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대신 ‘곁’으로…장병의 시간을 함께 건너는 군종목사
해역방어사령부 군목
이슬기 대위

그가 군종목사(군목)의 길을 떠올리게 된 것은 2021년 무렵이었다. 기존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하던 그는 담임목회자의 권유를 계기로 ‘군’이라는 낯선 선택지와 마주했다. 과거 군종병으로 복무했던 경험을 들려주며 “장병들과 함께 기도했던 시간이 가장 보람 있었다”고 말하던 담임목회자의 이야기는 그의 마음에 오래 남았다. 감리교신학대를 졸업하고 2020년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중부연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이후 상담 사역 현장을 거쳐 군종목사의 길을 결심했다. ‘기감 최초 여성 군목’인 이슬기(34) 대위가 그 주인공이다.
지금 그를 부르는 이름은 더 단순하다. 고민이 있을 때 잠시 들러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 사람. 이 목사는 군이라는 공간에서 설교보다 먼저 곁에 서는 방식으로 장병들의 시간을 함께 건너고 있다. 지난 8일 인천 해역방어사령부 해군인천교회에서 이 목사를 만났다.
2022년 임관한 이 목사는 현재 해군 인천해역방어사령부에서 근무 중이다. 군 복무 4년 차에 접어든 그는 군종장교로서 예배와 설교는 물론 장병 인성교육과 상담, 정서적·신앙적 돌봄까지 폭넓은 역할을 맡고 있다. 그의 하루는 예배 준비와 더불어 장병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으로 촘촘히 채워진다. 그는 “군목은 군교회에서의 목회사역뿐 아니라 부대 내에서 장교로서의 역할도 함께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의 사역은 예배당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도서기지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을 찾아 위문하고, 전투체육 시간에는 장병들과 함께 마라톤 대회를 목표로 훈련한다. 지난해에는 지역에서 열린 하프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했다. 부대 행사에서는 노래로 무대에 서고, 교회에서는 ‘예수님 생일카페’ 같은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자연스럽게 장병들과 접점을 넓힌다.
이 목사는 “각을 잡고 상담하는 자리를 만들기보다 자연스러운 만남 속에서 마음이 열리는 경우가 많다”며 “이 과정에서 ‘사역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구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장병들의 노고와 책임감이야말로 이곳의 지도력과 헌신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교회의 문턱을 낮추는 데에도 공을 들인다. 군에서는 종교 활동이 자발적 참여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고, 밴드 연습을 핑계로 들르는 장병들도 있다. 그렇게 쌓인 시간이 신뢰로 이어지고, 상담으로 연결된다.
군이라는 공간은 이 목사에게 ‘젊은 세대가 가장 밀도 있게 살아가는 현장’이다. 낯설고 통제된 환경이지만, 동시에 장병들이 삶과 진로, 관계에 대해 가장 깊이 고민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는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그 질문의 시간을 함께 버티고 건너는 데 집중한다. “군 생활이 누군가에게는 막연히 견뎌야 할 시간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저는 그 시간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장병들이 가장 자주 꺼내는 이야기는 진로와 인간관계, 군 복무 적응에 대한 고민이다. 때로는 신앙의 질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드셨나요’ ‘악은 왜 존재하나요’와 같은 질문도 적지 않다. 이 목사는 그럴 때마다 함께 말씀을 찾아보고, 독서 모임을 열어 토론을 이어간다.
군 조직과 교단 제도 안에서 여성 목회자로 서는 일은 도전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목사는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보다는 맡겨진 역할에 집중해 왔다. 그는 “어느 집단이든 적응은 필요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더 부담을 느끼기보다는 책임을 다하는 데 집중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군은 오히려 이 목사의 신앙을 단단하게 만든 공간이기도 하다. 장병들의 질문 앞에서 그는 더 깊이 고민하고, 더 많이 읽게 됐다. 전역한 장병들과 안부를 주고받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감사가 쌓인다. “같이 있어야만 동행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멀리 있어도 서로 기억하고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사역 가운데 마음이 흔들릴 때 붙들어 온 기준도 있다. 이 목사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는 말씀을 자주 떠올린다고 했다. 그는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는 순간이 있어도, 결국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군목은 군인이자 목회자라는 이중의 정체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 목사는 두 역할이 충돌하기보다 서로 맞닿아 있다고 본다. 군인으로서 장병들의 정신전력 강화에 기여하는 일과 목회자로서 한 사람의 삶을 돌보는 일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장병들이 군 생활을 ‘의미를 찾기 어려운 시간’으로만 여기지 않고, 그 안에서 의미와 방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며 “그 시간이 각자의 인생에서 건강한 토대가 되도록 늘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더 미션에 접속하세요! 어제보다 좋은 오늘이 열립니다 [더미션 바로가기]
- “예수 그립지만 교회는 두려운 청년 위해… 장벽 허물었죠”
- 초등교 공사판 되자… 이웃 교회가 문을 열었다
- 신입생 유치 사활건 신학대… 자유 전공·실무형 교육·AI 유료 계정 ‘손짓’
- “골목 버거집 주방은 목양실”… 몽골유학생 사역이 익는다
- “구름 저 너머에 하나님이 계실 것 같아요”
- “140년 건너 살아난 조선 선교사들 뜨거운 청춘 이야기 보여줄 것”
- 화요일 교회 가면 아이들에 밥 퍼주는 심야식당이 있다
- 월세 100만원 시대… 교회 학사관, 주거 취약 청년 품는다
- 셀린 송 감독 “‘기생충’ 덕분에 한국적 영화 전세계에 받아들여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