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들어온 AI①] 유작부터 전쟁블록버스터까지…요즘 한국 영화가 AI 쓰는 법
관객들 목소리 크기에 따라 영화가 실시간 연출되기도
한국 상업영화 속에서 인공지능(AI)이 맡는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 고인의 유작을 완성하기 위해 몇 줄의 대사를 채우고, 극장 안 관객의 의견을 수용해 장면을 바꾸고, 전쟁 블록버스터까지 구현해낸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망내인: 얼굴 없는 살인자들'(이하 '망내인')은 냉혈한 사립 탐정 준경(김민규 분)과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는 의뢰인 소은(고(故) 강서하 분)이 인터넷 속 살인자를 쫓는 네트워크 추리 스릴러다. 소은 역을 맡은 강서하는 위암 투병 중이던 지난해 7월 세상을 떠나 이 작품은 그의 유작이 됐다.
이에 '망내인'은 고인이 끝내 하지 못한 후시 녹음을 AI로 채운 사실로도 주목을 받았다. 촬영은 마쳤지만 녹음하지 못한 대사가 남자, 제작진은 생전 강서하의 대사와 목소리 데이터를 학습한 음성 합성 AI를 활용해 미완성 분량을 채우는 방식으로 영화를 완성했다. 자칫 개봉이 어려울 수도 있었던 영화가 AI 덕분에 개봉할 수 있었다.
영화의 포맷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에도 AI가 쓰인다. CJ CGV와 제작사 아리아 스튜디오도 같은 달 AI 에이전트가 관객의 목소리와 감정에 반응해 서사가 바뀌는 '인터랙티브 시네마' 3편을 공개했다.
'인터랙티브 신비아파트: 극장귀의 속삭임'에 나오는 도깨비 신비가 스크린에서 "왼쪽이 좋냐, 오른쪽이 좋냐"고 묻고 관객이 각자 답을 외치면 선택에 따라 이후 장면이 달라진다. 악령 극장귀가 "나를 쫓아내고 싶으면 소리를 질러보라"고 하자 객석에서 터져 나온 "나가!"라는 외침이나 목소리에 따라 달라지는 에너지볼 크기 등은 AI 음성 인식과 실시간 연출이 결합된 포맷을 잘 보여준다.
'버추얼 심포니: 더 퍼스트 노트'는 2080년에서 왔다고 설정된 버추얼 아티스트 문보나가 스크린에 등장해 노래를 부르고 관객과 대화를 주고받는 공연형 인터랙티브 무비다. 문보나가 관객을 향해 말 걸고 포즈를 취하는 모습은 단순 상영을 넘어 극장형 버추얼 콘서트에 가깝다. '아파트: 리플리의 세계' 역시 관객의 선택과 발화를 실시간으로 반영해 일부 장면 구성이 달라지도록 설계한 스릴러다. 연출을 맡은 채수응 감독은 "캐릭터가 관객 데이터를 회차마다 재학습해 더 똑똑해지는 구조를 실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제목, 같은 상영관이지만 관객에 따라 조금씩 다른 영화가 상영되는 셈이다.

대기업도 AI 영화 프로젝트를 내놓고 있다. KT와 AI 영상 콘텐츠 스튜디오 MCA가 함께 만든 생성형 AI 옴니버스 영화 '코드: G 주목의 시작'은 다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돼 12월 27일 CGV 전국 극장에서 개봉했다.
이 가운데 MCA가 제작한 전쟁 블록버스터 '데이 원'은 제대 일주일 전 마지막 휴가를 나온 장갑차부대 소대장이 미사일 공격으로 순식간에 전쟁터가 된 서울 도심에서 전투를 벌이는 이야기를 그린다. 소대장과 부대원들의 동선과 감정 연기는 실제 배우의 연기를 기반으로 하지만 수십 대 장갑차와 전투 차량이 도심을 가로지르고, 건물이 무너지고, 폭발과 연기가 도시를 뒤덮는 대규모 전쟁 시퀀스 상당수는 생성형 AI 영상 기술로 구현됐다. MCA는 "AI 영상 기술을 통해 기존 예산과 일정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전쟁 장면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어냈다"며 "스타와 AI 융합이 만들어내는 파급력을 기반으로 차세대 영상 패러다임을 선도하겠다"고 밝혔다.
'코드: G 주목의 시작'에는 이 밖에도 김주신 감독의 '프라임 패턴: 디에코', 김영기 감독·이선빈 주연 '기억관리국'와 'DMZ', '오더 인 카오스'까지 다섯 편이 묶여 상영된다. SF, 판타지, 미스터리, 전쟁물 등 지금까지 AI 영상 기술이 주로 시험돼 온 장르를 한데 모아 “생성형 AI가 구현할 수 있는 영화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옴니버스다.
앞선 사례를 포함해 국내 극장가에는 AI를 전면에 내세운 사례들이 하나둘 쌓이고 있다. 2024년 12월에는 전체 장면을 AI로 생성한 단편영화 'M호텔'이 국내 최초 AI 영화로 CGV에서 단독 개봉했다. 2025년 4월에는 OTT 웨이브가 해외 AI 영화제 수상작들을 모아 '더 프롬프트: 넥스트 드라마' 특별전을 열어 AI 단편영화들을 OTT에서 정식 유통하는 실험에도 나섰다.
2025년 10월에는 국내 최초 AI 판타지 장편영화 '중간계'도 개봉했다. 이 영화는 배우가 등장하는 실사 촬영본 위에 AI로 생성한 크리처와 특수효과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실제 배우가 연기한 장면을 기본으로 하되 대규모 군중, 몬스터, 마법 이펙트 등 판타지 영화 특유의 숏들을 영상 생성 AI 기반 VFX로 채워 넣는 구조다.
이처럼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영화에서 AI는 유작의 빈칸을 메우는 보조 수단이자, 관객의 목소리를 받아 서사를 바꾸는 극장 장치이면서, 배우 없이 전쟁과 판타지 세계를 구현하는 제작 엔진까지 여러 방면으로 스며들고 있다. 더 이상 AI를 쓰느냐 마느냐가 관건이라기보다 각 작품이 AI를 어디에, 어느 정도까지, 어떤 책임과 기준 아래 사용하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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