 진풍경도 펼쳐진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빅테크 구매 담당자가 분기 공급 물량을 확정 지으려 영업 프레젠테이션을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라고 말했다. 경기 평택 일대 비즈니스 호텔도 빈 방 찾기가 쉽지 않다. 물량 배정이나 라인 점검 때문에 빅테크 구매, 기술, 공정 담당자 체류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호텔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하루이틀 단기 숙박 수요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3~7일가량 체류하는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반도체 산업이 유례없는 ‘하이퍼 불(Hyper Bull·초강세장)’에 진입하면서 삼성전자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난해 4분기 매출·영업이익 모두 분기 기준 한국 기업 최고 기록을 새로 썼다. 인공지능(AI)발 구조적 변화에 따른 강세장으로 실적이 폭발적으로 개선됐다는 진단이다. 승부처인 HBM(고대역폭 메모리)에서도 SK하이닉스를 맹추격 중이다. 올해 메모리 시장 최대 격전지 HBM4에서 삼성전자가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지면 올해 연간 영업이익 100조원 돌파도 점쳐진다.

다만, 장밋빛 전망에 도취할 때가 아니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AI 인프라 투자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만큼 공급 부족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든다. ‘아픈 손가락’ 파운드리 부진과 D램 가격 급등에 따른 IT 기기 수요 둔화도 변수로 지목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2월 22일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내 첨단 복합 반도체 연구개발(R&D) 센터인 NRD-K 클린룸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부활 동력 1. 학습 → 추론

메모리 칩 저변 확대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잠정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22.7% 증가한 93조원, 영업이익은 208.2% 늘어난 20조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증권사 평균 전망치(매출 90조6016억원·영업이익 19조6457억원)를 웃도는 ‘깜짝 실적’이다. 매출·영업이익 모두 분기 기준 한국 기업 최고 기록이다. 2025년 한 해 영업이익은 33% 증가한 43조5300억원, 매출은 10.6% 증가한 332조77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연간 매출은 3년 만에 최대 기록을 다시 썼다.

부활의 첫 번째 동력은 ‘학습(training)’에서 ‘추론(inference)’으로 AI 수요 구조 변화다. 최근 AI는 ‘기술 실험 단계’를 넘어 ‘돈이 되는 서비스 인프라’로 변곡점을 맞았다는 진단이다. 대규모 언어모델이 일정 수준 성능 임계점에 도달하면서 AI는 학습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검색·광고·추천·고객 응대 등 기존 서비스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도구로 고도화했다. 경기 불확실성에 맞서 기업도 AI 학습에 대한 대규모 투자보다는 비용 절감과 효율 개선 효과를 즉각 기대할 수 있는 AI 활용에 집중했다. 검색·추천·광고·콜센터·에이전트 등에서 AI 추론 수요가 크게 늘었다. 그 결과, AI 추론은 효율성 개선을 위한 필수 지출로 성격이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이런 변화는 반도체 산업 속성도 바꿔놨다. AI 학습을 위한 칩 수요는 대규모 모델을 만들 때 집중적·일회성으로 발생했다. 이 때문에 학습 관련 수요가 AI 시장을 주도할 때는 모델 업데이트 주기를 따라 설비투자(CAPEX) 변동성이 컸다. 반면, 추론 관련 칩 수요는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낮다. 서비스가 운영되는 한 24시간 칩이 필요하다. 추론으로 AI 설비투자 무게 중심이 옮겨가자 반도체 칩 수요 변동성이 크게 낮아졌다는 진단이다.

무엇보다 메모리 칩 저변이 확대됐다. 학습을 위한 반도체 칩 수요가 AI 시장을 주도할 때는 HBM처럼 특정 고부가 제품에 수요가 집중됐다. AI 추론을 위해서는 서버 D램, 고용량 DDR5, 모바일 LPDDR 등이 필요해 수요 저변이 확대됐다. 특히, AI 추론은 메모리 접근 속도와 동시 처리 능력이 성능을 좌우한다. 대규모 추론 서비스에서는 한 서버가 동시에 수천 건의 요청을 처리하므로, 서버 D램과 고용량 DDR5를 통해 충분한 메모리 공간과 대역폭을 확보하지 않으면 지연(latency)이 급격히 늘어난다. HBM은 비용과 용량 제약으로 모든 추론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결국 범용 D램이 추론 인프라 기반이 된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PC·차량 등 ‘온디바이스 AI’ 확산으로 전력 효율과 저지연이 핵심인 모바일 LPDDR 수요도 급증했다.

이는 HBM 경쟁에서 상대적 열위에 놓여 있던 삼성전자에 우호적인 환경으로 분석된다. HBM 비중이 낮더라도 D램 제품 믹스(조합) 개선에 따른 평균판매가격(ASP) 반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서버 D램과 DDR5는 공정 난도가 높고 단위당 용량이 커 기존 DDR4나 저용량 모바일 D램보다 가격이 높다. AI 추론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가동률이 올라가자 빅테크 등 고객사는 물량 확보에 사활을 걸었고, 이는 삼성전자 가격 협상력 제고로 이어졌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 월 D램 생산능력 65만장(12인치 웨이퍼 투입량 기준) 가운데 77%가 범용 D램이다. HBM보다 가성비 좋은 GDDR7, LPDDR5X 등이 AI 서버에 채택되면서 주문이 쏟아졌다. 메모리 3사가 HBM 생산에 주력해 범용 D램 공급 병목이 심화한 덕도 봤다. 이런 요인이 맞물려 지난해 4분기 D램 평균 판매 가격은 50% 이상 뜀박질했다.

부활 동력 2. HBM 공정 재설계

HBM4 엔비디아 공급망 진입 기대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 대비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HBM 시장에서도 명예 회복을 벼른다. 시장에서는 올해 삼성전자의 글로벌 HBM 시장점유율이 30%대에 진입할 것이란 전망도 내놓는다.

올 상반기 삼성은 HBM3E 고객사를 다변화하는 한편, HBM4에서 엔비디아 등 빅테크 공급망에 안착하는 게 목표다. HBM은 적층 난도에 따라 1세대(HBM)-2세대(HBM2)-3세대(HBM2E)-4세대(HBM3)-5세대(HBM3E) 순으로 개발돼왔다. HBM4는 HBM3E 뒤를 잇는 6세대 제품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구글·AMD에 HBM3E 공급에 성공했다. 올해는 엔비디아와 구글에 차세대 HBM4 공급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최대 승부처는 엔비디아 HBM4 공급망이다. 엔비디아가 올 연말 내놓을 AI 칩 ‘베라루빈’에는 대당 HBM4 8개가 들어간다. 당초 HBM4 양산 시점은 올 1분기로 점쳐졌으나 최근엔 2분기 이후로 밀릴 수 있다는 시각이 많다. 엔비디아가 HBM4 요구 성능을 상향한 뒤 양산 전 검증 과정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이미 엔비디아에 HBM4 유상 샘플을 공급했으며 혹독한 기술 검증을 받는 단계로 파악된다. 일각에서는 엔비디아가 전송 속도 기준치를 더 높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는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보다 앞서 HBM4부터 1c(6세대·10나노급) 공정으로 ‘퀀텀점프’를 노린 덕분에 품질 테스트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한다. HBM4에 1c 공정 적용은 단순한 미세화가 아니라, D램 다이부터 적층과 전력·열 구조까지 제조 공정 전반을 재설계했다는 의미에 가깝다. 특히, HBM4처럼 AI 칩 처리 속도가 높아질수록 신호는 더 빨리 오가야 하고 이 과정에서 배선 저항과 전기적 간섭, 발열이 문제로 떠오른다. 1c 공정은 회로를 더 미세하게 만들어 신호가 이동해야 할 거리를 줄이고 불필요한 전기적 부담을 낮춰준다. 그 결과 신호가 더 또렷해지고 지연이 줄어 같은 속도에서도 전력 소모와 열 발생을 억제할 수 있다. 트렌드포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1c D램과 자체 파운드리 베이스 다이로 기술을 선점한 삼성이 가장 먼저 품질 테스트를 통과할 것”으로 봤다.

변수 1. ‘아픈 손가락’ 파운드리

최초 개발 GAA 자신감

‘아픈 손가락’ 삼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도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로부터 자율주행 칩을 잇따라 수주하면서 부활 신호탄을 쏠 수 있을지 산업계 이목이 쏠린다. 다만,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차세대 격전지 2나노 선단공정 양산에서 파운드리 세계 1위 대만 TSMC 대비 유의미한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 신중한 시선도 던진다.

반도체 업계와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삼성 비메모리 부문에서는 앞선 분기보다 적자 규모를 줄였다. 삼성 파운드리·시스템LSI사업부는 지난해 1분기, 2분기에 각각 2조원대 영업손실을 냈지만, 3분기와 4분기에는 적자를 8000억원 미만으로 줄였을 것으로 시장은 바라본다.

3㎚ 이하 초미세 공정은 파운드리 산업 차세대 격전지다. 삼성 파운드리가 자신감을 갖는 배경 중 하나가 3㎚ 공정에 세계 최초로 적용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이다. 미세 공정 난제 중 하나가 ‘터널링’이다. 전류가 지나다니는 트랜지스터 채널 길이가 너무 짧아지다 보니 의도치 않게 전원이 꺼진 상태에서도 누설 전류가 발생한다. GAA는 몇 세대 발전을 거쳐 초미세 공정의 신기술이 집약됐다. GAA는 전류가 지나다니는 게이트가 채널 4면을 둘러싼다. 4면에서 전류 흐름을 통제할 수 있으므로 전력 효율이 더욱 개선됐다. 삼성전자는 TSMC보다 앞서 3㎚ 공정부터 GAA를 적용했다. 삼성이 3㎚ 공정부터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2㎚부터 GAA를 적용하는 TSMC와 겨뤄볼 만하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삼성 파운드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엇갈린다. 반도체 업계에서 추정하는 삼성전자의 2㎚ 수율은 40~50% 수준이다. 지난해 초 30%대에 머무르던 수율을 크게 끌어올린 것이지만, 7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진 TSMC와 격차는 상당하다. 테슬라 등 저가 수주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TSMC 대비 상대적으로 취약한 파운드리 생태계도 아쉬운 대목이다.

변수 2. IT 제품 가격 상승

원가 ‘부메랑’ 될라

반도체 가격 상승이 시차를 두고 IT 제품 수요 둔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시선도 고개를 든다. DS와 DX 부문 등 삼성전자 주요 사업부 간 이해관계 조율이 난제로 떠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다.

올해 삼성 스마트폰 부문은 갤럭시 시리즈 흥행으로 전년 대비 소폭 개선이 예상되지만, TV·가전 사업은 엄동설한이다. 계절적 비수기와 중국 업체 저가 공세가 겹쳐 지난해 4분기 1000억원 안팎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메모리 가격 급등은 DS 부문에는 실적 개선 요인이지만, 스마트폰과 가전사업부에는 부품 원가 상승이라는 ‘부메랑’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도체 가격 상승이 완제품 사업에서는 수익성을 갉아먹는 구조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AI 인프라 증설 경쟁 이후 국면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AI 인프라 투자로 중장기 수요 확대가 예상되지만, 공급 부족이 완화되는 시점 이후에는 가격 상승 속도가 둔화할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사이클이나 빅테크 자금 조달 환경이 변할 경우, 메모리 수요 역시 빠르게 식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반도체 호황기에 확보한 현금흐름을 증설 경쟁에만 투입하기보다, 세트 사업 원가 구조 개선과 차별화 등에도 배분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삼성전자는 가정 내 모든 전자제품과 모바일 디바이스 등을 연결해 제어하는 AI 홈 경쟁력을 앞세워 수익성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4호 (2026.01.21~01.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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