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혹평 받았음에도 대성공... 이 영화의 숨겨진 교훈
"우리에게는 Planet B(제2의 지구)가 없기에, Plan B(플랜 B)또한 없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유명한 표어 중 하나입니다. 끊임없이 생산하고 끊임없이 성장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떤 플랜 A를 선택해야 할까요? 유일하고 유한한 지구를 함께 살아가는 행성으로 만들기 위한 지구를 위한 플랜 A를 제안합니다. <기자말>
[그린피스 신민주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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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대홍수> 스틸컷 |
| ⓒ 넷플릭스 |
리뷰 사이트 '왓챠피디아' 기준 별점 1점대임에도 72개국에서 시청자 수 1위를 차지한 신기한 영화가 있다. 바로 <대홍수>. 영화 속 홍수는 소행성 충돌로 남극 빙하가 녹아 사라지고, 이에 따라 급격히 해수면이 상승하며 발생한다. 주인공이자 UN 산하 연구원인 구안나는 차오르는 물속에서 아이와 함께 살아남기 위해 아파트 옥상으로 향한다. 다소 과학적 설득력이 떨어지는 장면이 많지만, 영화는 여기까지 흔한 재난 영화의 플롯을 충실히 이행한다.
모성이 없으면 신인류가 될 수 없을까?
마침내 구안나가 아파트 옥상에 도달했을 때 영화의 장르가 SF로 전환된다. 구안나의 아이인 자인이 '이모션 엔진'으로 만들어진 신인류 개발의 실험체였다는 반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인류의 절멸 위기 속에 구안나는 자인이를 반납하여 신인류 계획을 추진할지 갈등한다. 결국 구안나는 자인이를 요원들에게 반납하고, 자인이는 사망과 가까운 형태로 '회수'된다.
지구 탈출에 성공한 구안나는 우주선에서 이미 회수된 아이의 '이모션 엔진'에 대응할 엄마의 정체성(모성)을 가진 이모션 엔진을 만들기 위한 시뮬레이션 실험을 시작한다. 실험은 실제 지구의 대홍수 상황을 가상 현실 배경으로 채택한다. 만일 시뮬레이션 속 구안나가 자인이를 버리는 선택을 한다면 인류 멸망이, 정반대로 되찾는 선택을 한다면 신인류 개발이 성공할 것이다.
기후재난과 알고리즘 개발, 신인류와 모성 신화 등 수많은 것들을 짧은 상영시간에 담다 보니 대홍수의 플롯에서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특히 영화가 왜 이렇게까지 모성에 집착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모성을 가진 엄마가 아니면 신인류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인류의 멸종 위기 속에 실험체인 자인이를 반납한 구안나의 선택이 비판받아야 마땅한지 영화는 설득력 있게 다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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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대홍수> 스틸컷 |
| ⓒ 넷플릭스 |
2022년에 개봉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클라이맥스에 나온 대사가 있다. "제발, 다정하게 대하세요. 특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 말이에요." 모두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을 때, 가장 약해 보이는 남편 캐릭터 '웨이먼드'가 한 말이다.나는 이 대사 하나 때문에 이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영화와 문학작품에서 극한의 위기를 다루어내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타인을 짓밟는 등장인물을 통해 인간의 잔혹성을 강조하는 것, 서로를 도와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최근에는 전자의 방식이 후자보다 현실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듯하다. 이는 서로의 고통에 점점 무관심해지고, 각자도생이 자연스러워진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과도 연결점이 있을 것이다. 살기 어려워진 만큼, 희망을 말하는 것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을 비관하는 것을 넘어 무엇인가를 바꾸고 싶다면, 후자가 전하려는,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예측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 중, 문턱까지 차오른 문제는 기후위기일 것이다. 가장 똑똑한 인간도, 최첨단 기술도 지구 온난화가 얼마나 빨리 세상을 초토화할 것인지,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섬 지대 사람들이 고립되고, 살 수 없는 땅이 많아지며, 식량 위기와 전염병이 창궐하는 등 예상할 수 있는 몇 가지 시나리오는 일어날 수 있는 일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누군가의 안방에 물이 차오르고, 평생 살아온 공동체가 파괴되는 일은 그 누구도 비극의 정도를 측정할 수 없다. 기후 시스템 자체의 급격한 변화인 기후 임계점을 넘게 된다면, 영화 <대홍수>에 나온 규모의 재앙은 꼭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극단적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는 <대홍수> 속 구안나처럼 기후위기 시대 속 새로운 인간으로 탄생하기 위한 과정을 밟아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구안나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눈앞에 놓인 모든 이들의 어려움을 무시하지 않고 도왔을 때 비로소 아이를 되찾는 일에 성공한 것처럼, 위기는 '나'와 '내 가족'과 같은 좁은 경계에서만 허용되는 마음을 타인의 고통을 돌보는 마음으로 확장할 수 있어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황폐해진 지구에 다시 돌아가 삶을 꾸려나가야 하는 신인류 구안나에게 필요한 건 혈연적인 모성의 위대함이 아닌 더 넓은 범위의 다정함인 공존의 감각이다. 그리고 그것을 배우는데 성공했기에 구안나는 기후재난의 시대 속에서 신인류가 될 수 있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영화를 해석할 때,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것들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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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강남대로에서 열린 기후위기 대응 촉구 대규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9.7. |
| ⓒ 연합뉴스 |
2031년 이후의 국가 탄소 감축 방안을 결정하는 일, 그리고 시민의 목소리가 실효적으로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짜는 일은 미래세대에 대한 다정함과 소외된 지역민에 대한 다정함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될 6월에는 지방선거가 진행될 예정이다. 동네의 살림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는지 정하는 선거이기에, 기후위기를 어떻게 동네에서 민주적으로 다루어낼 것인지도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의 해결책을 찾는 과정은 나와 내 가족이라는 좁은 경계를 넘어 국경과 세대, 성별과 직업을 넘어 안전망을 모두에게까지 펼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이만 번의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이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후문제의 수많은 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할 기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행운이다. 나라는 좁은 세계를 깨고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결정을 신년에 우리가 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다정함만이 서로를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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