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 아니면 돈 더 내라"는 루브르... 충격적 '배신'의 전말 [목수정의 바스티유 광장]
[목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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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월 12일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앞 모습. |
| ⓒ EPA/연합뉴스 |
부동의 관람객 순위 세계 1위를 자랑해 오던 루브르 박물관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입장료를 받아오면서 비판과 저항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이번에 단행한 비유럽권 방문객에 대한 차별적 인상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결정이다. 전적으로 반 공화주의적이고, 반 보편주의(Universalism)적인 정치적 작당에 가깝다. 루브르를 운영하는 주체인 직원들도 이러한 결정에 반발하며 파업으로 맞서고 있다.
새로운 요금제에 따르면 유럽인은 22유로(3만 7천 원, 26세 미만은 무료), 비유럽인은 32유로(약 5만 5천 원)를 내고 입장해야 한다. 이처럼 프랑스에서 국적과 관련한 차등 요금제를 적용한 최초의 사례가 발생하게 된 배경에는 라시다 다티(Rachida Dati) 문화부 장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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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문화부 장관 라시다 다티가 지난 14일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열린 주간 내각 회의 후 자리를 떠나며 웃고 있는 모습. |
| ⓒ 로이터/연합뉴스 |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공화당의 라시다 다티를 문화부 장관에 임명한 것은 안팎으로 많은 구설을 낳았던 정치적 도박이기도 했다. 마크롱은 교착상태에 빠진 국정 운영의 동력을 얻기 위해 공격적이고 저돌적인 야심가인 그녀를 끌어들여 공화당을 중심으로 하는 우파 진영을 흔들고, 자신의 지지 기반을 오른쪽으로 확장하려 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에 지명한 것과 비슷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노골적 시장주의자인 그녀가 문화 정책에 시장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자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문화부 장관에 임명되자마자, 루브르 박물관의 입장료를 30%(17유로에서 22유로로) 인상했다.
또한 지난 해, 노트르담 성당 재개관 때에도 유료화를 강력히 주장했으나, 성당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성당 측이 고수하면서 그녀의 주장은 보기 좋게 폐기된 바 있다. 프랑스인 세금으로 운영되는 문화유산을 왜 외국인들이 같은 값에 즐기냐는 식의 편협한 차별적 사고를 하는 그녀는 역설적이게도 모로코 아버지와 알제리 어머니를 둔 가난한 이민자 가정의 11명의 자녀 중 하나다.
헝가리 이민 2세이면서 이민자 차별에 앞장섰던 사르코지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그녀는, 이민자 퇴출 정책에서도 사르코지와 손발을 맞춰왔다.
현재 라시다 다티는 여러 가지 혐의(부패, 재산 신고 누락, 배임 등)로 수사를 받는 중이다. 지난해 12월, 자택과 문화부 집무실, 구청장으로 있던 파리 7구청까지 전격 압수수색 당하면서 일생일대의 위기에 몰린 상황이기도 하다. 위기 속에서 논란 많은 정책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두고, 일각에서는 우파 표심 확보와 더불어 '재정 확보'라는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마크롱은 이런 그녀를 '무죄추정의 원칙'을 내세우며 여전히 해임하지 않고 있다.
요금 차별 인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해 일어난 루브르 박물관 도난 사건이다. 2025년 10월, 루브르 박물관 내에서 약 1500억 원 상당의 왕실 보석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박물관의 보안 허점이 도마 위에 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 잘못도 없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차별적 요금 인상을 하면서, 추가 수입을 보안 시스템을 개편하는데 투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루브르는 비싼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매년 900만 명이 입장하는 박물관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가중되어 온 오버투어리즘으로 인해 건물과 시설이 낡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차별 요금제로 '보편주의'라는 가치가 파괴되는 사실에 대해선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루브르 박물관 노조는 이번에 결정된 차등 요금제를 단순히 가격의 문제가 아닌, "철학적·사회적·인도적 차원에서 충격적"이라고 지적하며, 여기에 저항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루브르,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직접적 전리품
루브르 박물관의 이중적 요금 정책이 이토록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이 아니라, "왕실의 사유물을 만민의 공유 자산으로 바꾼"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직접적인 열매이기 때문이다.
왕실의 예술 컬렉션 보관소로 쓰이고 있던 루브르는 1793년 이후, 130년 동안 만인에게 무료로 개방되면서 오늘의 박물관으로서의 명성을 이어 왔다. 그러던 것이 1922년에 이르러, 매주 일요일만 무료입장으로 변경되었고, 이를 매달 첫 번째 일요일만 무료로 변경한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사회당 정권인 프랑수아 미테랑 정부(1990)였다. 혁명의 정신은 해를 거듭할수록 퇴색되어 간 것이 사실이나, 외국인 관광객을 '공공 서비스의 무임승차자'인 양 여기며 차별 요금을 정당화하는 라시다 다티의 논리는, 프랑스 내에서도 충격적이고 파행적인 사고로 받아들여진다.
프랑스 공화국 문화 정책의 자부심이었던 이 공간을, 국적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비즈니스 모델'로 전락시킨 파격적인 결정의 이면에는 우파+극우파 진영의 결집을 노리는 라시다 다티 특유의 뻔뻔한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와중에 그녀는 3월에 있는 지자체장 선거에서 우파 진영 파리 시장 후보로 나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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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2일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닫힌 문 앞에 방문객들이 모여 있다. |
| ⓒ EPA/연합뉴스 |
지리학자 파트릭 퐁세도 <르몽드>(2025.12.7)에서 "문화 시설의 차등 요금제 선택은 거침없는 민족주의로의 회귀를 보여주는 증상이다"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드높였다. 그는 루브르의 차등 요금제가 국립공원의 외국인 입장료를 3배로 인상한 트럼프의 것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고 지적하며 "두 경우 모두 거침없는 민족주의의 거대한 귀환을 보여주는 증상들"이라고 현 상황을 분석한다.
문화전문지 <텔레라마>(2026.1.14)는 "이라크, 이집트, 터키 등에서 온 방문객들에게 더 많은 요금을 부과한다는 것은 역사적 모순이다. 루브르 고대 유물 가운데 가장 위대한 보물들이 바로 그들 나라에서 온 것"이라는 지적도 잊지 않는다.
궁지에 몰린 부도덕한 정치인과 지지 기반을 잃은 정권의 위험한 도박 앞에 프랑스가 수 세기 동안 쌓아온 보편적 가치마저 위협당하는 중이다. 권력자의 망동은 박물관법이 규정하는 '모든 대중에게 문화적 자산에 대한 공평한 접근권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음을 지목하고, 그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박물관 노동자들이다. 루브르를 왕족의 품에서 빼앗아 온 자들의 어깨에 또다시 같은 무게의 짐이 지워진다. 역사는 쉼 없이 같은 질문을 민중에게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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