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글징글하게 안 죽는다" 파킨슨·췌장암 앓는 엄마의 '죽을 복'
[송연정 기자]
"징글징글하게 안 죽는다. 죽을 복도 없지."
몇 번의 응급실행과 중환자실을 거친 뒤에도 살아남은 엄마가 딸에게 내뱉은 말이었다. 항의인지, 짜증인지 아니면 농담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이 짧은 말속에는 3년째 이어져 온 신문자 작가의 돌봄의 시간이 응축돼 있었다.
2023년 6월, 문자씨의 엄마 박순철 여사는 여든에 파킨슨병에 이어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아버지가 우울증 진단을 받은 지 3년 만이었다. 평생을 시골에서 농사 지으며 자신들은 못 배웠어도 네 자녀만큼은 대학까지 보내자 약속하며 살아온 부모의 삶. 그 노년은 '쉼'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버팀'으로 찾아왔다.
"엄마는 아프기 전부터 늘 '팔십까지만 살면 딱 좋겠다'고 말해왔어요. 죽을병에 걸려도 순리대로 갈 거라고요. 할머니가 병원에서 온몸에 주삿바늘을 달고 고통스럽게 돌아가시는 걸 보셨거든요. 그게 2주 정도였는데,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삶을 연장하는 일이 그렇게 힘들다는 걸 엄마가 느꼈나봐요. 저도 그때는 엄마가 원하는 대로,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그 다짐을 실행해야 하는 순간이 온 날, 문자씨는 결국 엄마의 삶을 연장시키는 선택을 했다. 20년 가까이 마음에 새겨왔던 생각은 '이대로 두면 어머니는 두 달 안에 돌아가신다'는 의사의 말 한마디 앞에서 무너졌다. 그렇게 엄마의 항암 치료가 시작됐고, 동시에 문자씨의 돌봄 생활도 시작됐다.
죽음만큼이나 필연적인 돌봄. 1월 10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그 과정을 담은 책 <엄마의 죽을 복>을 펴낸 신문자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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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자 작가 겸 문화예술기획자 |
| ⓒ 신문자 |
항암 치료가 시작되면서 엄마의 생활 반경은 급격히 좁아졌다. 치료를 받는 날과 그 이후 며칠은 몸을 가누기 어려웠고, 가장 가고 싶어 했던 자신의 집에는 병원이 멀다는 이유로 갈 수 없었다. 부작용으로 쓰러지거나 경련을 일으키는 날이 늘었고, 그때마다 응급실을 찾았다. 동시에 진행되는 파킨슨병 증상으로 몸은 점점 굳어갔으며 결국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없게 됐다. 그 시간만큼 엄마의 "나는 죽을 복이 없다"는 말도 잦아졌다.
"요즘 엄마 상태가 더 안 좋아졌어요. 많이 아파하실 때는 일주일 동안 한 끼도 못 드세요. 그러면 요양원 간호사 선생님들이 영양제 주사를 놓자고 하세요. 저는 엄마가 다시 깨어나서 살아가면, 또 그만큼의 고통을 겪게 될 걸 알거든요. 그래도 '아니요'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는 거예요. 결국 주사를 맞고, 다음 날 찾아가면 엄마가 '왜 또 이렇게 살려놨냐'고 하세요. 이제는 엄마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내가 죽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어쩌자고 또 엄마를 이렇게 붙잡았을까 싶더라고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스스로 질문한 때가 언제였더라. 숨을 할딱이는 엄마를 데리고 두 번째로 응급실을 향했을 때였나. 폐에 물이 찼으니 구멍을 뚫어서 물을 빼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따라 허리께 고무 튜브를 달고 나온 엄마를 마주했을 때였나. 고무 튜브를 달고 한결 숨쉬기 편안해하던 엄마가 통증으로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벌벌 떨 때였나.' - <엄마의 죽을 복> 중에서
돌봄은 늘 선택의 연속이었다. 더 살 수 있다는 말 앞에서 멈추지 못하고, 살려낸 뒤에는 그 선택을 의심하게 되는 시간. 처음 부모를 돌보는 딸에게는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덜 아픈 선택인지 알 수 있는 기준이 없었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덜 아플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는데, 제가 항상 잘하고 있는 건지, 최선을 다하는 게 맞는 건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5개월간 지출된 병원비만 4250만 원. 직장에는 수시로 양해를 구해야 했고, 문자씨의 모든 생활 패턴은 엄마의 몸 상태에 맞춰야 했다. 4남매 중 막내이자 유일한 미혼이었기에 아빠를 돌볼 때부터 자연스럽게 돌봄의 최전방에 서야 했고, 가족이 함께 짐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지칠 때면 문득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지고 있는 듯한 외로움이 찾아오기도 했다. 돌봄이란 그런 현실과 생각들을 다 포함하는 일이었다.
그 혼란과 고립 속에서 문자씨를 지탱한 건 엄마의 유머와 글쓰기였다. TV 속 노교수가 '나이 듦의 미학'을 설파하자 대뜸 "웃기고 있네, 늙어서 좋은 건 하나도 없어 이 양반아!"라고 호통을 치는 꼬장꼬장한 기백, 섬망으로 정신이 흐릿해지는 와중에도 비장한 얼굴로 "장독대 고추장 뚜껑은 꼭 비닐 씌워 닫아라"며 자식 입에 들어갈 반찬을 걱정하는 엉뚱한 모성. 죽음 앞에서도 기어이 농담을 던지고야 마는 이 모녀의 질긴 티키타카가 있었기에, 그는 엄마와의 기억을 글로 쓸 수 있었다.
"프랑스에 사시는 글쓰기 선생님이 계세요. 처음에는 4주 동안 책 한 권 필사하는 걸 하다가 그다음에 자유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 두 쪽에서 세 쪽 정도 글을 보내면 그걸 읽으시고 공감되는 부분들에는 파란 줄을 쳐 두고, 궁금한 게 생기면 '이건 어떤 부분을 말한 거예요?', '이거는 좀 더 듣고 싶어요. 얘기를 들려주세요' 이런 식의 의견들 달아주세요. 그럼 거기에 대해서 제가 다시 글을 쓰는 거예요. 그분을 실제로 만난 적은 없어요. 그냥 글만 왔다갔다 5년 동안 했고 지금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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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기 전, 고추장 만들 재료를 준비하던 박순철 여사 |
| ⓒ 신문자 |
"책을 준비하던 중에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갔어요. 제 책 소식을 알고는 한 친구가 '문자 어머니 편찮으시니까 그런 이야기겠네'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대뜸 '아, 가족 팔이 이제 그만해야지' 딱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어떤 사람한테는 이런 글이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은 거죠."
'가족 팔이', '불행 배틀'. 타인이 고통을 말하는 글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을 보며 문자씨 역시 흔들리는 순간이 있었다. 그럼에도 펜을 놓을 수는 없었다.
"막상 닥쳐보니 알겠더라고요. 사람은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순간이 있다는 걸요. 그렇게 털어내야만 견딜 수 있는 일들이 있으니까요.
부모님을 돌보고 글을 쓰면서 저도 돌봄이나 죽음에 관한 책을 정말 많이 읽었어요. 알츠하이머에 걸린 환자가 스스로 그 과정을 기록한 책, 엄마의 단식 존엄사를 지켜보며 '엄마가 떠나는 건 슬프지만 여전히 내 행복이 중요하다'고 솔직하게 고백한 대만 작가의 책, 그리고 수많은 에세이와 이론서들. 책에는 대부분 자기 얘기가 그냥 솔직하게 적혀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제가 용기를 얻고 마음이 움직이는 거예요, 좋은 쪽으로. 저와 완전히 똑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은 없었지만 돌봄 속에서 제가 느끼는 죄책감이나 이기적인 부분, 의문들이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준 거죠."
문자씨의 책이 나온 뒤 열린 북토크 자리에서도 그는 비슷한 장면을 마주했다.
"책을 그날 처음 받는 분들이 많아서 이야기가 잘 될까 걱정이 좀 됐어요. 그래서 그때는 한 명씩 돌아가면서 아무 데나 펴서 눈에 들어오는 문장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거든요. 그런데 다들 읽다가 막 우시는 거예요. 자기 얘기를 덧붙이는 분들도 계셨고요. 엄마와 죽음 그리고 돌봄은 보편적인 주제고 일이라는 걸 다시 느꼈어요."
돌봄은 죽음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마주하게 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에 대해 나눌 수 있는 장이나 대화는 죽음만큼 충분하지 않다. 문자씨가 막상 그 시간을 맞닥뜨렸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런 문자씨에게 글과 책은 돌봄에 대해 나눌 수 있는 창구였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시간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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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엄마의 죽을 복> |
| ⓒ 송연정 |
'어린 자식을 기르는 동안 엄마가 숱하게 맡았을 오줌 지린내를 이제는 자식들이 맡았다. 축 처진 가슴과 가느다란 다리, 근육이 빠져나가 흐물흐물해진 뱃살까지, 엄마의 벗은 몸을 보며 엄마의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을 헤아렸다. 명치께와 옆구리 두 곳에 연결된 관을 소독하며 엄마의 병과 치료 과정, 그로 인한 고통을 가늠했다. 엄마가 죽을 복이 없다고? 자식들이, 내가, 엄마의 죽음을 낱낱이, 충분히, 함께 경험하고 있는 바로 지금 여기에 엄마의 죽을 복이 있다. 그래서 엄마의 죽음 역시 나는 복스러운 죽음이라고 불러야겠다. 내 엄마의 죽을 복은 바로 여기 있다.' - <엄마의 죽을 복> 중에서
앞으로도 그는 자신만의 형태로, 엄마의 '죽을 복'을 위해 기꺼이 엄마의 곁을 지킬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https://brunch.co.kr/@e336e5c3ec7a449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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