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칸 영화제 '최고의 영화', 한국 관객도 동의할까
[김상목 기자]
북아프리카 사막 어딘가, 수백 명이 모여 현란한 전자음악에 몸을 맡긴 채 레이브 파티가 한창이다. 황무지에 몰려든 '레이버(레이브 파티에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중년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언뜻 보인다. 그들은 남들처럼 춤과 음악에 탐닉하러 온 게 아니다. '루이스'와 '에스테반'은 다섯 달 전 연락이 끊긴 딸/누나를 찾아 이 먼 곳까지 흘러들어온 것이다.
부자는 공연장 주변을 헤매며 딸의 사진과 연락처가 담긴 전단을 배포한다. 하지만 아무리 수소문해도 그녀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애타는 가운데 그나마 희망을 품던 레이브 파티도 소요 사태를 명분으로 출동한 군 병력에 의해 해산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딸을 찾기 전에는 돌아갈 생각이 없던 아버지와 아들은 더 먼 오지에서 열린다는 레이브 파티 장소로 일단의 레이버들과 함께 몰래 빠져나간다. 이제 광대한 사막을 통과하는 위험천만한 여정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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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라트> 스틸 |
| ⓒ 찬란 |
실종된 딸을 찾아 유럽에서 지중해를 건너 몇 달째 북아프리카 사막을 헤매는 '가족 드라마'로 출발한 영화는 그 자체로 이미 '로드무비'가 된다. 아무리 샅샅이 뒤지며 수소문해도 실마리 단서도 드러나지 않는 딸을 찾는 과정은 하나의 훌륭한 '미스터리'다. 잠시도 안심할 수 없는 불안과 우발적 위험이 가득한 이동 경로는 웬만한 '스릴러'를 초월하는 긴장으로 관객을 내몬다. 이 모든 과정이 끝을 알 수 없는 '모험'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들의 험난한 여행을 둘러싼 불길한 소문과 일상성을 훌쩍 뛰어넘는 사건들은 현실을 벗어난 'SF' 영역에 슬며시 진입한다. 이렇게 줄줄 늘어놓으면 과연 작품의 성격이 제대로 이해될까?
하지만 놀랍게도 <시라트>는 이 모든 걸 한 편에 온전히 구현하는 괴력을 지닌 영화다. 게다가 심지어 음악 영화로 분류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광활'하다기보단, '광막'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끝없이 펼쳐진 모로코 사막을 질주하는 풍경은 사하라 종주 레이스를 연상케 하는 '익스트림 스포츠' 장르 영화로도 훌륭히 통할 법하다. 초현실적 판타지로 보일 공산이 크지만, 점점 작금의 세계를 은유하고 풍자하는 거대한 '우화'란 느낌이 짙어진다.
누군가는 영화 내내 개조된 트럭 캠핑카가 장애물을 돌파하며 험로를 달리는 풍경에서 <매드맥스> 부류의 디스토피아 장르를, 생사를 건 이해 불가의 여정과 고난을 생존물 명작들과 겹쳐 볼 테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전개와 사막이란 특수한 배경의 결합은 환상영화로 분류해도 무방하다. 수많은 영화 제목이 <시라트>를 보는 전후로 관객의 공력과 기호에 따라 연결될 법하다. 그렇게 이 기이한 결과물은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특정한 시각이나 해석에 얽매이지 않는 감각을 보는 이에게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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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라트> 스틸 |
| ⓒ 찬란 |
그러나 사막의 여정은 유럽 사회에 익숙한 아버지와 아들이 상상한 수준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일행이 염려한 대로 유럽 캠핑에나 통용될 부자의 밴은 도로는커녕,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야 하는 황무지에서 거듭 멈추고, 인적이라곤 찾을 길 없다. 베테랑 여행자인 동료들도 점점 순식간에 뒤바뀌는 상황 앞에 점점 무력화된다. 마치 사막이 그들을 일종의 미로로 빨아들인 것 같은 오싹한 기분이 들 정도다. 레이버들이 향하려던 비밀 파티 장소가 과연 실재하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불가사의한 여정은 영화 제목이 뜻하는, 아랍어로 '천국과 지옥을 잇는 다리'의 형상화 자체다. 세계 각국의 고유 신화에서 사후세계로 망자가 향하는 여정은 대개 극도로 위험하고 좁은 길이게 마련이다. 이 영화 속 인물들이 필사적으로 향하는 곳이 과연 고작 은밀한 레이브 파티장인지, 혹은 전쟁으로 파국을 향하는 속세를 초월하려는 몸부림인지 어느 순간부터 관객은 도무지 종잡을 길이 없다. 영화 속 일행 역시 어느새 신나는 파티, 소식 없는 자식을 찾는 목표에서 이탈해 생존을 걱정하며 그냥 '끝까지 간다' 심경으로 치닫는 듯하다.
처음엔 단순히 파티에 미친 기이한 무리로 보이던 일행은 주인공 가족이 그들과 가까워질수록 점점 독자적 색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클러버(클럽을 찾는 사람들)'와 까마득히 다르다. 오히려 1960년대 기성 사회를 벗어나 그들만의 공동체를 꾸리려던 히피 공동체 후예에 가깝다. 그들 다수가 나이 먹은 중년에 신체적 장애가 있고 기성 사회 시스템과 질서에 대한 강한 반감을 지녔다는 건 ,레이브 파티를 즐기는 젊은이들에 대한 고정관념(스테레오 타입)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대목이다.
이들은 대개 유럽 출신이지만, 안정된 복지국가의 삶을 포기하고 집시 같은 유랑민으로 떠도는 존재다. 반권위/반자본주의 시각이 뚜렷하고, 퉁명스럽긴 해도 딱한 부자의 사정을 헤아리며 도움을 주는 이들이다. 그들이 위험을 불사하며 오지의 레이브 파티를 찾는 건, 전쟁과 물욕에 찌든 채 물질적 풍요만 가득한 1세계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적 저항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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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라트> 스틸 |
| ⓒ 찬란 |
레이버 일행은 자신들을 옥죄는 현실 지형을 벗어나고 싶다. 그냥 내버려 두라고, 기득권의 탐욕에 의한 전쟁은 자신들과 무관하다며 틈새를 찾아 탈출하지만, 보이지 않는 악이 집요하게 뒤쫓듯 재앙은 끝없이 그들에게 밀려온다. 때로는 자연재해의 형태로, 때로는 일행이 그토록 거부하던 구체적 폭력으로 형상을 바꾸며 말이다. 세상이 망해가는 와중에, 그들만의 소박한 유토피아로 피신하려 해도 그냥 놔두지 않고 쫓아오니 물귀신이 따로 없다.
파멸과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은 마치 서양 제국주의 정복자들이 3세계 오지를 닥치는 대로 누비며 황금을 찾던 과거 역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 정복자들의 후예이지만, 과거 선조들의 욕망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닥친 운명이 진입을 거부하는 사막과 정글에 뛰어들다가 파멸하는 탐험대의 모습과 닮았다는 건 역사의 업보를 상기하는 동시에 불가해한 천재지변에 직면한 인물들의 실존과 방황을 극대화하는 장르 장치로도 기능한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노리는 과감한 작가적 욕망이 죽음을 불사한 탐험가의 그것과 판박이다.
광막한 사막은 신비한 아름다움과 잔혹한 죽음의 사신이란 양면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신적 존재가 마치 인간에겐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 가호 대신에 장난을 치듯 인물들은 그들의 선악 여부와는 상관없이 각자의 운명을 맞는다. <시라트>에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잔인하거나 인간에게 아무 흥미가 없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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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라트> 스틸 |
| ⓒ 찬란 |
과연 이 영화의 결말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걸까? 누군가에겐 불가사의한 잔혹극으로 찜찜한 생채기를 남길 수 있다. 혹자는 오만가지 수난을 겪으며 오히려 삶을 긍정하는 극한체험으로 이해할 법하다. 감독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단, 이 영화가 제목 그대로 관객 각자의 실존에 입각한 해석과 성찰의 '그릇', 혹은 '그물'로 작용하기를 원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먹먹하면서도 진한 감정을 새기게 하는 결말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의 태반이 겪고 있음에도 1세계 시민들은 정작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풍경이 멀리 있지 않음을 소리 없는 웅변으로 가득 채운다.
초현실적 풍경으로 가득한 <시라트>는, 곱씹기 시작하면 지독하게 현실 세상 곳곳의 전쟁과 비참을 제대로 그리는 작업이다. 그 세계에 속한 누구도 이를 외면하거나 벗어날 수 없음을 영화는 준엄하게 '신'의 시야로 드러낸다. 마술적 사실주의로 우리가 사는 세계의 어둠을 그리는 '우화'다.
<작품정보>
시라트
Sirât
2025|스페인|드라마, 미스터리, 모험, 스릴러
2026.01.21. 개봉|114분|15세 관람가
감독 올리베르 라셰
출연 세르히 로페스 외
수입 찬란
배급 (주)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공동제공 소지섭, 51k
2025 78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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