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지망생이 피자집 카운터 보더라"…韓 불시착 그들의 전쟁 [이민, 사람이 온다]

전율, 이영근, 김정재 2026. 1. 13.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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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따라 왔는데 살 길 막막”

■ 이민시대 - 노동력이 아니라 사람이 온다

「 4년 뒤 국내 체류외국인은 300만명으로 전망된다. 인구 절벽에 따른 이민자 증가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인력 확보 차원을 넘어 사회통합까지 고려한 섬세한 이민 정책이 절실하다. 중앙일보는 이미 도래한 ‘이민시대’ 현장의 내외국인을 두루 만나 서로 공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점검했다.

E-7-Y 비자 전국 최초로 발급받은 이두안(22ㆍ필리핀명 레 투안 페렐). 이영근 기자


“제 이름은 이두안이에요. 필리핀 이름은 레 투안 페렐인데, 이두안이라는 한국식 이름이 이젠 본명같죠.”

필리핀 국적의 이두안(22)씨가 능숙한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이씨는 주한필리핀대사관에 일자리를 얻은 부모를 따라 네 살 때 한국에 왔다. 필리핀은 세 번밖에 못 가봤다. 인생 대부분을 보낸 서울 용산구 해방촌을 그는 ‘고향’이라고 부른다. 이씨는 “필리핀 스타벅스에서 나에게 따갈로그어가 아닌 영어로 말을 걸더라”며 “모든 게 어색했고 소속감도 느껴지지 않아 한국에 계속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23년, 그의 한국살이에 위기가 찾아왔다. 한국폴리텍대 졸업을 앞두고 신청한 전문인력(E-7-1) 비자가 계속 불허되면서다. 전문인력 비자는 법무부가 지정한 약 90개 직종에서만 외국인의 취업을 허용한다. 서류 요건도 까다롭다.

이씨는 대안으로 지역특화형 비자(F-2-R)도 고민했다. 인구소멸지역에 5년 이상 거주하거나 취업해야 하는 조건이 필요한 비자다. 그는 “대학까지 나왔고 서울에서만 살아왔는데 전혀 다른 환경으로 가야 한다는 점이 내키지 않았다”고 했다.

다행히 지난해 초,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국내에서 7년 이상 성장한 외국인 청소년이 취업할 경우 학력과 경력을 묻지 않고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국내성장인력(E-7-Y) 비자가 신설됐단 소식이었다. 기존 전문인력 비자와 달리 직종 제한도 없었다.

이씨는 기회를 잡기 위해 1100곳에 가까운 기업에 이력서를 냈고, 지난해 8월 경기 안산의 한 공장용 컴퓨터 제조업체에 프로그래머로 입사했다. 1호 국내성장인력 비자 보유자가 된 것. 그는 “웨딩홀·카페·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익힌 눈치와 업무 능력을 갈고 닦아 적응을 잘 하고 싶다. 28세 이전에 영주권을 받고, 장기적으로는 귀화가 목표”라고 말했다.

사누크(19)가 아버지와 함께 경기도 화성시외국인복지센터에서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적고 있다. 손성배 기자


이씨처럼 이주 배경을 지닌 청년은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19~34세 이주배경청년은 2010년 1만7000명에서 10년만에 3만5000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강동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0~18세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이 계속 늘고 있어 향후 이주배경 청년 역시 갈수록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이들의 청년기 연착륙이다. 국내성장인력 비자의 핵심 요건인 ‘18세 이전 7년 체류’를 충족하지 못하는 이주배경 청년의 경우 진로 선택이 극히 제한된다. 성인이 된 뒤 대학에 진학하는 등 방법으로 비자를 취득하지 못하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 2024년 6월 스리랑카에서 뒤늦게 아버지를 따라 온 사누크(19)는 아직 고등학교 1학년이다. 그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나 있을지, 한국에서 뭘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의 고민은 깊다. 불안정한 체류자격과 언어 장벽, 문화 차이로 상당수 이주배경 청소년이 청년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좌절을 겪기 때문이다. 이승미 안산시글로벌청소년센터장은 “모국에서 전교 10등 안에 들던 모범생도 한국에선 대학 진학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때 의대를 지망하던 학생이 피자 가게 카운터를 보는 모습을 보고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인구감소시대 이주배경청년의 안정적 정착 및 자립역량강화방안 모색 포럼이 열렸다. 사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24년 발표한 ‘이주배경 청년의 노동시장 이행 연구’에 따르면, 20~39세 이주배경 청년 324명 중 68%가 단순노무·사무·서비스직 등 비정규직으로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했다. 정규직 비율은 25%에 그쳤다. 특히 첫 일자리가 비정규직이었던 경우, 84%가 이후에도 비정규직에 머물렀다. 연구진은 “불안정한 첫 일자리가 불안정한 경력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확인된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주배경 청년까지 포괄하는 정책으로의 전환을 주문한다. 현행 다문화지원법은 24세 이하 이주배경 청소년만이 대상이라 청년층은 사각지대에 있다는 지적이다. 양계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주민이 청년 시기 자립하지 못할 경우 개인 문제를 넘어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들을 위한 차별화된 자립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이민자 사회통합지수, 어떻게 조사했나

「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산하 이민정책연구원이 2024년 8월 19일~9월 20일 전국 17개 시·도 다문화도시협의회 소속 22개 기초자치단체의 만 19세 이상 내국인 6000명과 이민자(국내 장기체류 외국인·5년 이내 귀화자) 6000명을 대상으로 대면면접조사 방식과 Open URL 활용 조사 방식을 병행해 진행했다. 표본은 전국 이민자 모집단 약 185만명의 체류 자격별 특성을 반영하여 설계 한 후 지역·성·연령별을 층화하여 추출했다. 목표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1.6%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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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joongang.co.kr/series/11846

전율·이영근·김정재 기자 jun.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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