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려 본심 숨긴 경상도 남자? 남성연대와 여성연대의 싸움
[김상목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장인 장모, 그리고 삼남매와 배우자까지 모여 가족 모임을 연다. 대가족은 손녀가 추는 케이팝 안무를 보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소주잔 기울이며 화기애애한 자리.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오래 가지 않는다. 대수롭지 않은 농담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점점 각자가 감추던 속내를 건들기 시작한다. 묵은 갈등이 꼬리를 물고 도미노 작용을 일으킨다. 상황을 수습하려 꺼낸 농담은 의도와 정반대로 더 복잡하게 만들고, 뒤엉킨 실타래는 해결될 기미가 없다.
연기를 넘어 연출에 도전
종종 한국 영화감독들은 그들과 호흡을 맞추는 배우가 연출에 도전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농담 섞인 걱정을 한다. 같이 일해보면 연출가로서의 시각이 탁월한 배우들이 적잖게 확인되기에, '밥그릇' 을 걱정해야 한다는 푸념이다. 배우와 감독을 겸업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가고, 처음엔 단순 화제로 그치던 걸 넘어 영화제에서 호평을 얻거나 극장 개봉해 만만찮은 성과를 거두는 사례가 축적되는 중이다.
|
|
| ▲ <병훈의 하루> 스틸 |
| ⓒ 필름다빈 |
그는 타인과 접촉하거나 피부에 원하지 않는 게 닿으면 박박 문지르듯 닦아야 성이 차는 '오염 강박'에 시달린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에비에이터> 실제 모델) 괴짜 갑부 하워드 휴즈가 말년엔 무균실에서 고립된 생활을 했던 것을 연상하면 된다. 이 때문에 병훈은 대인관계가 여간 힘들지 않다. 게다가 공황장애도 앓는 중이다. 집안에 은둔해야만 안전할 유형이다. 하지만 그렇게 평생 살 순 없다.
그는 용기를 내 치료 클리닉에 참여해 의사에게 숙제를 받는다. 사람이 붐비는 곳으로 나가 밝은색 옷을 사라는 과제다. 별것 아니라 생각하기 쉽지만, 주인공에겐 (관객이 화면에서 목격하듯) 그야말로 전쟁터와 다를 게 없다. 하필 명동 한복판이 그가 선택한 전장이니 난이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순박한 로맨스 연기부터 선 굵은 형사, 무시무시한 살인마까지 광대역 연기폭을 선보이던 배우가 감독 겸 주연을 소화한 단편은 마치 관객에게 아직 다 보여주지 못한 연기력 일부를 소개하려는 듯 모르고 보면 실제 강박 장애를 겪는 이처럼 실감 넘친다.
데뷔작의 성과
물론 이 영화는 배우의 연기 연습 영상이 아니다. 감독은 비장애인이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감각을 관객도 함께 들여다보길 기대한다. 처음엔 눈부신 연기에 힘입어 다소 기괴하게 보이던 주인공의 행태는 수많은 벽을 힘겹게 넘어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를 찾으려는 불굴의 도전으로 승화된다. 그렇다고 <병훈의 하루>가 변형된 영웅 서사를 노리진 않는다. 그저 오랜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 간신히 첫 문턱 통과했을 뿐이다. 아직 건너야 할 턱은 첩첩산중이다.
하지만 단편 분량에서 신인 감독은 욕심을 부리기보단, 사회적 환기와 함께 훈훈한 위로의 뒷맛을 전하는 데 힘을 기울인다. 병훈은 수많은 고비를 딛고 숙제를 완수함으로써 작지만 큰 한 걸음을 내디딘다. 그는 비로소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 없는 명동 한복판에서 아침에는 받기를 거부한 누군가와 통화를 할 여유를 얻었다.
이 통화를 통해 병훈은 잊고 있던 어떤 사실을 깨닫고, 마음의 문을 연다. 그리고 강박을 넘어 자주적 선택을 고심하며 인파 사이로 사라져 간다. 하지만 영화 속 병훈의 퇴장과 달리, 주인공은 화면 바깥의 관객과 만나러 가는 셈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은 이제 극장 밖 거리에서 마주칠 누군가를 좀 더 관용과 연민으로 응시할 테다.
|
|
| ▲ <직사각형, 삼각형>스틸 |
| ⓒ 필름다빈 |
처음엔 그저 다복한 대가족 모임이지만, 곧 구석구석 위기가 도사리고 있음을 관객은 간파한다. 장인과 장모는 구석에서 자리만 차지한 상태, 건축업에 종사하는 오빠는 가부장적 권위를 은연중에 내세운다. 막내 여동생은 쌓인 게 평소 많았는지 남편은 물론 가족 전체가 자신을 무시한다며 술김에 악다구니를 부린다. 제법 인지도 있는 연기자인 첫째 사위는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어보려다 연거푸 병살타를 날린다. '취중 진담'이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펼쳐지며 가족의 해묵은 감정이 차례로 분출한다.
맥락 없이 한풀이 성토대회로만 흘러간다면, 관객은 지켜보다 어느 순간부터 지칠 수밖에 없다. 난장판 싸움 구경도 초반이나 재미있지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면 넌더리가 날 판. 그러나 이 영화의 중반 이후 가족 분란은 흥미진진한 합종연횡을 형성한다.
처남과 매부들의 요즘 남자들은 시대에 적응하기 힘들다는 남성연대 vs. 아내 마음은 헤아릴 줄 모르는 남편을 성토하는 여성연대가 결성되고, 일시적 휴전 상황에서 두 동맹은 동병상련으로 의기투합한다. 물론 그렇게 딱 이분법으로 동맹이 끝나는 건 아니다. 서열에 따라 맨 아래에 놓인 막내 부부는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고, 쟁점에 따라 헤치고 모이면서 전선은 계속 이동한다.
|
|
| ▲ <직사각형, 삼각형>스틸 |
| ⓒ 필름다빈 |
여기에서 경제적·사회적 능력에 따라 발언권이 비례하는 세태도 자연스레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자본주의적 세태는 자연스레 잘 벌고 힘 있는 이와 근근이 사는 이의 서열로 구체화한다. 그에 대해 전통적인 연공서열을 침범 당한 이들의 견제와 성토도 반격으로 출몰한다. 가사 분담에 대한 요즘 기혼 남녀의 인식 차이도 뚜렷하게 제시된다. 결정적으로 누구도 겉으로만 공손할 뿐, 장인 장모는 그리 신경 쓸 생각이 없어 보인다. 되바라진 손녀 역시 붕 떠 있는 존재다.
관습적 드라마라면 한바탕 싸우다 적당히 봉합 혹은 화해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막장' 드라마 문법과 <직사각형, 삼각형>은 그 흐름이 중반까진 유사하게 보이지만, 후반부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영화는 점입가경 난장판을 펼치며 이를 풍자 무대로 활용, 관객 각자가 성찰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결말의 사건은
가족 내부의 사투를 일순간 정지하고 새로운 전장으로 끌고 간다. 이 연출적 판단은 허탈해 보이면서도 21세기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족'에게 남은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기는 장치로 해석된다. 제목 역시 막연한 첫 느낌과 달리 결말에 이르면 다양한 관점이 교차할 수밖에 없는 '현대 가족 이야기'로 정체성을 확립한다. 본인이 주연까지 맡던 전작과 달리 감독은 뒤로 물러나 확장된 이야기를 제어하는 데 집중한다. 거의 1인극 형식으로 선보인 <병훈의 하루>와 반대로 복수의 공동 주연을 가동해 연출력 한계를 실험한다.
|
|
| ▲ <직사각형, 삼각형>스틸 |
| ⓒ 필름다빈 |
한국 사회가 21세기에 경험하는 급진적 변화와 세대 간 이질감을 솜씨 좋게 가공해 두 번째 영화 주제로 삼은 감독의 야심은 장편으로 이어질 것이다. 단편이 연기 실증 성격이라면, 이번은 연출력 실험 의도가 두드러진다.
영화는 주인공 여러 명 중 누구 한 명을 크게 소외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끌어 나간다. 다만, 사회적 맥락과 가족 관계 연계, 구성원 내 소수자 문제를 특별하고 깊이 있게 조명하는 정도까지 도달하지는 못한다. 아마 감독 역시 두 번째 작업이 최선의 결과라 자위하지 않고, 득실을 평가하며 다음 작업을 도모할 테다. 이희준 '감독'이 몇 년 후 공개할 세 번째 작업이, 그가 배우로서 지금껏 도전한 다채로운 광폭 연기력처럼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기를 기대하며.
<작품정보>
Rectangle, Triangle
2025|한국|드라마
2026.01.21. 개봉|46분|15세 관람가
감독/각본 이희준
출연 정종준, 이재신, 김희정, 오용, 진선규, 정연, 오의식, 권소현, 이하랑
제작/제공 이희준
공동제공 BH엔터테인먼트
배급 필름다빈
|
|
| ▲ <직사각형, 삼각형> 포스터 |
| ⓒ 필름다빈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요리 싫어하는 엄마가 '조림핑 최강록'을 보고 한 다짐
- 집에서 쫓겨난 노인, 지역에서 쫓겨난 주민
- 이부진 사장이 '20억 원' 쾌척해도, 변화가 요원한 이유
- 날씨 더 따뜻, 킥보드도 줄었는데... 따릉이 이용량 15% 감소, 왜?
- [단독]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서울시장 선거 도전한다
- 외국인이 한국에서 덕질하기, 제일 힘든 게 뭐냐면요
- 여야 정당 대표 만난 이 대통령의 세 가지 요청
- "'두쫀쿠 맵'처럼 '차금법 지지 맵' 있었으면..."
- 필리핀 거대 쓰레기더미 붕괴 사망자 28명·실종자 8명
- "'시간 불평등 도시' 서울을 바꿀 해법, 세 가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