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쿠팡의 미개

감춰 온 잘못 하나씩 드러나
비판에 귀를 열고 겸허해져야
지난 금요일 오후 2시26분 문자메시지가 하나 왔다. “[쿠팡]_구매이용권 안내드립니다.”
5만원 중 쿠팡 앱 이용권은 5000원뿐인 탓에 ‘무늬만 5만원’ ‘국민 우롱 보상안’ ‘악질 마케팅’ ‘끼워팔기 쿠폰’ 등으로 불린 그 이용권이다. 그렇게 욕을 먹고도 진행한 뚝심(?)이 기이했고, 그마저도 여러 제한이 덕지덕지 붙어 그만 실소했다.
여하튼 덕분에 아직 쿠팡 가입 상태임을 알았다. 앱을 삭제한 지 한참 지났지만 귀찮아서 미뤄왔던 탈퇴를 했다. 거래 정보가 있으면 기록이 5년간 보존된다는 문구는 여전히 찝찝했지만.
사실 나 같은 유령회원의 탈퇴는 별 의미가 없다. 애초에 책 외엔 온라인으로 뭘 잘 안 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독 쿠팡에는 손이 잘 안 갔는데, 그 속도가 내겐 부담이었다.
스포츠팀에 있을 때 스포츠 중계 때문에 쿠팡 와우멤버십에 가입된 기간이 있다. 한번은 8년 쓴 아이패드 케이스가 너덜너덜해져 쿠팡 주문을 했더니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도착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때 든 생각은 ‘빨라서 좋다’가 아니라 ‘왜 이렇게 빨리 보낸 거지?’였다.
께름칙함의 원인은 내 수용력을 넘어선 속도였다. 나라는 사람은 물건을 고를 때 오랜 시간 고민하는 편이고, 그 상품이 오길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한 인간형이란 걸 그때 깨달았다. 복권을 사고 일주일간 설레는 것처럼. 물론 그 빠른 속도가 타인(노동자)의 삶을 갈아 넣은 결과물인 데에도 반감이 있었다.
쿠팡은 속도를 혁신으로 포장해 왔지만 최근 쿠팡의 속도는 이상한 데가 많았다. 개인정보 3370만건이 무단 유출됐는데도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은 좀처럼 사과하지 않았다. 김 의장이 침묵할 때 어떤 것들은 정반대로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사건 직후 정보 ‘유출’을 ‘노출’로 안내했고, 개인정보 유출 직원이 중국인임을 강조해 혐중 정서에 기댄 책임을 축소하려는 모습을 보였으며, 정부를 패싱하고 피해를 축소한 자체 조사를 기습 발표했다. 성난 여론이 계속 들끓자 김 의장은 사건 29일 만에 ‘늑장 사과’했다.
쿠팡 논란은 각종 의혹으로 더 커지고 있다. 물류 자회사 쿠팡CFS가 블랙리스트 문건으로 노동자들의 재취업을 제한했다는 의혹, 물류 자회사 쿠팡CLS의 불법파견 의혹, 쿠팡이 최저가 판매로 발생한 손해를 납품업체에 전가했다는 갑질 의혹도 있다.
과로사 은폐 의혹은 특히 인상 깊다. 김 의장이 2020년 10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의 과로 실태를 축소하라고 지시한 정황이 언론 보도로 드러났다. 당시 쿠팡 한국법인 대표였던 김 의장은 숨진 노동자가 시간제라는 이유로 “그가 왜 열심히 일하겠나?”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게 하라” 등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장덕준(당시 27세)씨는 야간 업무 후 귀가한 뒤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근로복지공단 조사 결과 장씨는 숨지기 전 3개월간 매주 평균 58시간 이상 일했다. 장씨 역시 쿠팡이 자랑하는 속도의 최전선에 있던 노동자였다.
쿠팡은 “5년 전 해임된 전 임원의 왜곡된 주장”이라는 입장이다. 김 의장의 해당 발언 여부에 대해선 정확히 해명하기보단 메신저 흠집 내기에 열중인 모습이다.
소설가 김애란은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에서 ‘미개함’에 대해 이렇게 썼다. “얼마 전 ‘미개(未開)’라는 말이 문제 돼 그 뜻을 찾아봤다. ‘사회가 발전되지 않고 문화 수준이 낮은’이라는 뜻이 먼저 등장했지만 그 아래 ‘열리지 않은’이라는 일차적인 뜻도 눈에 띄었다. 앞으로 우리는 누군가 타인의 고통을 향해 ‘귀를 열지 않을’ 때, 그리고 ‘마음을 열지 않을’ 때 그 상황을 ‘미개’하다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어느 기업과 그 창업자가 각종 비판에 귀를 열지 않을 때, 그리고 노동자의 고통에 마음을 열지 않을 때, 그 상황을 미개하다고 불러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권중혁 경제부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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