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의 꿈, 희망의 씨앗을 말라위에 심다

2026. 1. 15.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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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온 소울 하비스트 운동
13일(현지시간) 국제사랑의봉사단 단원들과 현지인들이 말라위 수도 릴롱궤 근교의 50에이커에 들어설 희년추수농장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국제사랑의봉사단 제공


아프리카에서 진료를 하다 보면 난감한 경우가 많다. 한번은 우간다 쿠미에서 의료 캠프를 진행하다가 마음이 울컥해진 적이 있었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더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증을 호소했고 대부분의 흔한 증상을 전부 나열했다. 두통 요통 신경통 생리통 관절염 만성복통 속쓰림 어지럼증….

어머니가 떠올랐다. 필자가 일곱 살 때였던가. 어머니 손을 잡고 광주광역시 외곽의 한 병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 의사가 어떻게 오셨냐고 묻자 어머니는 ‘안 아픈 데가 없어요’라며 10여 가지 증상과 고통을 토로하셨다. 가난과 압박감, 가정 폭력을 견뎌오신 어머니의 고통이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삼키며 어머니를 바라본 적이 있었는데 아프리카 고통의 현실이 그 장면과 겹치면서 진료 도중 눈을 감고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였으나 빛이신 주님을 모르는 영적 어둠과 왜곡된 관습, 고통스러운 역사적 현실과 결핍의 무게에 눌려 선택의 여지가 극도로 줄어든 한 여인이었다.

십자가 복음과 희망의 씨앗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굶주림을 경험하는 인구는 전 세계 10억명이 넘는다. 이들은 궁핍과 무지와 무기력함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선택의 여지 없이 수백 년, 수십 년을 살아왔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십자가 복음이요 다른 하나는 희망의 씨앗이다.

누구나 땅이 생기면 꿈이 생긴다. 그래서 원주인에게 땅을 돌려주어야 한다. 그 씨앗을 심기 위해 사랑의봉사단이 시작한 프로젝트가 바로 희년추수마을(Jubilee Harvest Village)이다. 레위기 25장의 희년의 자유, 사도행전 2장의 코이노니아의 사랑 그리고 홀리루틴(Holy Routine)의 제자도를 하나로 묶어낸 성경적 공동체 모델이다.

사랑의봉사단은 말라위 농촌의 한 지역에 교회 공동체를 중심으로 100가정에 각각 600평 농지를 10년 무이자 상환을 전제로 분배했다. 주민들은 이 땅에 마이크로농장 마이크로학교 마이크로병원 마이크로교회를 갖춘 ‘눈에 보이는 희년추수 공동체’를 추구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은 굶주리다 돈이 생기면 그 돈으로 TV를 산다. 빵을 쌓아두지 않고 처절한 무료함을 달래는 엔터테인먼트 상자를 선택한다. 너무 많은 걱정과 불확실성 속에서 얼마 안 되는 에너지와 시간을 쪼개 쓰다 보니 당장의 위로와 작은 즐거움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미국 MIT의 개발경제학자 배너지와 뒤플로가 저술한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의 핵심 내용인데 이 책을 통해 필자는 긍휼 사역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저자는 “가난한 사람들을 이상하게 행동하는 비합리적 존재로 보지 말고, 자신의 상황 안에서 최선을 선택하려는 ‘합리적인’ 존재로 보라”고 주장한다.

말라위와 같은 최 극빈 지역을 바라볼 때 우리는 너무 쉽게 두 극단으로 기울이기 쉽다. 하나는 안타까운 감정만 남긴 채 막연한 동정과 일회성 구호로 끝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차가운 데이터만 남긴 채 사람의 얼굴을 잃어버린 개발 계획과 숫자만 남는 방식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은 언제나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요구한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마 14:14) 주님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동시에 고쳐주셨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의 개발 구제 사역은 뜨거운 심장과 차가운 머리, 긍휼과 지혜가 만나는 자리가 돼야 한다. 여기에 최근 개발경제학이 보여주는 통찰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문화(의사결정 방식)와 실제 데이터, 실험으로 분석한 연구들을 철저히 분석해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긍휼 사역을 설계하는 귀한 준거 틀을 마련해야 한다.

성경, 특히 구약에서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하나님으로 묘사된다. 특히 율법서인 출애굽기에서의 안식년과 희년, 예언서의 공평과 정의를 다루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과부, 고아, 나그네, 가난한 자의 편에 서시며 토지와 경제 구조를 통해 불평등이 영구화되지 않도록 명령하신다. 레위기 25장에서의 희년은 토지가 원 소유 가족에게 돌아가고, 빚을 탕감하는 제도인데, 이를 통해 하나님은 ‘땅은 내 것’(레 25:23)이라고 하늘의 법으로 못 박는다. 구조적 가난을 끊어 내려는 하나님의 제도적 장치로 해석된다.

가난은 구조적 문제

예수님도 하나님 나라와 가난한 자를 강하게 연결하신다. 이사야 61장을 인용한 그분의 첫 설교(눅 4:18~19)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말씀은 하나님 나라가 영혼 구원뿐 아니라, 전인적 구원, 사회·경제적 회복을 포괄하고 있다. 사도들 역시 재산 공유(행 2·4장), 연보와 형제 사랑(고후 8~9장), 부자 비판(야고보서) 등을 통해 초대교회는 실제로 경제적 나눔을 실천한 공동체였음을 강조한다.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의 저자 로널드 사이더는 “성경 전체는 개인적 경건과 사회적 경제 정의를 분리하지 않는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물론 재정 사용과 라이프스타일까지 포함하는 언약”이라고 결론 내린다.

이러한 성경적 원리 근거해 사랑의봉사단이 말라위에서 진행 중인 희년추수마을은 바로 ‘가난의 경제학’ 프레임을 아프리카에서 현실화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난한 사람이 본래 게으른 자가 아니라, 상황에 압도된 자로 봐야 한다는 점이다. 흔히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생각할 때가 많다. ‘왜 저들은 보건 교육도 해줬는데 예방 접종을 안 하는가’ ‘계속 굶주리면서 왜 돈을 빌려 장례식을 치르는가.’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의 저자는 가난한 사람들은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다만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압도적인 결핍과 스트레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다고 분석한다. 성경은 가난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불의한 재판관, 거짓 저울, 탐욕스러운 지주를 반복적으로 등장시킴으로 구조적인 악을 강조한다.

가난은 내 죄와 잘못된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남의 죄가 만들어 낸 구조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앞으로 긍휼 사역은 현지인들을 ‘도와만 주는 의존적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존엄한 존재’로 보고 자발적인 경제 공동체를 형성해 구조적 가난을 소멸시키는 혁신적인 구조를 만들어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황성주 사랑의병원 원장이 말라위 아이들을 만나 진료하고 있다. 국제사랑의봉사단 제공

긍휼 사역은 복음의 통로

빌 게이츠도 강추한 ‘팩트풀니스’에서도 저자 한스 로슬링은 “대강 아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아는 것이 정확히 사랑하기의 디딤돌이 된다”고 말했다. 이 마을 아이들의 실제 영양 상태는 어떤지, 어떤 질병이 가장 큰 부담인지, 학교 출석률과 학습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하루 소득과 소비 패턴, 여성과 어린이가 겪는 보이지 않는 폭력과 수치, 마을의 교회·지도자·비공식 네트워크는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알아야 이들을 효과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요소들은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조사와 관찰, 작은 실험과 피드백을 통해 꾸준히 기록하고 해석해야 바른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다. 성경은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전 13:6)고 말한다. 사랑 없는 진리는 냉혹한 정보가 되고, 진리 없는 사랑은 방향 잃은 감정이 된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긍휼 사역이 복음의 통로가 되도록 홀리루틴을 설계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서로 사랑의 새 계명이 녹아들도록 주도면밀하게 디자인해야 한다. 또 ‘어떻게 하면 긍휼 사역이 수치심과 의존성을 낳지 않고 상호 존중과 자발적 참여, 확산을 낳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 열쇠 중 하나가 바로 ‘문화의 옷을 입힌 긍휼’이다. 말라위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언어를 쓰지만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 나누고 축구하는 것을 사랑한다. 즉 그들만의 정서적 예술적 놀이의 언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문화의 언어와 홀리 루틴을 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어린이 축구와 복음, 그리고 보건 교육의 결합이다. ‘사탕 하나가 한 영혼, 축구공 하나가 한 클래스’라는 표현처럼, 아이들의 축구 문화 속에 말씀 암송 게임, 팀 기도, 위생·물·영양에 대한 짧은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녹이는 것이다. 또 매주 축구 리그의 하프타임에 요셉과 다니엘의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고 손 씻기·물 끓이기 챌린지 시간이 되게 하는 것이다.

현지 음악이나 춤, 드라마를 활용한 전략도 필요하다. 말라위 청년들이 직접 탕자 이야기, 선한 사마리아인, 오병이어 스토리를 현지어 노래와 춤, 마을극으로 재해석해 공연하게 하고 거기에 감사·용서·연합의 메시지와 깨끗한 물, 공동 저축, 자녀 교육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것이다.

청소년 예배의 경우도 어린이·청소년 간증, 한 주간의 감사 나눔, 기도 응답과 실패까지 정직하게 나누는 시간, 말씀을 함께 소리 내어 암송하고 서로 축복하는 시간으로 참여형 예배 루틴을 세우는 방식이다. 농업·시장·가사노동 현장에서도 씨를 뿌릴 때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짧은 감사 기도 루틴을 만들고, 우물가에서 물을 길 때마다 “이 물처럼, 우리 마을에 복음의 생수를 부어 주옵소서”라는 짧은 합심 기도를 함께 드린다. 이 모든 게 문화의 옷을 입은 긍휼 사역이며 마을 전체에 거룩한 일상의 리듬을 심어가는 작업이다.

희년과 성경적 공동체를 위해

끝으로 의존을 넘어 재정적 자립의 확산 공동체로서 구호 대상자라는 이름의 상처를 넘어 희망의 프론티어를 향해 우뚝 서도록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많은 구제 사역이 실패하는 이유는 ‘우리가 다 해주기 때문’이다. 구호라는 이름의 선물은 감사를 낳지만 반복되는 선물은 기대를 낳고, 그다음은 권리 의식을, 결국 의존과 분노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희년추수마을은 처음부터 무엇을 ‘해 주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그들에게 주신 것들을 함께 발견하고, 함께 키우는 자리’로 설계하고 있다.

복음이 이 땅을 떠나 하늘로 가는 구원의 기쁜 소식과 더불어 이 땅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이라면, 우리 말라위의 한 마을에서나마 환경이 개선되어 질병이 줄어들고, 아이들이 기뻐하며 배우고 고통 가운데 있던 이웃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작은 농장의 소산으로 저축이 생겨나고, 찬양과 춤, 축구와 이야기 속에서 예수의 이름이 존귀하게 되는 모습을 새 하늘과 새 땅의 예고편으로 보여주고 싶다. 무엇보다 이 훈련을 받은 말라위 청년 리더들이 아프리카와 열방 곳곳으로 나아가 희년과 성경적 공동체를 심기를 기대한다.

황성주
KWMA 회장·사랑의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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