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50년 만에 무죄... 눈물 멈출 수 없었다는 재판부 "반성, 사죄, 위로"
[선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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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일 오전 서울동부지방법원 형사11부(재판장 강민호 부장판사)가 일본거점 국내침투 간첩단(통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당한 강을성씨에게 재심 무죄를 선고한 뒤, 자녀들이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재심 무죄 선고는 1976년 사형집행 50년 만의 일이다. |
| ⓒ 선대식 |
19일 오전 서울동부지방법원 501호 법정. 강민호 재판장(형사11부)이 재심 무죄 판결을 선고한 뒤 소회를 밝혔다. 50년 전 억울한 사형집행으로 아버지를 잃은 맏딸 강진옥(65)씨가 일어서서 고개를 숙여 "감사합니다"를 연신 말했다.
일본거점 국내침투 간첩단(통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당한 고 강을성씨 재심 무죄 판결은 예상된 일이었다. 1974년 11월 국군방첩사령부 전신인 보안사령부가 이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강을성·김태열씨 사형 집행이 이뤄지는 등 모두 17명의 처벌로 이어졌는데, 불법 구금과 위법 수사로 이뤄진 조작 사건이었다. 검찰조차 지난해 10월 결심공판에서 무죄를 구형하며 유족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또한 ▲간첩단 우두머리로 지목된 진두현씨 ▲사형당한 김태열씨 ▲강을성씨와 공소사실 대부분을 공유하는 박기래씨 등은 최근 재심 무죄가 확정됐다.
이날 재판부도 강을성씨가 적법하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법 구금돼 위법한 수사를 받았고 임의성 없는 진술을 했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이후 조사에서도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된 상태에서 자백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강씨 진술의 증거능력을 모두 부인한 것이다. 그의 법원 진술이나 다른 공동피고인의 진술 증거 역시 같은 이유로 증거능력이 배척됐다. 결론은 무죄였다.
재판장의 통렬한 반성... "오류 범한 사법기관의 일원으로 사죄와 위로"
강민호 재판장은 무죄 선고 이후 재판을 바로 끝내지 않았다. 그는 "판결 선고와 관련해서 재판부가 판단하면서 사건을 보면서 느꼈던 부분들에 관해서 재심청구인 유족들에게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다"라고 했다. 판결문에 담지 않은 소회라고 부연한 뒤,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강 재판장은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지금, 저희 재판부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무겁습니다. 비록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았다고는 하나,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하고 너무 늦어버렸다는 점에서 깊은 무력감을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과거 사법부가 북한과의 극심한 이념적 대결이라는 시대 상황이나 국가의 안위라는 명분만을 앞세워 한 개인의 존엄과 인권을 지키는 데 너무나 무심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이념의 잣대가 진실의 눈을 가리고 군부가 지배하던 시절에도 사법부만큼은 인권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어야 했을 것 같으나, 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그 시절 국민들이 기대한 사법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의 심정으로 오늘의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기록을 검토하며 가슴 아픈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설령 당시의 공소사실을 백번 양보하여 모두 인정하다 하더라도 과연 국가가 한 인간의 생명을 영원히 박탈하는 사형이라는 극단적인 형벌을 선택했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고도 했다.
강 재판장은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사정이나 위법한 수사 등을 무시하면서 오히려 피고인에 대하여 돌이킬 수 없는 형을 선고한 것은 아닌지, 생명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이념적 도구로 삼았던 것은 아닌지,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과연 법원이 한 선택이 그것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라고 전했다.
"저희 재판부는 오늘 이 사건을 가슴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사건에서 국가권력이나 시대의 편견에 휩쓸려 한 개인의 억울함을 외면하고 있지 않은지 매 순간 경계하도록 하겠습니다. 유족 여러분, 긴 세월 동안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오셨던 그 고통에 위로는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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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일 오전 서울동부지방법원 형사11부(재판장 강민호 부장판사)가 일본거점 국내침투 간첩단(통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당한 강을성씨에게 재심 무죄를 선고한 뒤, 자녀들이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재심 무죄 선고는 1976년 사형집행 50년 만의 일이다. |
| ⓒ 선대식 |
강씨의 자녀들은 법정을 빠져나오며 어머니가 가장 많이 생각난다고 했다. 아버지는 1974년 10월, 나이 마흔에 보안사에 끌려간 뒤 군사재판을 통해 1976년 6월 사형이 확정됐고, 3개월 뒤 사형이 집행됐다. 면회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가족들은 누군가 전해준 유골을 받았을 뿐이다.
서른아홉의 어머니가 홀로 어린 다섯 남매를 키웠다. 이들의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남편을 책망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평생 '너희 아버지는 그런 사람(간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게 이들의 기억이다.
맏딸 강진옥씨는 '아버지가 사형 단두대에 섰을 때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온몸이 저릴 정도로 아팠다"면서 "그런데 과연 가능한 일일까 생각했는데, 검사가 (무죄를) 구형하고 재판장이 무죄를 확정해서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라고 했다. 강씨는 하늘에 있는 아버지 향해 외쳤다.
"아버지, 억울함 다 푸시고 더 좋은 세상에서 큰 일 하시기를 일심으로 기도드립니다."
[관련기사] 사형 50년 만에... 무죄 구형하고 고개 숙인 검사 (25. 10. 29 결심 공판) https://omn.kr/2fu6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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