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그래도] 사복음서 속 예수 행적이 다르다? 목격자 관점이 달랐기 때문

이명희 2026. 1. 14.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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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예수가 허구라고 의심될 때
<하> 사복음서의 모순
게티이미지뱅크


예수의 이적을 기록한 사복음서를 신뢰할 수 있을까. 예수가 군중들에게 먹인 물고기와 보리떡 숫자도 복음서마다 차이가 나는데 꾸며낸 얘기가 아닐까. 이런 의심이 들 만하다. 그러나 틴데일하우스의 대표이자 성경학자인 피터 윌리엄스는 ‘복음서를 신뢰할 수 있는가’에서 “복음서를 믿지 않는 것보다 믿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라고 결론 내린다.

복음서에 나오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작은 마을 이름, 지형, 풍습뿐 아니라 인물들의 이름 분포가 당대 유대 지역의 이름 통계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따라서 복음서가 수십 년 뒤 먼 곳에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현지 사정을 잘 아는 목격자들의 증언이라는 것이다. 신약 성경 사본이 다른 고대 문헌보다 압도적으로 많고 원본과 시간적 차이가 매우 적다는 것도 텍스트가 변질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서로 다른 복음서들 사이에 아주 사소하고 세부적인 내용들이 서로를 보완하며 퍼즐처럼 들어맞는 ‘의도하지 않은 일치’가 있는 점도 저자들이 하나의 실제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본 결과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의 독특한 비유와 가르침 방식이 당시 유대교나 헬라 문화의 흐름과 구별되며 제자들이 지어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혁신적이고 일관성이 있다는 점을 제시한다.

영국 학자인 리처드 보컴은 ‘예수와 그 목격자들’에서 복음서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것을 설명한다. 마가복음은 목격자 중 많은 이가 아직 살아있을 때 기록된 반면, 신약의 나머지 복음서들은 살아있는 목격자가 드물어졌을 때 기록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보컴에 따르면 시몬의 아들들이 언급된 까닭은 이들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 안에 알려져 있어서 그 이야기를 확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각 복음서에 나오는 부활의 목격자들 이름 목록에 차이가 있는 것은 복음서 기자들이 개인적으로 아는 목격자들의 이름을 밝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복음서의 모순에 대해 레베카 맥클러플린은 ‘기독교가 직면한 12가지 질문’(Confronting Christianity)에서 “일부 수수께끼는 예수께서 어떤 일을 딱 한 번만 하셨다고 추정하기 때문에 생긴다. 우리는 예수께서 비슷한 일이나 말을 상이한 장소나 시간에 하신 것을 보면서, 복음서 기자들이 혼동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와 아이를 제외하고도 5000명을 먹이셨다고 기록한다.(마 14:13~21) 그다음 장에서는 4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떡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두어 마리로 먹이신다.(마 15:32~39) 누가복음은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이야기에 바로 이어 승천하셨다고 기록한다.(24장) (역시 누가가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도행전에서는 예수께서 부활 후 승천 전까지 40일 동안 모습을 보이셨다고 말한다. 맥클러플린은 이는 모순이 아니며 복음서가 사건들을 압축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그때도 사실은 사건과 사건 사이의 시간 간격이 상당했다고 말한다.

예수의 전지전능함

오늘날 대부분의 신약 학자들은 예수를 장사 지낸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데 동의한다. 케임브리지대학 신약학자 존 로빈슨은 예수를 장사 지낸 이야기는 역사적 예수에 관한 사실로 확실하게 입증된 내용 중 하나라고 말한다.

회의적인 역사가인 마이클 그랜트도 ‘예수 : 역사학자가 본 복음서’에서 “분명히 빈 무덤에 대한 복음서의 묘사는 각각 다르지만 우리가 고대 문헌을 연구할 때 적용하는 기준을 똑같이 복음서에 적용해 본다면 무덤이 실제로 비어 있었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한 증거들이 있다”고 했다.

무덤을 찾아갔던 시간을 예로 들면 한 사람은 아직 어두웠다고 하고, 또 한 사람은 동틀 무렵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치 낙관론자가 컵 속에 물이 반이나 들었다고 말하고 비관론자는 물이 반밖에 안 들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무덤을 찾아갔던 시간은 새벽녘이었고 단지 두 사람이 다른 말로 그것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게리 하버마스 리버티대학 교수는 예수의 제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목격했고, 직접 만졌고 함께 식사를 나누었음을 여러 증거를 통해서 입증했다. 영국의 저명한 신학자인 마이클 그린은 “예수의 출현은 고대의 어떤 사건보다도 믿을 수 있는 사건이다.…합리적으로 볼 때 예수께서 출현하셨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부활을 확신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라고 했다.

예수는 성육신한 하나님

탁월한 이야기꾼인 존 오트버그 목사는 ‘예수는 누구인가’에서 “예수는 역사상 가장 친숙한 인물이며 그가 세상에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하고 결코 우연이 아니다”고 했다.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의 유래를 아는가. 이 지역은 일찍이 프란시스코라는 사람이 예수를 따랐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며, 캘리포니아의 주도가 새크라멘토(Sacramento)인 것도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한 식사, 최후의 만찬이 나중에 성례(Sacrament)로 불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영향은 죽음에도 미친다. 고인을 묘지에 매장하는 풍습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에게서 왔으며 묘지(cemetery)라는 말 자체가 헬라어 원어로 ‘잠자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는 부활의 소망이 담긴 표현이라고 오트버그는 말한다. 예수가 20세기 동안 서구 문화사의 지배적 인물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BC와 AD로 역사가 분수령을 이루는 것도 우연의 일치로 치부하기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예수는 책 한 권, 글 한 줄 남기지 않고도 세계 지성의 주제가 됐고 적십자사의 기원, 달력의 표기 방식, 노예제 철폐 등은 물론 정치 경제 교육 학문 등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고 오트버그는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긍휼과 용서와 희망을 가르쳤다. 그는 GK 체스터턴의 말을 인용해 예수의 정체를 설명한다. “하늘에 하나님이 계시니 세상은 다 괜찮다는 말 정도로 충분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세상을 바로잡으시려고 하늘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무신론자였던 시카고 트리뷴지 기자 출신의 리 스트로벨은 역사학자 고고학자 의사 등 전문가 13명과 인터뷰한 뒤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1세기 유대인 중 예수만 수백만 명의 추종자를 갖고 있고 예수만 지금까지 경배받는 것은 바로 역사적 예수가 살아계신 주님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오래전에 죽었지만 그분은 지금도 살아계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는 저서 ‘합리적 신앙’에서 “기독교는 십자가 사건이 있은 지 채 20년이 되기도 전에 크게 성장했으며 예수를 성육신하신 하나님으로 선포했다. 그리고 이것을 입증하는 많은 증거가 존재한다”고 했다. 교회사가인 야로슬라프 펠리칸은 “가장 오래된 설교, 가장 오래된 순교자의 말, 가장 오래된 이단 보고서와 가장 오래된 예배 기도문(고전 16:22)은 예수를 주님이요 하나님으로 말하고 있다”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교회가 믿고 가르쳤던 메시지였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했다.

성경 속 예수

구약 성경은 예수의 오심을 예언하는 구원의 약속을 담고 있다. 구약 성경에는 예수를 가리킨다고 해석되는 예언이 300여 가지가 넘는다. 탄생과 가문에 대한 예언, 예수가 누구의 자손으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날 것인지에 대한 예언들이 나온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왕으로 오시지만 겸손하게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것이라는 예언도 나온다.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

이사야 53장과 시편 22편은 십자가 현장을 목격하고 쓴 것처럼 묘사가 상세하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사 53:5)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 16:10) 다윗의 얘기이기도 하지만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시이기도 하다. 구약 성경의 수많은 예언은 예수가 메시아임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다.

신약 성경 마태복음에는 세례 요한이 예수가 메시아인지 묻는다. 바울은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며 쓸모없고 공허한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는 부활하신 뒤 수많은 사람 앞에 여러 번 나타나셨다. 이는 서로 다른 복음서에 기록돼 있다. 목격자들은 실제로 있었다. 예수의 형제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됐고 돌에 맞아 죽었다. 기독교인을 핍박하던 사울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뒤 회심하고 열렬한 전도자가 되고 순교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이들의 극적인 변화가 예수가 마술을 행하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성육신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또한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의 음성을 들은 수많은 이들의 생생한 간증이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예수의 실재를 증명한다.

이명희 논설위원·종교전문기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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