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재 목사의 후한 선물] 난세를 살아내는 힘, 긍휼

2026. 1. 1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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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을 지나 2026년을 맞았지만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여전히 난세다. 전쟁 같은 소식이 일상이 됐고 사회는 갈등과 분열의 파고 앞에서 출렁인다. 정치와 경제, 세대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대립의 언어가 넘쳐난다. 무엇이 옳은지 묻기보다 누가 틀렸는지 가려내어 낙인찍는 일이 훨씬 빨라졌다. 각자의 판단과 감정이 절대 기준이 되면서 함께 버텨야 할 우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 혼돈의 시대를 우리는 무엇으로 버텨야 할까.

성경 유다서는 교회 안팎으로 혼란이 극심하던 상황에서 뜻밖의 처방을 전한다. “긍휼을 기다리라”는 처방이다.(유 1:21) 거짓 가르침이 공동체를 위협할 때 힘으로 맞서 싸우라거나 즉각 척결하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긍휼을 말한다. 여기서 긍휼은 단순한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다. 그것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애통함으로 상대를 품고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그를 살려내려는 절박한 실천이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 삶에서 긍휼을 선택하기는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긍휼은 언제나 느리고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감정을 눌러야 하며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도 보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긍휼보다 즉각적이고 통쾌한 정죄를 택한다. 갈등이 생기면 기다리기보다 나서서 해결하려 하고 설명하고 설득하기보다 차단해 버린다.

이처럼 각자의 정의를 앞세운 선택은 순간적으로는 시원해 보이지만 결국 더 깊은 고립과 분열을 남긴다. 공동체를 무너뜨린 결정적 원인이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분열이었음을 역사는 반복해서 증언한다.

그렇다면 이 악순환을 끊는 비결은 무엇일까. 성경은 이것이 긍휼이라고 답한다. 진정한 긍휼은 타인을 향한 칼날을 나에게로 돌리는 데서 비롯된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며 하나님만이 옳으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상대를 향해 타오르던 미움의 불길은 잦아든다. 고난 가운데 내 죄를 보게 되면 남을 탓하며 원망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타인을 살리는 긍휼의 자리에 서게 된다.

한 성도의 이야기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법원에 출석했다. 거기에는 전처와 그녀의 새로운 남편, 그리고 아기가 있었다. 그 아기는 전처와의 이혼이 확정되기 한 달 전 전처가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였다. 출생 신고를 위해 전남편인 그의 확인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법적으로 문제로 삼을 여지도 충분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인정해줬으며 전처에게 말씀 묵상지 ‘큐티인’ 한 권만 건네고 법원을 나왔다. 이 소식을 들은 지체들이 그에게 마음이 어떤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교통사고 후 저의 상태가 정상이 아닌데 전처가 저보다 나은 사람과 함께 산다고 하니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이에 지체들이 오히려 흥분해서는 “엄연히 불륜인데 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성도는 교통사고 이전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이 전처에게 지은 죄가 더 크다”고 고백했다. 그는 상대의 죄보다 먼저 자신의 죄를 보게 된 것이다.

이처럼 긍휼은 먼저 자기 죄를 보는 데서 출발한다. 입으로 건네는 위로는 쉽게 공허해지지만 자기 죄를 본 사람이 건네는 말에는 성령의 깊이가 담긴다. 긍휼의 말은 판단으로 끝나지 않고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인생에 우연은 없다. 우리가 겪는 환난과 궁핍은 우리를 빚어 누군가를 살리는 영적인 약재료가 된다. 특히 실패의 자리에서 내 죄를 보고 돌이킨 경험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웃에게 가장 강력한 위로가 된다.

결국 난세를 살아내는 힘은 거창한 능력이 아니다. 그 힘은 긍휼이다. 긍휼은 자신이 무너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겸손한 태도에서 나온다. 정죄가 넘치는 시대에 긍휼은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공동체와 가정을 끝내 살려온 힘은 언제나 느려 보이는 선택이었다.

한 사람이 나라를 살리듯 주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한 사람의 긍휼함이 난세를 살아내는 희망이다. 서로를 이겨내려 하기보다 서로를 살리는 긍휼로 새해를 함께 살아내기를 소망해본다.

김양재 우리들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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