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쿵후 로봇’에 투자한 삼성

한우덕 2026. 1. 19.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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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T800’. ‘쿵후 로봇’이라는 별명을 가진 중국 휴머노이드다. 되돌려 차기는 정확했고, 앞차기는 사람을 넘어트릴 만큼 강력했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사이보그 T800을 닮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제작사는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에 본부를 두고 있는 엔진AI. ‘항저우(杭州)에 유니트리가 있다면, 선전에는 엔진AI’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급부상하고 있는 로봇 회사다.

이 회사 주주 명단에 눈에 익은 이름 하나가 있다. 삼성벤처투자(57호)가 그것. 삼성 그룹의 창투 회사인 삼성벤처투자가 지분 5.67%를 갖고 있다. 5대 주주다. 인터넷 쇼핑몰로 이름 높은 징둥(京東)이 삼성의 뒤를 이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삼성벤처투자 57호는 삼성전자의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 조성된 펀드. 가전 공장 등에 적용될 피지컬AI 분야 벤처기업이 주요 투자 타깃이다. 삼성이 엔진AI를 비즈니스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이 회사의 액추에이터(관절 구동기)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투자가 중국 로봇 기술을 겨냥한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맹렬하게 돌진하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모습이다.

엔진AI의 휴머노이드 ‘T800’. 18만 위안(약 3800만원)에 팔리고 있다. [사진 엔진AI 홈페이지]

비즈니스 격언에 ‘좋은 비즈니스맨은 시장이 아닌 기업을 산다’라는 말이 있다. 시장에 나가 제품 팔 궁리를 하기보다는, 유력 현지 기업을 매입해 그 회사를 통해 시장에 진출한다는 뜻이다.

일본 TDK가 그랬다. 이 회사는 세계적인 배터리회사로 성장한 CATL의 설립 초기 때(2011년) 지분 투자를 단행한 이후 지금까지 공생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TDK는 CATL를 통해 중국 시장에서의 활동 영역을 넓혔고, CATL은 TDK를 앞세워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사례는 많다. 인텔은 베이징의 AI 반도체 전문회사인 호라이즌에 투자했고, 폭스바겐은 전기차 기술 확보를 위해 약 7억 달러를 투자해 샤오펑(小鵬) 지분 5%를 보유했다. 국내 기업 중에는 작년 8월 LG가 로봇 회사 애지봇에 전략적 투자를 진행했다.

중국 하이테크 굴기의 기세가 무섭다. 그 기세에 눌려 쫓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시장이 아닌 기업을 사라’는 전략이다. 중국의 유망 벤처기업에 투자해 성장 과실을 나누고, 함께 커야 한다. 미래 유니콘을 발굴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현대자동차의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가 같은 맥락의 성공 사례다. 삼성의 쿵후 로봇 투자는 그 길이 중국에서도 열려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우덕 차이나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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