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반에 학생 국적만 10개…담임은 실신해 쓰러졌다[이민, 사람이 온다]

이영근, 손성배, 전율 2026. 1. 13.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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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아동·청소년 73만시대 그늘

■ 이민시대 - 노동력이 아니라 사람이 온다

「 4년 뒤 국내 체류외국인은 300만명으로 전망된다. 인구 절벽에 따른 이민자 증가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인력 확보 차원을 넘어 사회통합까지 고려한 섬세한 이민 정책이 절실하다. 중앙일보는 이미 도래한 ‘이민시대’ 현장의 내외국인을 두루 만나 서로 공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점검했다.

경기 안산시글로벌청소년센터에 다니는 카자흐스탄 국적의 김넬리(14, 오른쪽)양과 중국 국적의 이경건(18)양이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카자흐스탄 고려인 동포 자녀인 김넬리(14)양과 중국 후베이성 출신 이경건(18)양은 안산시글로벌청소년센터 ‘바람반’ 동급생이다. 각각 지난해 2월, 5월 한국에 왔다. 바람반은 한국에 불시착한 중도입국 청소년의 공교육 진입을 돕는 일종의 예비 교실이다. 고려인 동포 자녀인 넬리는 지난해 2월 ‘가나다라’만 아는 상태로, 중국 동포 부모님을 둔 경건은 지난해 5월 ‘가나다’도 모르는 상태로 한국 땅을 밟았다.

「 용어사전 > 중도입국 청소년

외국에서 나고 자라다 부모의 결혼, 체류 자격 변경으로 뒤늦게 입국한 이주배경 청소년. 언어 장벽, 정체성 혼란, 가족 관계 등으로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다.

두 사람이 국기를 보고 국가 이름을 한국어와 모국어로 적는 시험을 보던 날, 바람반을 찾았다. 바람반 구자명 선생님이 중국 국기를 들자 경건은 자신있게 ‘종국’이라고 적었다. 친구들은 까르르 웃었다.

두 학생은 센터에서 기초 한국어를 배워 올해 겨우 학교에 갈 수 있다. 이제야 식당 메뉴판을 읽는 수준이 됐다는 넬리는 “1년이라도 빨리 한국에 왔으면 한국어도 더 잘하고 학교도 빨리 갈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넬리와 경건 같은 이주청소년(다문화 학생) 수는 가파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12월 8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이주배경 인구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24세 이하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은 2023년 대비 7.9% 증가한 73만8079명으로 전체 이주배경 인구의 27.2%에 달했다. 이 중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인 이민자 2세 등 내국인은 36만6502명, 외국인은 37만1577명이다. 출신 국적별로 베트남이 20만879명(27.2%)으로 가장 많았고, 중국(12만1836명)과 중국동포(8만8461명), 우즈베키스탄(3만1506명), 필리핀(3만1108명), 캄보디아(2만4969명) 순으로 많았다.

이주청소년 증가세는 가족 초청권이 있는 비자 소지자 증가세와 맞물려 있다. 가족을 한국에 데려올 수 있는 숙련기능인력(E-7-4)이나 지역우수인재(F-2-R) 비자 소지자 증가와 비례해 동반(F-3) 비자 체류자 수도 점차 늘어 지난해 11월 기준 7만3973명이 됐다. 법무부 관계자는 “최근 동남아에서 가족초청 비자 심사가 급증한다”며 “이주배경 청소년의 교육과 안정적 정착이 이민자 통합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국적 중도입국청소년 이경건(18)양이 지난해 안산시글로벌청소년센터에서 단어 시험을 보고 있다. 경건은 중국을 '종국'이라고 잘못 적었다. 이영근 기자

중도입국 청소년 급증하는데…“시스템이 현실 못 따라가”


그러나 이들 중엔 공교육에 아예 진입하지 않는 학생이 적지 않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법무부 이민정책연구원의 ‘이민자 사회통합지수 측정 및 정책컨설팅’ 보고서에 따르면 이주민 자녀의 공교육 비(非) 재학률은 8.9%로 조사됐다. 연구원은 “내국인은 공교육이 의무인걸 감안했을 때 재학률이 낮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급증하는 이주청소년을 수용할 만큼 공교육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25년 국제결혼 및 외국인 가정 출신으로 초중고에 재학 중인 다문화 학생은 20만2208명이다. 통계를 집계한 2012년(4만6954명) 이후 4.3배로 늘었다. 하지만 다문화 학생을 위한 교육 기반은 제대로 없어 현장에선 이미 파열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교사 서수민(가명)씨는 3년 전 이주배경 청소년이 많은 김해의 한 공립초등학교 담임을 맡았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교실에서 실신한 적이 있다. 당시 그가 맡은 학급 학생들의 출신 국가는 10개국에 달했다. 학급 전체 학생 20명 중 이주아동이 12명인 적도 있었다. 다른 학급도 이주배경 청소년이 한국 학생보다 많았다.

지난해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서울문화고등학교에서 이주배경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 진행되는 모습. 전율 기자


서씨는 “한국어 수준이 제각각이라 수업 진행이나 기초 생활지도조차 항상 막막하고 불안했다”고 말했다. 문화 차이로 인한 오해와 갈등도 큰 스트레스 요인이었다. 서씨는 “우즈베키스탄 국적 여학생이 말썽을 피운 적이 있다. 부모는 ‘때려서라도 말을 듣게 하라’고 강하게 요청하더라. 한국에선 교사가 학생을 때릴 수 없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어 “러시아 출신 학생은 공적인 자리에선 모자를 벗는 게 한국에서 통용되는 예의라고 여러 차례 지적해도 털모자를 벗지 않아 애먹었다. 시리아에서 온 학생은 이슬람 문화의 영향으로 여교사 지시는 따르지 않아 여러 선생님이 어려워 했다”고 덧붙였다.

중도입국 청소년의 경우 더욱 연착륙이 쉽지 않다. 재외동포 비자와 연계돼 안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동포 자녀와 달리 이들은 성인이 된 뒤 별도 체류 자격을 얻지 못하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 정기선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외국인 가정 중도입국 청소년 증가는 지난 정부에서 노동력 수급 목적으로 E-7-4 비자 등을 확대할 때부터 이미 예정된 미래였다. 하지만 중앙 정부 차원의 시스템과 인식은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4년 여름 강원 홍천군 해밀학교에서 수업이 진행되는 모습. 장진영 기자

“어울려 놀다 보니 마음 열리고 말도 늘어” 해밀학교의 도전


정부나 관련 단체도 이주 청소년 정착 문제가 이민시대의 핵심 과제 중 하나란 걸 인식하고 정착 지원을 늘리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다문화에듀센터 아띠와 함께 지난해 6월부터 ‘찾아가는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인력이 부족한 학교에 이중언어 강사가 직접 찾아가 총 60회에 걸쳐 1대1 수업을 진행한다. 강사 루아이시아(39)는 “모국에서 똑똑했던 친구도 언어를 못하면 자신감이 떨어진다. 한국어 교육이 무조건 1순위”라고 강조했다.

개별 학교차원에서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2013년부터 이주배경 청소년을 교육해 온 강원 홍천군 해밀학교가 대표적. 교사 10명, 학생 55명으로 운영 중인 이 학교는 재학생 국적이 13개에 달한다. 초기엔 다른 곳처럼 언어·소통 문제로 고민이 많았지만, 구글 시트에 한국어로 내용을 입력하면 즉각 번역되는 ‘다국어 자동번역 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언어 장벽을 낮췄다.

2024년 여름 강원 홍천군 해밀학교에서 수업이 진행되는 모습. 장진영 기자


해밀학교는 공존을 위한 ‘마음 근육’을 길러 주기 위해 학급마다 한국 학생을 반정도 배정한다. 건강한 한국 학생 그룹이 있어야 이주배경 청소년에게도 도움이 된단 판단에서다. 한국 국적 김지언(16)양은 “다문화에 대한 편견이 있었지만 24시간 같이 지내다 보니 지금은 친구들이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해밀학교를 나와 2024년 단국대에 진학한 베트남 국적 김민주(22)씨는 “8년 전만 해도 한국어를 못 해 상점가는 것도 꺼릴 정도였지만, 한국 친구들이 베트남 문화를 궁금해하며 다가와 줘 용기를 얻었다”며 “사실 공부는 잘 안 했는데 역설적으로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 마음도 열리고 한국어도 빨리 늘었다”고 전했다.

해밀학교 중도입국청소년 김민주 씨의 모습. 김경록 기자


이경진 해밀학교 교장은 “이주배경이란 키워드에 집중해 한국어만 가르치면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이란 사실은 간과하기 쉽고, 청소년으로서 가지는 고민도 해소하지 못한다”며 “단단한 마음을 가진 채 졸업시키는 게 중요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어 “다양한 문화적 배경에 보석 같은 재능을 가진 학생이 많다. 좋은 걸 주면 아이들도 한국 사회에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을 제공할 거란 생각으로 바라봤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 이민자 사회통합지수, 어떻게 조사했나

「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산하 이민정책연구원이 2024년 8월 19일~9월 20일 전국 17개 시·도 다문화도시협의회 소속 22개 기초자치단체의 만 19세 이상 내국인 6000명과 이민자(국내 장기체류 외국인·5년 이내 귀화자) 6000명을 대상으로 대면면접조사 방식과 Open URL 활용 조사 방식을 병행해 진행했다. 표본은 전국 이민자 모집단 약 185만명의 체류 자격별 특성을 반영하여 설계 한 후 지역·성·연령별을 층화하여 추출했다. 목표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1.6%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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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손성배·전율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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