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어머니의 품, 책은 나의 친구이자 스승이죠”

보통 출판사에서 책을 내면 초판을 소진하고 재판을 찍어야 수익이 나기 시작한다.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문출판사를 꾸려온 이수용(83) 대표는 “150여종의 책을 출판했지만 재판을 찍은 책은 2~3권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수문출판사는 산과 자연에 대한 책만 고집한다. 애초 잘 팔릴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 책들이니 당연하다 싶기는 하다. 그래도 그는 산과 책이 함께하는 인생을 여전히 꿈꾸고 있다. 그는 산은 “마음의 안식처, 마치 어머님 품 같다”고 했고, 책은 “영원한 친구이며 스승”이라고 했다. 그에게 ‘산의 책’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강원도 정선에서 자연과 함께하고 책을 만들며 살고 있는 이 대표가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던 지난 8일, 오랜 지인이자 동료인 건축가 김원 선생의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대표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세곡리다. 남쪽으로 헌인릉을 품고 있는 대모산 끝자락 마을이었다. 현재는 서울 강남구 세곡동으로 불리지만 당시는 여느 시골 마을과 다름없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산과 친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면서 “마을에서 바로 오르면 상수리나무 숲이 있고 여우들이 파헤친 무덤을 보며 무서워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중학교 때 서울로 유학 와서는 삼청공원과 인왕산으로 깡통을 들고 송충이를 잡으러 올라가고, 고등학교 때는 형제봉 백운대 등 북한산으로 진출했다. 지금은 백두대간을 벌써 두 번이나 종주한 ‘산악인’이나 다름없다. 그는 “나와 산은 항상 가까이 있어 가족 같고 어머니 품 안 같이 편하고 좋았다”고 했다.
그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6·25 전쟁 직후라 천막 학교로 차려진 초등학교 때였다. 그는 이름도 정확히 기억했다. “해병대를 갓 제대한 심정섭 선생님이 새로 오셨는데, 그분 덕분에 열등생에서 우등생이 됐어요. 그분이 ‘너는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고 하셔서 그때부터 선생님이 꿈이 된 겁니다.”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 사범학교를 목표로 했지만 실패했다. 대신 동국무선고등학교(광운인공지능고등학교의 전신)에 진학했다. 고학하던 시절이라 돈을 벌기 위해 다양한 일을 했다. 그때 인연을 맺은 곳이 당시 잘 나가던 출판사였던 신구문화사였다. 사무보조원으로 일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내내 신구문화사와 연을 이어갔다. 정식 직원이 된 뒤 출판 제작 부문을 맡았다. 그는 “밤낮없이 책 만들기에 정신이 없었다”면서 “첫 직장이었고,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 시절을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출판의 깊은 의미를 새겨준 사람은 신구문화사 이종익 대표였다. 그는 “부모보다 더 큰 영향을 끼쳤던 분”이라며 “출판의 사회적 공헌도는 종합대학에 버금갈 정도라고 강조했던 말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꿈은 ‘종합대학에 버금가는’ 출판을 통해 이루고 있는지 모른다.
한창 일할 때 그만 폐결핵에 걸렸다. 어쩔 수 없이 1976년 회사를 그만둔 이 대표는 2년여 투병 끝에 건강이 회복되자 가구점을 넘겨받는다. 당시 부동산 경기가 달아오르던 때라 가구점은 성업이었고 매장도 4개까지 늘리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보람은 느낄 수가 없었다. 그는 “돈은 의미가 없고, 교육에 대한 꿈은 여전해서” 직접 출판사를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80년대는 책을 내고 싶다고 출판사를 설립할 수 있던 시대가 아니었다. 이 대표는 “헌법상으로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보장돼 있었지만 출판사 하나 차리려 해도 등록 접수가 쉽지 않았다”면서 “책을 내고 싶으면 기존 출판사를 인수해야 했는데 집 한 채 값이었다”고 말했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88년이 되자 출판 등록이 자유화됐다. 이 대표는 그해 2월 15일 서울시청으로 달려가 출판사를 등록했다. 빼어난 글을 많이 소개하자는 취지로 출판사 이름은 ‘수문(秀文)’으로 지었다.

무슨 책을 낼지가 우선은 고민이었다. 처음엔 문화예술 분야의 책을 내려고 했지만 신구문화사 시절부터 각별한 사이였던 1세대 북디자이너 정병규 선생의 제안으로 산과 자연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초창기에 하인리히 하러의 ‘티베트에서의 7년’, 안데를 헤크마이어의 ‘알프스의 3대 북벽’ 등이 포함된 ‘세계산악명저선’ 시리즈가 잇따라 출간됐다. 1936년 33명이 백두산에 오른 기록을 담은 ‘아아 천지다’와 백두대간이라는 말이 채 알려지기도 전에 여성 산악인 남난희가 백두대간을 종주한 기록을 담은 ‘하얀 능선에 서면’도 잊지 못할 책들이다.
수많은 산악 명저를 펴냈지만 그의 인생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책은 따로 있다. 고교 시절 문고판으로 처음 접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숲속의 생활’이었다. 그는 “자연 속에서 단순하게 살며 내면의 자유를 찾는 소로의 철학은 제 평생의 이정표였다”고 했다. 번역가이자 소설가인 안정효를 3년 동안 설득해 2021년에 새로운 번역의 ‘월든 숲속의 생활’을 출간했다. 이 대표는 “책이 나오고 2년 뒤에 안정효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면서 “90년 초 그와 함께 소로가 생활하던 월든 호수를 여행했던 순간들이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산을 좋아하는 이 대표가 산과 자연이 파괴되는 일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우이령 관통 도로 저지와 굴업도 골프장 백지화를 이끌어 내는 과정에서 그의 이름은 빠지지 않았다. ‘동강 살리기 운동’은 그의 삶도 바꿔 놨다. 영월댐 건설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동강을 구하기 위해 나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했고, 특히 이 대표는 ‘동강 아리랑’ ‘동강 12경’ 등 동강 지역의 문화와 자연의 가치를 알리는 책들을 출간했다. 동강을 지켜낸 후, 그는 아예 서울 생활을 접고 동강으로 내려갔다. 수문출판사가 현재 정선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이유다. 이 대표는 출판사 대표로 책을 만들고 직접 농사도 짓는 한편, ‘정선신문’의 시니어 기자로 활동하며 동강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올해는 국민의 힘으로 지켜낸 동강을 후세에 온전히 물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동강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바삐 움직일 계획이다.
인터뷰 내내 이 대표는 “책을 만든다는 것은 수많은 직업 중에 최고라 생각하고 자랑스럽다”면서 “출판은 천직”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가구점에서 번 돈으로 자금 여력이 있을 때는 많은 책들을 냈지만 지금은 1년에 한두 권도 내기가 벅차다. 어린 시절 ‘선생님’의 꿈을 이루게 해준 출판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마지막까지 책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교육만이 사회를 변혁할 수 있고, 그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곳이 바로 학교와 출판·언론”이라며 “좋은 사회가 되려면 출판이 바로 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출판인이자 시민운동가이기도 하다. “급하게 밀어붙이는” 시민운동은 비판을 받거나 반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수록 ‘책의 힘’에 주목했다. “시민운동이 뜨거운 호소라면, 출판은 정화된 언어로 사회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조용한 혁명입니다. 책은 독자가 다시 생각하게 하고, 깊이 이해하게 하며, 결국 스스로 참여하게 만드는 위대한 힘을 가졌으니까요.”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男대학생 5명중 1명 “성욕충족·남 괴롭히려 딥페이크 제작”
- 마지막 콘서트 투어 임재범 “여러분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 ‘친구 아내와 불륜’…프레디 머큐리 숨겨진 딸, 투병 중 사망
- 전직 군의원, 장흥 야적장서 화물차 나뭇더미에 깔려 숨져
- 정부 ‘제2 푸바오’ 대여 추진에 동물복지단체 “철회하라”
- “뼛속도 이재명” 배우 이원종, 한국콘텐츠진흥원장 물망
- “내 모습, AI로 합성 하지마” 할리우드 스타, 본인을 ‘상표 등록’
- 세계 1위 유튜버 “햄버거 살 돈도 없어”…‘가난한 억만장자’ 논란
- 반도체 호황에 성과급 파티…삼성 반도체 ‘연봉 47%’, SK하닉 ‘1.4억’
- 하버드도 밀렸다…논문으로 본 대학 1위 차지한 ‘이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