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 손 떼라"…'마가' 모자 쓰고 反트럼프 시위 나선 까닭

배재성 2026. 1. 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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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에 반대하는 시위자가 17일(현지시간) '미국을 물러가게 하라'(Make America Go Away )라고 쓰인 모자를 쓰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시도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17일(현지시간) 덴마크 본토와 그린란드 전역에서 동시에 열렸다. 시위대는 트럼프의 정치 구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비틀어 “미국 물러가라”(Make America Go Away)라고 적힌 빨간 모자를 쓰고 거리로 나섰다.

AFP·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후 그린란드 수도 누크에서는 옌스 프레데리크 닐센 총리를 포함해 약 5000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이는 인구 2만 명이 채 안 되는 누크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참가자들은 그린란드 국기를 들고 미국 영사관까지 행진하며 그린란드어로 섬의 이름인 ‘칼랄리트누나트(KalaallitNunaat)’를 외쳤고, 원주민 이누이트족의 전통 노래를 부르며 자결권 존중을 요구했다.

그린란드 공무원 나야 홀툼은 “그린란드는 사고팔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우리의 고향”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17일 진행된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에 반대하는 시위. EPA=연합뉴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도 시청 광장에 시민 1만~2만 명이 모여 “그린란드는 판매용이 아니다”, “그린란드에서 손 떼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미국 대사관까지 행진하며 그린란드의 자치권과 주권 존중을 촉구했다.

시위 현장에는 ‘미국은 이미 ICE가 너무 많다’는 팻말도 등장했다. 최근 불법 체류자 단속으로 논란이 된 미 이민세관단속국(ICE)과 얼음(ice)이 많은 그린란드를 동시에 빗댄 풍자다.

수산네 크리스텐센은 NBC 인터뷰에서 “우리는 덴마크인이고, 그린란드인 역시 덴마크인”이라며 “그린란드를 지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집회는 오르후스·올보르·오덴세 등 덴마크 주요 도시에서도 이어졌다.

17일(현지시간) 옌스-프레데리크 닐센 그린란드 총리(눈 위에서 왼쪽)가 그린란드 수도 누크에서 미국의 그린란드 통제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이 같은 분노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발언과 관세 위협이 기름을 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가 진행되던 17일 밤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그린란드 매입에 반대하는 덴마크 등 유럽 8개국에 2월 1일부터 10% 관세를 부과하고, 6월 1일부터는 이를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누크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은 AP 인터뷰에서 “오늘이 최악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나빠졌다”고 말했다.

그린란드는 과거 덴마크의 식민지였으나 1979년 자치권을 획득해 외교·국방을 제외한 교육·보건·자원 관리를 자체적으로 결정하고 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린란드에 피투피크 우주기지를 건설해 현재까지 주둔 중이다. 이 기지는 러시아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조기 탐지하는 미군 핵심 시설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가 약 4400㎞로 미국 본토보다 훨씬 가깝다.

18일(현지시간) 그린란드 누크 공항에서 독일 연방군(분데스베어) 소속 군인들이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로 향하는 아이슬란드항공 여객기에 탑승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덴마크령 그린란드 인수를 압박하며 최대 25%의 관세 부과를 경고했고, 이에 그린란드 수도 누크에서는 수천 명이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편입 구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의 전략적 위치와 희토류·석유 등 풍부한 자원 매장량을 들어 “미국 안보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미국 내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로이터가 12~1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17%만이 그린란드 매입에 찬성했고, 퀴니피액대 조사에선 응답자의 86%가 군사력을 동원한 점령에 반대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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