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훈 LIV행, 우승이라는 괴물과 화해하러 가는 길 [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안병훈이 PGA 투어를 떠나 LIV 골프로 향한다. 그는 LIV의 한국 팀인 ‘코리안 골프 클럽’의 캡틴을 맡게 됐다.
김민규와 송영한, 교포 대니 리의 합류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안병훈이 올해 PGA 투어 대회 출전 신청을 하지 않았고, 팀 회동 장소가 그의 거주지인 올랜도 레이크 노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마지막 퍼즐은 안병훈이라는 점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행보를 꽁꽁 숨겼다. 단순히 보안 때문만이라기보다, 끝내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한 채 정든 무대를 떠나야 하는 승부사의 복잡한 심경과 마지막까지 이어진 깊은 고뇌의 흔적이었을 것이다.
그가 돈을 쫓아 LIV로 갔다고 비난하는 시선도 있겠지만, 기자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그는 이미 부유하다. PGA 투어에서 상금으로만 2153만달러(약 317억5000만원)를 벌었다. 투어 상위권 선수들은 상금 중 일정 비율을 코치진에게 지급하는데, 안병훈은 그 비율이 가장 높은 선수다. 성적을 내서 돈을 벌겠다는 계산보다, 돈이 많이 들더라도 성적을 내겠다는 집념이 앞서는 선수다.
진지한 운동선수에게 가장 큰 보상은 돈이 아니라 우승이며, 돈은 그저 뒤따라오는 부수적인 결과물일 뿐이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부모 슬하에서 자란 안병훈은 매우 진지한 승부사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아버지 안재형 씨다.

골프라는 스포츠는 때로 잔인하다. 100여 명의 출전 선수 중 단 한 명만이 승자가 되고, 나머지 모두는 패자로 기록된다. 안병훈은 그 누구보다 오랫동안, 그리고 뼈아프게 우승 문턱을 서성여야 했다. 228경기에서 톱10에 30번 진입했는데 연장전 3번을 포함해 준우승만 5번, 3위도 4번이나 기록했다.
'우승 없는 선수 중 역대 최다 상금'이라는 꼬리표는 그에게 훈장이 아니라, 매 순간 숨통을 조여오는 지긋지긋한 굴레였을 것이다.
지난해 약 6개월간 PGA 투어를 현장 취재하며 선수들이 대개 '두 얼굴'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승 기회를 놓치거나 컷 탈락을 한 직후에는 분노 게이지가 치솟아 평소와 다른 사람이 되곤 한다. 안병훈은 그 편차가 유독 큰 선수였다. 우승권에서 멀어질 때마다 그는 다른 선수들보다 몇 배는 더 괴로워했다. 그런 일이 일 년에도 몇 번씩 반복됐으니, 지독한 압박과 허무함이 그의 어깨를 얼마나 짓눌렀겠는가.
지난해 3월, 플로리다의 한적한 리조트에서 열린 발스파 챔피언십 당시 그는 평소보다 여유가 있었다. 한 시간여 동안 마음의 문을 열고 나눈 대화의 주된 화두는 "골프는 그저 골프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다. 인생 전체로 보면 골프는 삶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그 평범한 진리를 필드 위에서 실천하지 못해 우승을 놓치곤 했다. 우승 경쟁 과정에서 운이 따르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 실수도 있었다. "그저 골프"라고 넘기기엔 간절함이 너무 컸고, 그 뜨거운 열정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의 근육을 굳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LIV행은 평생 실천하지 못했던 "골프는 그저 골프다"라는 말을 삶에 구현하러 가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숨 막히는 경쟁과 우승의 강박에서 벗어나, 결과에 목숨 걸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비로소 자신과 화해하려는 선택 말이다.
우승이라는 괴물과 그토록 치열하게 싸웠으니, 이제는 그 짐을 내려놓고 조금은 편안하게 골프를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PGA 투어 일반 대회 우승 기회는 사라졌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LIV가 세계랭킹 포인트를 받을 것으로 보이고 유러피언 투어 등에 참가할 수도 있으니 메이저 출전 기회는 여전히 열려 있다.
안병훈은 과거 “골프의 신이 나타나 ‘메이저 하나 우승할래, 아니면 매년 일반 대회 하나씩 5년 동안 우승할래’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메이저”라고 말했다. "골프는 그저 골프"라는 마음가짐을 실천할 수만 있다면, 골프의 신은 안병훈에게 메이저 우승컵을 허락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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