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탑 창 너머] ‘제대로’ 지연되는 공항에서

눈 오는 날, 비행기가 단 한 대도 지연되지 않는 공항. 언뜻 생각하면 모든 절차와 업무가 완벽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항공 안전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공항은 오히려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할 대상이다. 항공에서 지연은 실패가 아니라 위험을 통과시키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우리 팀 관제사 여럿은 2024년 11월의 악몽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직 겨울이라 부르기도 애매했던 어느 날, 인천공항에 하루 만에 16㎝의 눈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11월을 기준으로 수도권은 117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을 겪었다고 한다. 베테랑 관제사들도 믿지 못할 만큼 순식간에 인천공항은 새하얗게 뒤덮였고,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됐다. 그날만큼은 정시 운항이라는 말이 공항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각종 문의로 관제소의 전화기가 쉴 새 없이 울려댔고, 관제사는 각자의 근무석에서 헤드셋을 쓴 채 끊임없이 결정해야 했다.
모두가 폭설에 맞서 싸웠지만, 11월을 기준으로 예측된 시나리오에 맞춰 배치됐던 자원이 순식간에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제·방빙 작업 지연으로 출발 항공기가 게이트를 비워주지 못해 도착 항공기가 유도로에서 줄줄이 대기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제·방빙장을 배정해 달라는 요청이 물밀듯이 쏟아졌지만, 우리 앞에는 정답이 없는 문제가 놓여 있었다.
눈은 여러모로 달갑지 않은 존재다. 일단 쌓인 눈에 비행기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공항 표면의 제설 작업을 한다. 도로와 똑같다. 비행기 사이사이로 묘기 부리듯 제설 차량을 끼워 넣어야 한다. 눈은 땅 위에 내려앉으며 당연히 비행기 위에도 쌓인다. 눈이 내리는 순간부터 비행기의 이륙 준비 과정이 길어진다. 항공기의 날개에 얼음이 붙는 순간, 공기의 부드러운 흐름이 깨지고 난류가 생긴다. 이 상태에서는 이륙 자체가 위험해진다.
그래서 눈을 맞은 비행기는 이륙 전 동체와 날개에 붙은 얼음과 눈을 떼어내는 ‘제빙(de-icing)’ 작업을 거쳐야 하고, 다시 얼지 않도록 처리하는 ‘방빙(anti-icing)’ 작업까지 마쳐야 한다. ‘제·방빙’은 지연을 초래하는 귀찮은 절차가 아니라 얼음과 눈이라는 위험을 사전에 제거하는 안전장치다.
이 안전장치를 작동시키는 곳이 우리 팀이다. 수많은 출발 항공기의 제·방빙 순서를 정하고, 제·방빙장(de-icing pad)을 배정하고, 이동까지 담당한다. 그래서 눈이 오면 계류장 관제소의 인력이 평소의 2배 이상으로 보강된다. 내가 느끼기에 눈 오는 날의 업무 강도는 감히 숫자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다. 주파수로 밀려드는 교신이 관제사를 압도하고, 모니터는 잔뜩 꼬여버린 이동 경로만 표출한다.
게다가 인천의 제·방빙장은 사방에 흩어져 있고 운영 조건도 까다롭다. 항공기의 크기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제·방빙장이 다르고, 5개 조업사마다 엔진을 켠 채 제·방빙을 할 수 있는 기종과 불가능한 기종이 제각기다. 관제사는 이 모든 제한사항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실시간으로 복잡하게 얽힌 흐름을 풀어내야 한다.
눈에는 죄가 없다. 문제는 ‘눈이 오는 날에도 지연이 없어야 한다’는 기대다. 항공에서 지연은 무능이나 실패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정시율은 성과가 되고, 지연 시간은 변명해야 하는 숫자가 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지연은 안전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필연적인 비용이다.
제·방빙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고, 모든 판단은 효율보다는 생명을 우선순위에 둔 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비단 제·방빙뿐만이 아니다. 비행기의 성능 점검을 위한 지연, 강풍으로 인한 지연, 드론 출현으로 인한 지연도 수백 명의 승객을 확실한 안전의 영역으로 인도하는 시간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사람이 모든 위험을 사전에 완벽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기술이 발전하고 시스템이 정교해질수록 위험이 사라졌다고 착각하며 속도와 효율만을 평가해 왔다.
물론 공항은 지연을 최소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스템을 개선하고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그 노력이 안전의 마지노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준비되지 않은 서두름은 개선이 아니라 도박에 가깝기 때문이다.
‘왜 늦었는지’를 따져 묻기보다는 ‘늦지 않기 위해 무언가 빠뜨리지는 않았는지’를 물었으면 좋겠다. 눈 오는 날 공항 전광판에 보이는 지연이라는 글자가 분노가 아닌 안전을 위한 약속으로 읽히기를 바란다.

민이정 인천국제공항공사 관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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